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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말씀의초대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작성자김중애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16 조회수530 추천수0 반대(0) 신고

2014년 12월 16일 화요일

[(자) 대림 제3주간 화요일]

 

말씀의초대

스바니야 예언자는 하느님을

신뢰하지 않는 불행한 예루살렘을

 단죄한 뒤 앞으로 다가올 민족들의

회개와 정화의 때를 예언한다.

그날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을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두 아들의 비유를 들어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신다.

 말만 앞세우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구원에 이르는

회개이자 믿음의 모습이다.

 

제1독서

<구세주의 구원이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2.9-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2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9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10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11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6-7.17-18.19와 23(◎ 7ㄱ)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복음환호송

◎ 알렐루야.
○ 오소서,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묵상

일제 강점기 때 광화문을

철거하는 것을 반대하는 등

일본인이면서도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깊은 애정으로 이 땅의 문화재를

 보존하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유명한 ‘야나기 무네요시’

라는 인물이 있습니다.

일본 민예 운동의 중심인물로서

뛰어난 종교 철학자였던

그의 글을 읽다가 진정한

아름다움을 인식하는 자세에 대한

인상적인 대목을 만났습니다.
“보지 않고 아는 사람은 신비를 모른다.

가령 미(美)의 내용에 대해 상당한

 지식이 있다고 해서 그가 말하는 것이

과연 미일까? 분명하게 정의할 수 있는

미는 과연 깊은 미일까?

별것 아닌 미라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일까?

미학자는 미학에서 그의 지식을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된다.

아니, 그게 아니다.

아는 것에서 보는 것을

이끌어 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본말 전도이기 때문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 마음, 사람』에서).
그는 무엇보다

 ‘아는 것으로 보는 것을 대신하려고’

하는 것을 경계합니다.

위대한 예술 작품이나 자연의

 아름다움을 진정 만나고 싶다면

그것에 관해 말하기 이전에 그것이

우리에게 속삭이도록 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미적 인식에 대한 그의 통찰은

말씀의 강생이라는 신앙의 깊은

신비와 진리를 깨닫고자 애쓰며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에게

가르침이 됩니다.
우리는 이미 알고 있는 지식에 따라

 예측하고 판단함으로써 진리를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의 빛은 언제나 ‘자신보다 더 큰’

신비에서부터 나옵니다.

우리는 가만히 그 앞에 머물러야 합니다.

너무도 찬란한 ‘진리의 빛’은

어둠에 익숙한 우리를 눈멀게 합니다.

 인내와 갈망으로 빛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는 시간을 침묵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마침내 빛이 우리의 눈을 열어 주어

강생의 진리를 ‘바라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가 구원의 신비 안에

살고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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