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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나는 누구인가?"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4 조회수95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14. 대림 제3주일(뉴튼수도원 34일째), 
이사61,1-2ㄱ.10-11 1테살5,16-24 요한1,6-8.19-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나는 누구인가?"

열심히 사는 모습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냥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활기 없어 보이던 수사님인데 
여기서는 밝게 활짝 핀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사는 모습이 좋아 나눈 덕담입니다. 

"아, 수사님, 지금처럼 사시면 성인이 되겠습니다. 
한국에 가면 수사님 잘 산다고 소문내겠습니다.“

제자리에서 충실히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 
저절로 나온 덕담이었고 수사님도 내심 기뻐했습니다. 

매일 미사책 오늘의 묵상을 읽으면서 
집필 신부님의 겸손하고 충실한 모습에도 감동했습니다. 

길다 싶지만 많은 부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제 책상 머리에는 이런 글쪽지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최 요한 신부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
(2012년2월20일-3월31일). 

처음 주임 신부로 발령 받고 잠깐 피정하러 들어간 
수도원에서 고해성사를 받을 때 고해 신부님께 받은 것입니다. 
신부님은 보속과 훈계와 함께 직접 이 글을 써서 주셨는데,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 성구를 
한 달 동안의 양식으로 삼기를 바라시는 배려였습니다. 
저는 한 달이 아니라 언제나 기억하며 그렇게 살려고 
이 작은 글쪽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주 잊고 지내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눈에 띌 때마다 새삼스레 감동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어쩌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바오로 사도의 훈계이지만 
살아갈수록 보석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바로 제가 써드린 처방전 보속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보다 더 좋은 영적 처방은 없습니다. 
고백성사를 보는 분들에게 위 말씀을 얼마나 많이 써드렸는지 
성경 책의 이 페이지는 손때로 누렇게 바랬습니다. 

오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네 측면에 걸쳐 묵상을 나눕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매일 묻는 자가 수도자란 말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매일 '나는 누구인가?' 물어야 나를 잃지 않습니다. 

매일 처방전 말씀을 확인하고 마음에 새기는 일도
 '참 나'를 살기 위함입니다. 

첫째, 나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혼은 완결체가 아니라 늘 반쪽입니다. 
말씀과 결합하여 하나될 때 
비로소 생명의 빛을 발하는 살아있는 영혼이 됩니다. 

하여 저는 언제나 고백성사 보속은 그분의 영적사정을 고려하여 
적절한 하느님의 말씀을 처방전에 써서 드립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은 얼마나 풍부한지요.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리라.“(이사61,11).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척박한 우리 마음에서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함으로 
그 사막 같은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도 말씀의 은총입니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십시오.“
(1테살5,22).

분별력의 지혜도 말씀의 은총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나 바오로 사도 모두가 
말씀을 살았던 '말씀의 사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바로 이사야서의 하느님 말씀에서 
자기의 신원을 찾아낸 세례자 요한 역시 
성경에 정통한 '말씀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둘째, 나는 주님께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은 생명이요 빛입니다. 
말씀만이 아니라 성령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제가 매일 이렇게 강론을 쓸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쓰고 나면 저절로 성령께 감사하는 마음에 기도를 올립니다. 

이사야서의 서두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바로 이것이 성사(聖事)의 은총입니다. 
말씀의 기름과 동시에 우리 위에 내리시는 주님의 영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간곡히 권합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늘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 역시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바오로의 말씀대로 
'영과 혼과 몸'의 삼중적 존재로 되어 있는 인간이요, 
영이 성령과 하나될 때 
혼과 몸도 살아나 거룩하고 온전한 인간입니다. 
바로 우리 생명의 근원이자 영혼의 영혼이 성령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나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 안에 자리 잡아 깊이 뿌리 내릴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입니다. 
주님 안 제자리를 몰라, 잃어버려 
끝없는 방황에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자리 잡았도다.“

어제 부른 성무일도서 동정녀 공통 저녁기도 세 번째 후렴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대할 때면 늘 떼제 마르코 수사님이 생각납니다. 
요셉수도원 초창기부터 프랑스 떼제 본원에 가시기 까지 
20년 이상을 
저희 요셉수도원 형제들과 깊은 친교를 나누신 분입니다. 

바로 떼제 마르꼬 수사님이 이 구절을 그리도 좋아하셨습니다.
"정말 이 구절이 좋습니다. 마음에 깊은 평화를 줍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말씀하시던 수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흰눈을 보시며 '하얀 침묵(white silence)'이라 하시던 
아름다운 말마디도 잊지 못합니다. 

오늘 이사야서 다음 말씀을 통해 
바로 '주님 안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존엄한 품위의 회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
(이사61,10).

