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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3 조회수1,088 추천수8 반대(1)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13일 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기념일
 
Elijah will indeed come and restore all things;
but I tell you that Elijah has already come,
and they did not recognize him
but did to him whatever they pleased.
(Mt.11-12)
 
 
 
제1독서 집회 48,1-4.9-11
복음 마태 17,10-13
 

파울로 코엘료의 ‘아크라 문서’라는 책에서 본 내용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땀 흘려 밭에 물을 대고 농사를 지을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를 찬양하는 저만의 방식이니까요.”

그때 악마가 다가와 달콤하게 속삭였다. “네가 하는 일은 저 바위를 언덕배기까지 계속 밀고 올라가는 것과 같아. 언덕배기에 올라가면 바위는 다시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간다고.”

악마의 말이 옳다고 여긴 사람들이 말했다. “삶이란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 게 전부구나.”

악마의 말이 옳지 않다고 여긴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나는 그 바위를 사랑할 겁니다. 꼭대기까지 밀고 올라가는 동안 늘 사랑하는 바위 곁에 있을 수 있으니 얼마나 좋습니까?”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행복과 불행을 결정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실제로 부정적인 말만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또한 자신의 주장만이 옳다면서 다른 이들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도 상당히 많다는 것을 자주 체험하게 됩니다. 문제는 잘못된 말과 행동을 보면서 스스로를 반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 말과 행동을 그대로 본받고 또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것이지요.

겸손한 사람은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부족함과 나약함을 알기에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며, 사랑의 마음으로 경청합니다. 그리고 이런 열린 마음이 행복의 길로 우리를 인도해 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종교지도자들은 고집이 참 셌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이 세운 율법의 기준을 내세우면서 다른 이는 틀리고, 자기는 맞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특히 말라키 예언자를 따르는 바리사이들의 전통은 엘리야가 종말 전에 온다고 주장했었거든요. 그들은 엘리야가 와서 먼저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의 마음을 부모에게 돌리며 모든 것을 예전의 상태로 돌려놓는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이 엘리야가 아직 오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토록 기다렸던 그리스도 일리가 없다는 것이지요. 즉, ‘이자가 그리스도라면, 엘리야가 먼저 왔어야 한다.’는 것이 그들의 흔들리지 않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주장은 실제로 무지한 군중 사이에게 퍼져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했습니다.

사실 예수님 말씀처럼 엘리야는 이미 왔습니다.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엘리야가 그대로 온 것은 아니었습니다. 대신 예수님을 미리 철저하게 준비했던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의 몫을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성경을 철자대로만 믿었기에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불행의 길에 들어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역시 그럴 수 있습니다.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갖지 못한다면, 또한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받아들이지 못한다면 그토록 원하는 행복의 주인공이 아닌, 제발 내게 없기만을 바라는 불행의 주인공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 앞에서 움츠러 들지 않고 대담하게 뚫고 나갈 결심을 굳힌다면 우리를 가로막는 장애물 대부분은 사라질 것이다(오리슨 스웨트 마든).


 

야자열매(‘사랑 밭 새벽편지’ 중에서)

여름날 강가의 우거진 숲 속에서 토끼들이 한가롭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풍덩! 하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들은 토끼들은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기 시작했다. 이를 본 여우는 생각했다.

'저렇게 허겁지겁 도망치는 걸 보니 무서운 짐승이라도 쫓아오고 있나보다.'

여우는 토끼 뒤를 따라 달렸다. 이를 본 노루도 따라서 달렸다. 사슴도, 기린도, 늑대도, 코끼리도. 온갖 동물들이 겁에 질렸다. 한참 달리던 동물들은 이윽고 숨이 차서 잠시 멈춰 섰다. 이때 맨 끝에서 달리던 코끼리가 물었다.

"얘들아, 너희들은 지금 왜 뛰어 갔던 거야?"

"모르겠어, 난 늑대가 뛰기에 따라 뛰고 있어."

"난 기린이 뛰길래.."

그러자 맨 앞에 있던 토끼들이 말했다.

"우리가 자고 있는데 큰 소리를 들었어. 그래서 무서워서 도망쳤지."

몇 마리의 동물들이 토끼들이 자고 있던 현장으로 돌아갔다. 그곳에는 무서운 동물은커녕 강가로 떨어진 야자열매가 보였다.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에 걱정하고, 쓸데없는 것들에 집착하고 있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조금만 더 주위를 둘러보고, 조금만 더 지금의 현실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올바른 판단, 그리고 올바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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