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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2 조회수1,302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12일 대림 제2주간 금요일
 
To what shall I compare this generation?
It is like children who sit in marketplaces
and call to one another,
‘We played the flute for you, but you did not dance,
we sang a dirge but you did not mourn.
(Mt.11,16-17)
 
 
제1독서 이사 48,17-19
복음 마태 11,16-19
 
 
평소에 건망증이 심한 학생이 있었습니다. 지갑을 겨드랑이에 끼고서는 빈손을 보고 놀라면서 “이런, 지갑이 어디 갔지?”라고 할 정도로 증세가 심각했지요.

하루는 이 학생이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볼일이 있어서 지갑과 핸드폰만 챙겨서 도서관을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핸드폰으로 통화를 하던 중 문득 손을 보니 지갑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통화 중이던 친구에게 깜짝 놀라며 말했습니다.

“어떻게 하지? 분명히 지갑이랑 핸드폰 챙겨서 나왔는데... 핸드폰이 없어졌어.”

핸드폰으로 통화하고 있다는 것을 깜빡 하고 말이지요. 그러자 같이 통화를 하고 있던 친구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야~ 주머니에 있는 거 아니야? 있나 잘 찾아봐! 혹시 도서관에 두고 나온 것은 아냐?”

똑같은 모습을 가지고 있는 건망증 많은 두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은 이 순간에 분명히 심각했을 것입니다. 한 명은 핸드폰이 없어졌다는 사실에, 또 하나는 친한 친구의 핸드폰 분실 소식에 말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심각한 장면을 보고 있는 다른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남들은 웃을 수 있는 상황인데 본인들은 아주 심각하고 기분 좋지 않은 상황입니다.

어렵고 힘들다는 순간 역시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사실은 그리 어렵지도 힘들지 않으며, 스스로의 관점만 바꾸면 편하고 쉬운 순간으로 만들 수도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자주 잊어버림입니다. 정말로 건망증이 심한 것인지, 주님의 말씀을 금방 금방 잊어버리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사랑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미움과 다툼을 더 세상에 내어 놓으며 살고 있습니다.

이 잊어버림은 주님보다는 세상에 더욱 더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심사가 세상에 있다 보니 주님의 소중한 말씀을 잊어버리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참된 행복의 길이 아닌, 계속해서 어렵고 힘든 길을 걷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는 장터에 있는 아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선 장터는 팔려고 내놓은 물건이 많이 있는 장소입니다. 또한 서로 팔려고 하다 보니 아주 시끄러운 장소입니다. 이런 상태에서 자신의 눈은 어디를 향할까요? 바로 자신의 관심사에만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이 바로 그렇지요.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아이들이 말을 하는 정도가 아니라 한껏 소리를 높여 외쳤지만, 유대인들은 피리 소리에 전혀 응답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을 실천하도록 노래를 불러 주었고, 다윗이 주님의 계약 궤 앞에서 춤췄던 것처럼 춤추라고 피리를 불어주었지만 유대인들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입니다. 또한 회개하라고 곡을 했지만 회개하지도 않습니다. 바로 관심사가 다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께서는 사랑실천과 회개가 중요함을 힘주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또 잊어버린 것은 아닌가요?

건망증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이제는 주님께 관심을 두고 그분의 소중한 말씀을 기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불행으로 이끄는 죄에서 벗어나 참된 행복의 길로 갈 수 있습니다.

한 권의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의 삶에서 새 시대를 본 사람이 너무나 많다(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고난을 통과하라(‘감동의 편지’ 중에서)

링컨 대통령이 20년 동안 말할 수 없는 만성 우울증에 시달렸다면 놀랄 것이다. 요셉도 어린 시절 형들로부터 모함을 받고 웅덩이에 생매장당할 위기에 처하는 등 기막힌 고난이 연거푸 일어났다.

세상에 고난 없는 축복은 없다. 고난 없는 축복은 오히려 화가 될 때가 더 많다.

성공하고 싶은가? 복을 받고 싶은가?

고난을 통과하라. 고난을 통과한 링컨은 미국 대통령이 되었고, 고난을 이긴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다.

비바람을 통과한 나무는 열매를 맺고, 고난을 통과한 사람은 성공을 한다.

성공자가 되고 싶다면 지금, 고난을 통과하라.

고통이나 시련은 하나도 겪지 않으면서도 성공하고 싶어 하는 마음. 놀부 심보가 아닌가 싶습니다. 고통과 시련에 대해서 의연할 수 있을 때, 주님의 사랑을 받는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이 될 수 있음을 잊지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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