참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주님 안을 벗어나서는 기쁨도 격조있는 품위의 삶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 안에서가 내 삶의 자리임을 깨달아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넷째, 나는 주님께 '파견' 받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는 분이 수녀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Where are you from)?'의 물음에 이은 
수녀님의 화두와 같은 답변입니다. 

'나는 아무데로부터 오지 않았다(I am from nowhere)".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신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이사61,1ㄴ-2ㄱ).

바로 이사야의 이 말씀이 
예수님과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입니다. 
주님께 이런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요 
이런 은혜를 나누라고 주님께 파견 받은 우리 존재들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주님에 앞서 길을 닦으라 파견 받은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고백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요한1,26-28).

바로 우리를 보내신 분, 
주님이 우리 가운데 서 계십니다.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또 우리를 세상 내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대림 제3주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강론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우리 신원의 물음에 대한 답을 
네 측면에 걸쳐 명쾌하게 밝혀 주셨고, 
주님은 우리 모두 이를 잘 깨달아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은총의 대림시기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2014.12.14. 대림 제3주일(뉴튼수도원 34일째), 이사61,1-2ㄱ.10-11 1테살5,16-24 요한1,6-8.19-28


                                                                                                    

"나는 누구인가?"



열심히 사는 모습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냥 보기만 해도 즐겁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는 활기 없어 보이던 수사님인데 

여기서는 밝게 활짝 핀 모습으로 역동적으로 사는 모습이 좋아 나눈 덕담입니다. 

"아, 수사님, 지금처럼 사시면 성인이 되겠습니다. 

한국에 가면 수사님 잘 산다고 소문내겠습니다.“


제자리에서 충실히 사는 모습이 아름다워 저절로 나온 덕담이었고 수사님도 내심 기뻐했습니다. 

매일 미사책 오늘의 묵상을 읽으면서 집필 신부님의 겸손하고 충실한 모습에도 감동했습니다. 

길다 싶지만 많은 부분 그대로 인용합니다.


-제 책상 머리에는 이런 글쪽지 하나가 붙어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늘 기도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최 요한 신부에게 보여 주신 하느님의 뜻입니다."(2012년2월20일-3월31일). 


처음 주임 신부로 발령 받고 잠깐 피정하러 들어간 수도원에서 고해성사를 받을 때 고해 신부님께 받은 것입니다. 


신부님은 보속과 훈계와 함께 직접 이 글을 써서 주셨는데, 

오늘 독서에 나오는 이 성구를 한 달 동안의 양식으로 삼기를 바라시는 배려였습니다. 


저는 한 달이 아니라 언제나 기억하며 그렇게 살려고 이 작은 글쪽지를 고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자주 잊고 지내는 것도 사실입니다만, 

눈에 띌 때마다 새삼스레 감동하고 위로를 받습니다. 


어쩌면 소박하기 그지없는 바오로 사도의 훈계이지만 살아갈수록 보석 같은 말씀이라는 것을 실감합니다.-


바로 제가 써드린 처방전 보속 말씀입니다. 

성경 말씀보다 더 좋은 영적 처방은 없습니다. 

고백성사를 보는 분들에게 위 말씀을 얼마나 많이 써드렸는지 성경 책의 이 페이지는 손때로 누렇게 바랬습니다. 



오늘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주제로 네 측면에 걸쳐 묵상을 나눕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보다 더 중요한 물음은 없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매일 묻는 자가 수도자란 말도 있습니다. 


끊임없이 매일 '나는 누구인가?' 물어야 나를 잃지 않습니다. 


매일 처방전 말씀을 확인하고 마음에 새기는 일도 '참 나'를 살기 위함입니다. 



첫째, 나는 주님의 '말씀'으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영혼은 완결체가 아니라 늘 반쪽입니다. 

말씀과 결합하여 하나될 때 비로소 생명의 빛을 발하는 살아있는 영혼이 됩니다. 


하여 저는 언제나 고백성사 보속은 그분의 영적사정을 고려하여 적절한 하느님의 말씀을 처방전에 써서 드립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의 내용은 얼마나 풍부한지요.


"땅이 새순을 돋아나게 하고, 정원이 싹을 솟아나게 하듯, 

주 하느님께서는 모든 민족들 앞에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하리라.“(이사61,11).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 

척박한 우리 마음에서 의로움과 찬미가 솟아나게 함으로 그 사막 같은 마음을 옥토로 만드는 것도 말씀의 은총입니다.


"모든 것을 분별하여, 좋은 것은 간직하고 악한 것은 무엇이든지 멀리하십시오.“(1테살5,22).


분별력의 지혜도 말씀의 은총입니다. 

