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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4 조회수1,005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14일 대림 제3주일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Isaiah the prophet said.”
(Jn,1.23)
 
 
제1독서 이사 61,1-2ㄱ.10-11
제2독서 1테살 5,16-24
복음 요한 1,6-8.19-28
 

오늘은 2014학년도 예비신학교의 마지막 날로, 한 해 동안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총에 감사하는 종강미사를 봉헌합니다. 이 미사 때에 어떤 강론을 할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고등학교 때의 일 하나가 떠올려집니다. 바로 커닝(Cunning)입니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니던 때에는 아마 커닝이라는 것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 없을 정도로 재미로라도 많은 친구들이 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잘못된 행동입니다. 본인의 노력 없이 자신의 성적을 올리려는 부정행위이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 때, 학력고사(저 때에는 수능이 아니라 학력고사라는 이름을 썼지요)도 마친 마지막 학기말 시험 때였습니다. 반 친구 모두가 추억을 하나 만들자고 하면서 반 전체가 함께 하는 커닝을 위한 작전을 세웠습니다. 몇 번의 연습을 통해 이제 완벽하다는 생각이 든 상태에서 시험에 임했습니다. 드디어 시험 감독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문제지를 나눠주십니다. 그리고는 저벅저벅 교실 맨 뒤편으로 가시고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다 보고 있으니까 커닝할 생각하지 마! 걸리면 알지?”

어떻게 되었을까요? 반 전체가 함께 했던 커닝 작전은 성공했을까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교실 뒤편에 서 계신 선생님께서 우리의 뒤통수를 뚫어져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서 차마 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그냥 정직하게 답을 풀게 되었지요.

문제를 다 풀고 나서 답안지를 제출하려고 일어서서 앞으로 걸어가다가 뒤에 서 계신 감독 선생님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는 눈을 감고 서서 졸고 계시더군요. 우리는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 말이지요.

선생님께서 졸고 계셨지만 우리들을 보고 있다는 생각에 커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이 경험을 떠올리면서 ‘주님께서 우리를 보고 계신다는 생각을 한다면 과연 죄를 범할까?’라는 의문을 던져 봅니다. 우리가 죄를 범하는 이유는 주님의 눈길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들의 모든 것들을 다 보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딴 짓, 즉 주님께서 원하지 않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대림 제3주간인 오늘 복음에서는 세례자 요한의 모습이 나옵니다.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이 아닌 철저하게 주님만을 증거하는 모습, 과연 그러한 겸손한 모습을 간직할 수 있을까요? 바로 주님께서 늘 자신을 지켜보신다는 마음을 잊지 않았기에 자신의 사명에 충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 역시 이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늘 지켜보심을 그래서 늘 깨어서 주님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서 기쁘게 주님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것이 인생이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결합이 있는 곳에 기쁨이 있다(괴테)

 

시선을 마주쳐야 합니다.

이번에 신학교를 지원할 예비신학생들과의 면담 때 느꼈던 것입니다. 면담을 하는 많은 학생들이 저와 눈을 잘 마주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선을 어디에 둘지를 몰라서 이곳저곳을 바라보면서 불안해하는 모습을 확실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긴 자신의 성소에 대해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불안한 생각에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또 한 가지는 요즘 사람들의 손에 반드시 들려 있는 스마트폰의 영향이 아닌가 라는 생각도 들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의 손에는 늘 스마트폰이 들려 있습니다. 심지어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스마트폰에 시선이 자주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치는 일이 없는 것이지요. 귀로 듣는다고 하지만, 시선을 마주치며 말을 하는 것과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눈을 마주치며 말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면담을 하면서도 저와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불안한 모습을 비치는 것이지요. 저 역시 스마트폰으로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자주 스마트폰을 보게 됩니다. 그런데 예비신학생들과의 면담을 통해 다짐 할 수 있었던 것은 사람들을 만날 때에는 무조건 스마트폰을 보지 않겠다는 것, 아니 아예 스마트폰의 소리를 꺼버리겠다는 것입니다. 스마트폰과 비교할 수 없이 중요한 것은 바로 내 앞에 있는 ‘사람’이니까요.

많은 사람들이 외로워하며 힘들어 합니다.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외면과 무관심으로 인해 더욱 더 그 힘듦의 무게를 짊어지게 했던 것은 아닐까요? 따뜻한 시선을 서로 나눌 수 있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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