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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정체성의 힘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3 조회수1,216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나해 대림 제3주일(자선주일)


<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


복음: 요한 1,6-8.19-28






구세주


안드레이 루블료프(Andrei Rublev) 작, (1410-1420)


     < 정체성의 힘 >

 

얼마 전 MBC ‘휴먼다큐 - 사람이 좋다에 폐암 합병증으로 사망한 고 김자옥씨의 가족들이 출연해 고인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고인의 남편 오승근씨는 암임을 알고도 치료를 미루고 고인이 tvN꽃보다 누나에 출연했던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병원에서는 오랜 여행으로 피곤해지는 꽃보다 누나와 같은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을 말렸고 촬영을 위해 출국하기 한 달 전부터 항암치료를 권유했었지만 고인은 치료 대신 프로그램을 선택했던 것입니다.

당시 김자옥은 꽃보다 누나에서 자주 누워있는 모습은 물론, 길에 있는 벤치에 눕기도 했고,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대성당에 들어가서는 목 놓아 우는 모습을 보인 바 있습니다. 김자옥씨는 그냥울었다고 하지만 이유가 있었던 것입니다.

고인의 아들 오영환씨는 자신의 어머니가 암을 치료하는 대신 방송에 출연하여 돈을 벌어야만 했던 이유를 밝혔습니다. 어머니의 수첩에는 오영환씨의 결혼 준비과정이 빼곡히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암인 것을 알고도 결혼식을 앞당기지 않았습니다. 무언가 더 해 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오씨는 어머니가 제 결혼자금에 대한 부담감이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이것도 해주고 싶고 저것도 해주고 싶으셨던 것 같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고인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아픈 와중에도 작품을 쉬지 않았다는 얘기에 대해 제작진이 묻자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100% 아들 결혼식 자금 때문에 그러셨던 것 같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고인은 지난 1116일 사망했고 아들의 결혼식은 내년 3월 예정입니다.

   

우리는 당장 죽음이 와도 지금 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요? 고 김자옥씨가 당장 죽는다고 하더라도 프로그램에 출연했던 이유는 자신이 어머니로서 그 일을 해야 하는 확신이 죽음보다도 강했기 때문입니다. 죽음이 오더라도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명확히 아는 사람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것을 정체성이라고 합니다. 이 정체성은 죽음도 이기는 힘이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사람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묻는 것은 딱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당신은 누구요?” 하는 정체성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왜 세례를 주는 거요?”라고 하는 행위의 이유에 대한 물음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또렷이 아는 사람입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하느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았고 예언되어 있는 그리스도의 길을 닦는 역할을 하도록 파견된 사람이란 뜻입니다.

이렇게 말했는데도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라고 따집니다.

우리는 이들이 사제요 레위인들, 즉 성전에서 봉사하는 직무를 수행하는 이들임을 놓치지 말아야합니다. 이들은 메시아를 위한 예식을 하면 우리가 해야지 당신이 어떠한 권위로 근거도 없는 예식을 하는 것이요?”라며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이 누구인지만 더 명확히 말합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 “너희들은 사제요 레위인이라고는 하지만 너희는 너희가 누구인지조차 모른다. 너희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남이 하는 일에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에게 맡겨진 일만 충실히 하였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알아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히 알았던 요한 세례자와 일은 열심히 하고 있을 지라도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며 무작정 시키는 일만 하고 있었던 당시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완전하게 대비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 가기보다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가 행하는 세례를 인정하셨던 것입니다. 반면 성전에 가서는 탁자를 뒤집어엎고 장사꾼들을 내쫓습니다. 그들은 평생 성전에서 봉사했다고 하더라도 하느님께서 나는 너희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을 뽑아주신 하느님이 누구인지 명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를 아는 것은 나를 보내신 분을 아는 것입니다. 나를 보내신 분이 누구인지 명확히 아는 것이 나의 정체성인 것입니다. 따라서 하는 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자신이 누구인지 누구로부터 파견되었는지를 명확히 아는 것이 먼저입니다.

   

알프레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교수는 영국의 대 철학자이며 위대한 수학자입니다. 그는 철학자 버드란트 러셀의 스승이기도 하며 러셀과 함께 여러 책을 저술하기도 한 사람입니다.

화이트헤드는 교육가의 집안에서 태어났는데 그 집안은 대대로 엥글리컨 개신교를 믿어오던 가문이었습니다. 그는 젊은 시절에 철학과 수학에 심취하면서 신앙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대대로 이어오던 신앙을 버리고 교회와도 담을 쌓고 살아갔습니다.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어느 날, 그 지방에 엄청난 폭설이 내렸습니다. 외출 중이었던 그는 서둘러서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디선가 가냘픈 노랫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눈구덩이에 빠져 있는 늙은 할머니가 부르는 노래였습니다. 서둘러 눈덩이에서 할머니를 건져주었습니다.

할머니는 화이트헤드에게 정말 고맙다고 거듭 감사하면서 물었습니다.

내게 이런 큰 은혜를 베풀어주셨으니 당신은 분명 신앙심이 깊은 분이겠지요. 어느 교회에 나가십니까?”

화이트헤드는 약간 겸연쩍은 듯 머리를 끌쩍이며 대답했습니다.

아뇨, 저는 교회에 다니지 않습니다. 신앙심도 없고요.”

그러자 노파는 의외라는 듯이 아니, 다 늙은 사람이 어쩌자고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단 말이오! 그러다가 나처럼 뜻밖의 사고를 당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러시오? 나는 저 눈구덩이 속에서 죽을 것이라 생각하고 계속 열심히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오하고 말했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고는 생각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저 할머니로 하여금 저토록 두려운 죽음 앞에서 큰 확신을 갖고 찬송을 부르게 하는가? 내가 탐구하고 있는 철학이나 수학, 아니 어느 학문이라도 저 할머니가 갖고 있는 저런 확신을 줄 수 없지 않는가?’

그 때부터 그는 자기가 탐구해 온 학문에 대해 회의하기 시작했습니다. 말하자면, 그가 젊어서는 신앙에 대해 회의하였으나 늙은 이제는 그토록 자신 만만해 하던 학문에 대해 회의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는 버렸던 신앙을 다시 찾기로 하고 교회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세상에 던져진 존재기에 자신의 원천인 하느님을 모른다면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참으로 의미 있는 것인지 확신을 가질 수 없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려면 나를 만들어주시고 세상에서 살게 해 주신 분을 알아야만 합니다. 정체성은 관계에서 확실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잘 알고 있을까요? 우리가 누구로부터 파견 받습니까? 바로 그리스도로부터 파견 받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로부터 파견 받았다면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분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일은 당신이 우리를 위해 생명을 바치신 것처럼 우리 또한 이웃을 위해 생명을 바치는 것입니다. 파견 하신 분의 뜻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면 마지막 날 주님께서도 나도 너를 모른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저는 당신과 함께 먹고 마시고 기적과 예언도 행하지 않았습니까?”라고 하겠지만 그분은 여전히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하실 것입니다.

   

지금 죽어도 이 일을 하겠다는 확신이 있다면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사람은 그분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그분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자신이 하는 일에 확신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서는 자신을 파견해 주신 분을 아는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진정 잘 알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점점 작아지고 그분은 점점 커지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음을 깨닫고 그저 찬미와 흠숭만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하느님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고, 그래서 그분의 은혜에 한없이 감사하게 됩니다. 우리 정체성이 확실할 때 세상의 어떤 어려움도 당당하게 이겨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정체성이 강한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모든 일이 감사하며 살아가기에 힘이 넘칩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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