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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매일복음(2014.12.14) 빛과 소리
작성자김기욱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4 조회수671 추천수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6-8.19-28

6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이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요한이었다. 7 그는 증언하러 왔다. 빛을 증언하여 자기를 통해 모든 사람이 믿게 하려는 것이었다. 8 그 사람은 빛이 아니었다. 빛을 증언하러 왔을 따름이다.

19 요한의 증언은 이러하다.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에서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당신은 누구요?” 하고 물었을 때, 20 요한은 서슴지 않고 고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 하고 고백한 것이다.

21 그들이 “그러면 누구란 말이오? 엘리야요?” 하고 묻자, 요한은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러면 그 예언자요?” 하고 물어도 다시 “아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2 그래서 그들이 물었다. “당신은 누구요? 우리를 보낸 이들에게 우리가 대답을 해야 하오. 당신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말하는 것이오?”

23 요한이 말하였다. “나는 이사야 예언자가 말한 대로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다.”

24 그들은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이었다. 25 이들이 요한에게 물었다. “당신이 그리스도도 아니고 엘리야도 아니고 그 예언자도 아니라면, 세례는 왜 주는 것이오?”

26 그러자 요한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물로 세례를 준다. 그런데 너희 가운데에는 너희가 모르는 분이 서 계신다. 27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신데,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

28 이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에서 일어난 일이다.


어제 복음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임을 깨닫게 하셨는데, 왜 세례자 요한 본인은 예루살렘에서 온 사제들과 레위인들의 질문에 “아니다.”라고 대답했을까? 

세례자 요한은 그들 가운데 서 계시는 그 분을 알아보고 있지만, 그 사실을 바리사이들이 보낸 사람들에게 밝히지 않기 위해서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그들이 묻는 ‘그 예언자’는 신명기 18,15-22에 나오는 예언자이다.

15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 16 그것은 너희가 호렙에서 집회의 날에 주 너희 하느님께 청한 것이다. 그때에 너희는 이렇게 말하였다. ‘다시는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게 하시고 이 큰 불도 보지 않게 해 주십시오. 저희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17 그러자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들이 한 말은 옳다. 18 나는 그들을 위하여 그들의 동족 가운데에서 너와 같은 예언자 하나를 일으켜, 나의 말을 그의 입에 담아 줄 것이다. 그러면 그는 내가 그에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그들에게 일러 줄 것이다. 19 그가 내 이름으로 이르는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은 내가 직접 추궁할 것이다. 20 또한 내가 말하라고 명령하지도 않은 것을 주제넘게 내 이름으로 말하거나,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는 예언자가 있으면, 그 예언자는 죽어야 한다.’ 21 그런데 너희가 마음속으로, ‘주님께서 하지 않으신 말씀을 우리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22 그러나 예언자가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였는데도 그 말이 이루어지지 않거나 일어나지 않으면, 그것은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니라 예언자가 제멋대로 말한 것이므로, 너희는 그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엘리야이고 그 예언자임을 바르게 깨달았다. 언제? 세례자 요한이 죽음 다음, 그리고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하늘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은 다음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명령하셨다.(마태오 17,9) 세례자 요한이 증거하는 빛은 부활의 빛이기 때문이다. 자기가 또는 남이 아무리 빛이라 불러도 한번 꺼지고 부활하지 못하는 빛은 참빛이 아니다.

세례자 요한은 사람들이 자기를 누구라고 규정하는 것을 부정했다. 사람들은 그들이 잡아 없애려는 대상에게 우선 그럴듯한 명칭을 붙여 놓고 그 목표물을 미리 준비해 놓은 덫으로 몰아넣는다. ‘그리스도’, ‘엘리야’, ‘그 예언자’ 모두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벼르고 있는 목표물에게 붙이는 명칭이다.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말과 행위가 혹시라도 뒤에 오시는 분에게 누가 되거나 그분의 영광을 가리지 않을까 조심했다. 신발 끈을 풀어드리려다 그분을 살짝 가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는 빛이 아니라 빛을 증언하는 소리였다. 소리는 그림자를 만들지 않는다. 그림자를 만드는 것은 오히려 작은 빛들이다. 빛은 밝음과 어둠을 동시에 만든다. 함민복 시인의 ‘전구를 갈며’라는 시가 생각나서 옮겨 적는다.


전구를 갈며


잠시 빛을 뽑고 다섯 손가락으로 어둠을 돌려

삼십 촉 전구를 육십 촉으로 갈면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예수는 더 밝게 못 박히고

십자가는 삼십 촉만큼 더 확실히 못 박힌다

시계는 더 잘 보이나 시간은 같은 속도로 흐르고

의자는 그대로 선 채 앉아 있으며

침대는 더 분명하게 누워 있다

방안의 그림자는 더 색득해지고

창 밖 어둠은 삼십 촉만큼 뒤로 물러선다

 

도대체 삼십 촉만큼의 어둠은 어디로 갔는가

내 마음으로 스며 마음이 어두워져

풍경이 밝아져 보이는가

내 마음의 어둠도 삼십 촉 소멸되어 마음이 밝아져

풍경도 밝아져 보이는가

 

어둠이 빛에 쫓겨 어둠의 진영으로 도망쳤다면

빛이 어둠을 옮겨주는 발이란 말인가

십자가에 못 박혀 벽에 못 박혀 있는 깡마른 예수여

연꽃에 앉아 법당에 앉아 있을 뚱뚱한 부처여

죽음을 돌려 삶을 밝힐수밖에 없단 말인가

 

잠시 다섯 손가락으로 빛을 돌려 어둠을 켜고

삼십 촉 전구를 육십 촉으로 갈면


소리가 울리고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대림 제3주일에 소리가 울리고 있다.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주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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