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즈카르야'의 사막체험 -침묵과 말-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3 조회수1,399 추천수13 반대(2)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명준님의 사진.
김명준님의 사진.

김명준님의 사진.



2014.12.23. 대림 제4주간 화요일(뉴튼수도원 43일째), 말라3,1-4.23-24 루카1,57-66


                                                                                                  

'즈카르야'의 사막체험

-침묵과 말-


여기 뉴튼수도원은 광활한 공간이 흡사 사막 같은 느낌입니다. 

사막의 특징은 침묵과 고독이요 이를 통해 하느님을 만납니다. 


여기 수도원에 머문지 43일 째 되지만 

외출은 몇 번 뿐이었고 만난 사람도 손꼽을 정도로 소수입니다. 


주변의 자연이 침묵 그 자체이기에 '자연의 침묵'이 몸과 마음에 배어드는 그런 느낌입니다. 

하여 굳이 침묵을 강조하지 않아도 수도원의 분위기는 침묵입니다. 


식사시간에  대화를 나눠도 소곤소곤 작은 목소리로 말하기에 침묵의 분위기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큰 소리 내는 것이 

웬지 주변의 침묵을 깨는 것처럼 어리석고 어색해 보여 저절로 목소리를 낮추게 됩니다.


침묵은 수도영성생활의 기초입니다. 

침묵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게 아니라 말씀을 잘 듣기 위해, 또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침묵입니다. 


빈수레가 요란한 법입니다. 

말이 많을수록 영양가 있는 쓸말은 적어지고 삶도 천박(淺薄)해집니다. 

좋은 말도, 좋은 글도 지나치면 공해가 됩니다. 

사막 수도자들의 금언집에도 침묵에 대한 예화는 무수히 나옵니다.


-압바 포멘은 말했다. "마음에 있는 말만 하도록 네 입을 가르쳐라."-


진정성 담긴 말을 하다보면 저절로 말은 줄어들고 침묵하게 마련입니다.


-한 형제가 압바 포멘에게 물었다. 

"말하는 것이 좋습니까? 침묵하는 것이 좋습니까?" 

포멘 압바의 대답이다. 

"하느님을 위해 말하는 사람은 좋다. 

그러나 하느님을 위해 침묵을 지키는 사람 역시 좋다."-


침묵과 말,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그 식별 기준은 '하느님을 위해(for God's sake)'입니다.


-압바 베사리온은 죽음의 순간 말했다. 

"수도승은 모름지기 케루빔과 세라핌 천사와 같아야 한다; 온 눈(all eye)이 되라!"-


입을 닫고 침묵하면 보게 됩니다. 

왜 하느님은 즈카르야를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되게 했는지 깨닫습니다. 

눈 환히 뜨고 하느님의 현실을 깊이 직시하라 주신 침묵의 피정기간이었습니다.


-압바 아르세니우스는 사막에 물러났을 때 들었다. 

"아르세니우스, 달아나라; 침묵하라;언제나 기도하라. 이들이 무죄(sinlessness)의 원천이다"-


-압바 포멘은 말했다. 

"내적으로 깨어 있어라(Be wachful). 그러면 외적으로 깨어 있게 될 것이다.-


진공 상태의, 잠들어 있는 침묵이 아니라 주변에 환히 '깨어 있는' 침묵입니다.


-압바 아가톤은 '침묵을 지키는 것을 배우기 위해 

3년 동안 입에 재갈을 물고 지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오늘 말 못하는 벙어리가 된 즈카르야의 잠정적 침묵은 하느님의 벌이 아니라 축복임을 깨닫습니다. 

말 그대로 전화위복(轉禍爲福)입니다. 


다음 대목에서 즈카르야의 침묵의 결과가 잘 드러납니다.

-즈카르야는 글 쓰는 판을 달라고 하여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고 썼다. 

그러자 모두 놀라워하였다. 

그때에 즈카르야는 즉시 입이 열리고 혀가 풀려 하느님을 찬미하였다-


침묵의 피정기간 즈카르야는 

하느님을 만났고 요한의 이름을 확신했으며 이어 입이 풀리자 하느님께 찬미를 드립니다. 


새벽 성무일도 전 첫 일성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당신 찬미를 전하오리다."라는 깊은 의미 즉, 

하느님을 찬미하라 주어진 입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을 만났을 때 저절로 솟아나는 하느님 찬미요, 

마음에서 울어난 하느님 찬미가 하느님과의 만남에로 이끕니다. 


-소문을 들은 이들은 모두 그것을 마음에 새기며, 

"이 아기가 대체 무엇이 될 것인가?" 하고 말하였다. 

정녕 주님의 손길이 그를 보살피고 계셨던 것이다.-


즈카르야의 '침묵과 말'의 전 과정을 전해 들은 이들의 간접적 하느님 체험을 반영합니다. 

하여 요한의 작명이 완료되고 즈카르야의 하느님 찬미를 통해 마침내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라는 말라키 예언이 성취됨을 봅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의 입을 열어주시어 

온 맘과 몸으로 당신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십니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