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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대림 제3주일 /자신을 낮춰 주님을 드높인 요한/이기양 신부
작성자원근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3 조회수818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요한 1,6-8.19-28)
☆   ☆   ☆

오늘의 묵상

복음에서는 요한의 정체를 묻고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요한은 ‘준비하는 사람’이라고 답합니다. 훌륭한 분이 오시는데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부족한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위대한 분이 오실 거라는 요한의 답변입니다.

대림 첫 주일의 주제는 ‘깨어 기다림’이었습니다. 둘째 주일은 ‘회개’였고, 셋째 주일은 ‘희망’이 주제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기다렸던 예수님께서는 아기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모습입니다. 기다림의 목표를 ‘소유하는 것’에 두어서는 안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힘겨운 인생에서 사랑과 감사를 ‘희망하는 것’의 첫자리에 두라는 말씀입니다.

예로부터 신앙인은 세 가지 덕목을 갖추어야 했습니다. 신덕과 망덕과 애덕입니다. 희망은 당당하게 세 덕목 중의 하나였던 것입니다. 희망을 외면하고 살아왔다면 이제라도 시도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희망을 연습해야 합니다. 이것이 대림 시기 셋째 주일의 가르침입니다.

주님께서는 만물을 칭찬하시며 은총을 주고 계십니다. 그런데 받는 우리가 실망하며 살고 있다면 곤란한 일입니다. 그분께서 은혜로 주심에도, 감사하며 받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내야 합니다. 오늘 대림 제3주일의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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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낮춰 주님을 드높인 요한                   - 이기양 신부-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며 한없이 자신을 낮춘 사람이 있었으니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입니다. 이러한 요한을 두고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마태 11,11)며 극찬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대림 제3주일을 지내면서 우리는 이렇게 놀라운 사람과 만납니다. 요한은 끝없이 자신을 낮추며 예수님을 높이는 겸손한 피조물이었습니다. 우리는 요한의 이 몇 마디 말을 통해 그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가 인간의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 안에서 온전히 순명하며 사는 사람이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 당시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보다도 훨씬 더 명성이 높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따랐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활동하시기 한참 전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회개할 것을 가르쳤는데 그의 말과 행동에 어찌나 힘이 있었던지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요르단 강으로 세례를 받으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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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구세주를 설교하는 세례자 요한


 그러나 요한은 군중의 열광에 도취되거나 자신의 본분을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몰려들면 몰려들수록 그는 메시아를 높이고 자신은 그분의 신발 끈을 풀만한 자격도 없는 사람이라고 한없이 자신을 낮추었던 사람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 성에 입성합니다. 백성들은 환호하며 올리브 나무 가지를 들고 열렬히 환영합니다. 그러자 놀란 어린 나귀는 어찌할 바를 모르지요. 더구나 지나야할 길마다 사람들이 옷을 벗어 깔아놓기까지 합니다. 사람들의 겉옷을 밟고 지나던 어린 나귀는 백성들의 열광을 받자 착각에 빠지고 맙니다.  "야~, 내가 이렇게 대단한 줄은 몰랐네, 내가 이렇게 높은 존재였었나?"  나귀는 자기가 대단한 줄 알고 우쭐대며 앞발을 들고 "히히잉" 소리로 환대에 응답합니다. 안타깝지요.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환호가 자기를 향한 것으로 착각한 어린 당나귀의 뻐기며 으스대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가소롭기 짝이 없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세상에는 이런 어리석은 당나귀만도 못한 사람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를 들어올리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며 사는 어리석은 나귀만도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대림 제3주일을 지내는 우리는 세례자 요한의 가르침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정말 좋은 성당은 건물이나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만이 아니라 복음적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앞 다퉈 생겨나는 곳입니다. 복음적 삶은 끊임없이 주님을 높이고 서로를 낮추는 공동체의 모습입니다.

 오늘 세례자 요한의 삶을 지켜보면 자신을 끊임없이 낮추지요. 구름처럼 몰려드는 인파 속에서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6-27)고 자신을 낮추는 모습에서 우리는 요한이 증언한 메시아가 어떤 분이신지를 가늠하게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단체나 가정에서 신자 공동체 모두가 드러나야 할 분은 주님이시라고 고백하고 실천할 때 예수님이 주님인 복음적 공동체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평신도가 교회의 주인이라고 외치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성직자도 평신도도 아닌 하느님만이 주인이시지요!

  집이나 회사, 교회 공동체에서 개인적인 내 모습을 드러내기 바빴다면 빨리 그쳐야 합니다. 앞에서는 좋은 척하지만 분명 뒷소리가 나오기 시작하고 그것이 분열의 원인이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참 좋은 모습을 오늘 세례자 요한이 보여주었습니다. 한없이 자신을 낮추고 자신의 직분에 충실할 때 주님께서 드러나고 그 공동체가 복음적 공동체가 된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편집 : 원근식 요아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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