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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겸손한 삶 -내 삶의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이다-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1 조회수1,287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명준님의 사진.
김명준님의 사진.
김명준님의 사진.


2014.12.21. 대리 제4주일(뉴튼수도원 41일째), 

사무7,1-5.8ㄷ-12.14ㄱ.16 로마16,25-27 루카1,26-38


                                                                                                   

겸손한 삶

-내 삶의 문장의 주어는 하느님이다-



모든 덕중의 덕이 겸손입니다. 


오늘은 겸손한 삶에 대한 묵상 나눔입니다. 

사막 수도자의 일화입니다.


-암마 테오도라는 제자들에게 말했다. 

"수행도, 밤샘기도도, 그 어떤 고행도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오직 겸손만이 할 수 있다. 

악령들을 모두 몰아낸 한 독수자가 있었다. 

그가 악령들에게 물었다. 

'무엇이 너희들을 달아나게 했는가? 단식인가?'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도 먹지 않고 마시지도 않는다.' 

'밤샘 기도인가?' 

그들은 대답했다. '우리도 잠을 자지 않는다.' 

'그러면 어떤 힘이 너희를 몰아냈는가?' 

그들은 대답했다. '겸손을 제외한 그 무엇도 우리를 쫓아낼 수 없다.'“-


성인들의 특징은 한결같이 겸손한 삶에 있습니다. 


겸손한 사랑, 겸손한 믿음입니다. 

하느님을 알고 자기를 아는 겸손은 그대로 지혜입니다. 


하느님은 겸손하시고 또 겸손한 자를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오늘 나자렛 촌 동네의 마리아를 찾아 온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도 하느님의 겸손을 깨닫습니다. 


무엇이 겸손한 삶입니까?

하느님이 내 '삶의 문장'에 주어(主語)가 되어야 겸손한 삶입니다.


오늘 1독서에서 다윗의 겸손을 일깨우는 하느님의 사람, 나단 예언자입니다.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란 말에 이어 

나단은 다윗에게 베푸신 하느님의 업적을 수없이 열거하면서 다윗의 겸손을 일깨우십니다. 


온통 하느님인 '내'가 다윗을 위해 하신 일들입니다. 

다윗의 온 '삶의 문장'에 주어는 하느님 '나'뿐입니다. 

모두가 하느님인 '내'가 해준 일들로 가득한 다윗의 삶입니다. 

바로 다윗의 전 삶이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마지막으로 다윗은 물론 성탄을 준비 중인 우리에게 

메시아 탄생의 축복까지 예언하십니다.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 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겸손을 일깨운 후 주시는 주님의 축복입니다. 

주님은 겸손한 이들을 축복하십니다. 

아니 겸손 자체가 이미 축복입니다. 

겸손할 때 마음의 평화와 기쁨입니다. 


세상에 주어가 없는 문장이 어디 있습니까? 


삶의 문장에 하느님이 빠진 문장이라면 이건 삶의 문장 자체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하여 무의미한, 허무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내 삶의 문장에 주어가 될 때 비로소 삶의 중심이 잡히고 삶의 의미가 주어집니다. 


그러나 세상에 '하느님' 주어가 빠진 문장 같은 삶을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바로 하느님 '주어(主語)' 대신 나를 주어로 할 때 바로 이게 교만입니다. 

하느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모두 내가 한 일이 되버리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도저히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생각을 바꿔 내 삶의 문장에 하느님을 주어로 넣고 곰곰이 묵상해 보십시오. 

내 지난 삶의 의미가 환히 계시될 것입니다. 

온통 하느님께서 하신 은혜로운 일들로 가득함을 깨달을 것입니다. 

저절로 감사로 가득찬 삶이 될 것입니다. 


감사는 은총을 담는 그릇입니다. 

감사할수록 은총 가득한 하느님이 내 삶의 문장에 주어이심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디비나입니다. 


가브리엘의 인사말이 무슨 뜻인가 하고 곰곰이 생각하는 마리아는 

분명 삶의 문장의 주어인 하느님을 마음 깊이 새기며 이 인사말을 렉시오디비나 했을 것입니다.


바로 내 삶의 문장에 주어는 하느님이심을 깨닫는 것이 은총이자 겸손입니다. 

오늘 복음의 겸손한 마리아를 찾아와 다시 그의 겸손을 일깨우는 가브리엘 천사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이 말씀 또한 제가 고백성사 때 가장 많이 써드리는 보속 처방전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내 삶의 문장에 주님을 넣고 묵상해보면 얼마나 은총 가득한 삶인지 담박 들어납니다. 

바로 마리아에게 하신 축복의 말씀은 내 경우에도 그대로 해당됨을 깨달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 


바로 주님이 마리아는 물론 내 삶의 주어임이 분명 드러납니다. 

아무도 내 삶의 주어인 주님을 대치할 수 없습니다. 

주님 자리에 다른 것을 넣을 때 바로 우상이 됩니다. 


주님만이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내 삶의 문장에 나를 주어로 넣고 살기에 감사는 없고 불평 불만에 삶은 무거운 짐이 되어 버립니다. 


나단을 통해 다윗을 축복하신 주님은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마리아를 축복하십니다.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 내 삶의 문장에 주어로 확고히 자리 잡을 때 

비로소 겸손한 믿음이요 대부분 문제들은 저절로 해소됩니다. 


내 눈이 아닌 하느님의 눈으로, 내 마음이 아닌 하느님의 마음으로 매사 대할 것이니 

바로 이것이 지혜요 사랑입니다.


하느님을 고백할 때, 하느님께 기도할 때 비로소 나는 내 삶의 문장에 '내'가 주어가 됩니다. 

오늘 새벽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의 시편 기도를 바치며 새삼스럽게 깨달은 진리입니다. 


내가 하느님께 믿음을, 사랑을, 희망을, 순종을 고백할 때, 

또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비로소 나는 내 삶의 문장에 주어가 되고 하느님은 목적어가 됩니다. 


하느님이 계시기에 의미있는 내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 없이 누구에게 순종하고 기도하고 찬미하고 감사하겠습니까? 

또 하느님 아닌 누구를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찬미와 감사는 영혼의 양 날개입니다.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라 있는 인생입니다.


"홀로 지혜로우신 하느님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토록 영광이 있기를 빕니다.“(로마16,27).


바오로가 바치는 장엄한 하느님 찬미입니다. 


여기 뉴튼수도원 복도를 걸어 기도하러 가던중 게시판에 눈길이 멎었습니다. 

밖에서 온 수십여장의 성탄축하카드로 가득 채워진 게시판을 보며 순간 떠오른 생각입니다.


'아, 연결은 새명이요 소통이구나. 

탄생하실 주님이 각자 삶의 문장의 주어이기에 이런 소통의 연결이 가능하구나.'


그렇습니다. 

믿는 이들 간에 연대와 일치가 가능한 것도 

모두가 똑같은 주님을 내 삶의 문장의 주어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진정 믿는 이들 모두의 '삶의 문장'의 주어(主語)는 하느님입니다. 


삶의 문장에 하느님이 아닌 내가 주어가 될 때 교만이요 

하느님과 관계는 물론 이웃과의 관계도 불통이 되어 버립니다. 

하느님이 없으면 겸손도 없습니다. 


내 삶의 주어가 하느님이심을 깨달아 

하느님께 순종하고 찬미와 감사를 드릴 때 겸손한 삶, 축복의 삶입니다. 


이런 겸손은 그대로 하느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우리를 참으로 겸손케 하시며 믿음의 순종(로마16,26)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주님, 당신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 제 입은 당신의 진실을 대대로 전하오리다."

(시편89,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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