이사야 예언자나 바오로 사도 모두가 말씀을 살았던 '말씀의 사람'이었음을 깨닫습니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다.“


바로 이사야서의 하느님 말씀에서 자기의 신원을 찾아낸 세례자 요한 역시 

성경에 정통한 '말씀의 사람'이었음을 봅니다.



둘째, 나는 주님께 '성령'을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은 생명이요 빛입니다. 

말씀만이 아니라 성령으로 살아가는 우리들입니다. 


말씀을 깨닫는 것도, 제가 매일 이렇게 강론을 쓸 수 있는 것도 성령의 은사입니다. 

쓰고 나면 저절로 성령께 감사하는 마음에 기도를 올립니다. 


이사야서의 서두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해당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 하느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바로 이것이 성사(聖事)의 은총입니다. 

말씀의 기름과 동시에 우리 위에 내리시는 주님의 영입니다. 



바오로 사도 역시 간곡히 권합니다.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


늘 성령께 마음을 활짝 열고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성령의 도움 없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받은 모든 것 역시 성령의 은사들입니다. 


바오로의 말씀대로 '영과 혼과 몸'의 삼중적 존재로 되어 있는 인간이요, 

영이 성령과 하나될 때 혼과 몸도 살아나 거룩하고 온전한 인간입니다. 

바로 우리 생명의 근원이자 영혼의 영혼이 성령임을 깨닫습니다.



셋째, 나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주님 안에 자리 잡아 깊이 뿌리 내릴 때 비로소 안정과 평화입니다. 

주님 안 제자리를 몰라, 잃어버려 끝없는 방황에 두려움과 불안입니다.


"나의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자리 잡았도다.“


어제 부른 성무일도서 동정녀 공통 저녁기도 세 번째 후렴입니다. 


제가 이 구절을 대할 때면 늘 떼제 마르코 수사님이 생각납니다. 

요셉수도원 초창기부터 프랑스 떼제 본원에 가시기 까지 

20년 이상을 저희 요셉수도원 형제들과 깊은 친교를 나누신 분입니다. 


바로 떼제 마르꼬 수사님이 이 구절을 그리도 좋아하셨습니다.

"정말 이 구절이 좋습니다. 마음에 깊은 평화를 줍니다.“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말씀하시던 수사님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흰눈을 보시며 '하얀 침묵(white silence)'이라 하시던 아름다운 말마디도 잊지 못합니다. 


오늘 이사야서 다음 말씀을 통해 바로 '주님 안에서' 샘솟는 기쁨이요 존엄한 품위의 회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크게 기뻐하고, 

내 영혼은 나의 하느님 안에서 즐거워하리니, 

신랑이 관을 쓰듯, 

신부가 패물로 단장하듯, 

그분께서 나에게 구원의 옷을 입히시고, 의로움의 겉옷을 둘러 주셨기 때문이다."(이사61,10).


참 아름다운 영혼의 고백입니다. 

그대로 이 거룩한 미사은총을 상징합니다. 


주님 안을 벗어나서는 기쁨도 격조있는 품위의 삶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 안에서가 내 삶의 자리임을 깨달아 사는 것이 구원입니다.



넷째, 나는 주님께 '파견' 받아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물음입니다. 


더불어 생각나는 일화가 있습니다. 


어는 분이 수녀님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어디서 왔느냐(Where are you from)?'의 물음에 이은 수녀님의 화두와 같은 답변입니다. 


'나는 아무데로부터 오지 않았다(I am from nowhere)". 


하느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이렇게 에둘러 표현한 것입니다. 

하느님은 장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마음이 부서신 이들을 싸매어 주며,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갇힌 이들에게 석방을 선포하게 하셨다. 

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이사61,1ㄴ-2ㄱ).


바로 이사야의 이 말씀이 예수님과 제자들뿐 아니라 우리 믿는 이들의 신원입니다. 

주님께 이런 은혜를 입은 우리들이요 이런 은혜를 나누라고 주님께 파견 받은 우리 존재들입니다. 


바로 이의 모범이 오늘 복음의 세례자 요한입니다. 

주님에 앞서 길을 닦으라 파견 받은 세례자 요한의 겸손한 고백입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1,26-28).


바로 우리를 보내신 분, 주님이 우리 가운데 서 계십니다. 

매일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은 또 우리를 세상 내 삶의 자리로 파견하십니다.



대림 제3주일,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 강론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 우리 신원의 물음에 대한 답을 네 측면에 걸쳐 명쾌하게 밝혀 주셨고, 

주님은 우리 모두 이를 잘 깨달아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십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이 은총의 대림시기 평화의 하느님께서 친히 여러분을 완전히 거룩하게 해 주시기를 빕니다. 

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영과 혼과 몸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켜주시기를 빕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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