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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3 조회수945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나해 대림 제4주간 수요일


<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셨다.
 >


  
복음: 루카 1,67-79






그리스도


엘 그레코 작, (1606), 톨레도 주교좌 성당


     <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

 

저는 월요일마다 한 수녀원 본원에서 수련자들 교리 강의를 해 주고 있습니다. 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사실 일주일 중 이 시간만 기다려집니다. 왜냐하면 다른 데서 강의할 때 받는 상처들이 힐링 되는 느낌을 받기 때문입니다. 다른 곳에서 강의할 때 가끔 느끼는 것은 우리가 피리를 불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았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울지 않았다는 예수님의 말씀과 크게 다를 바가 없는 경험을 자주 하게 됩니다.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상처인지 강의를 해 본 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강의나 글이나 자신들이 기쁘고 자신들 마음에 맞지 않으면 얼굴을 찌푸리고 팔짱을 끼고 그렇게 말하거나 써서는 안 된다고 반발을 하기도 합니다. 물론 강의뿐만 아니라 우리는 일상을 살아가면서 다가가려해도 상대 앞에 보이지 않는 벽을 느낄 때가 적지 않습니다. 사람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마음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 본성이 있지만 그 마음을 받아들이는 이들은 아주 적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운 가족 안에서도 자주 나의 뜻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주가 수련자들 교리 방학하는 날이라 강의를 마치자 그들이 일어나서 감사의 말을 전하고 정성껏 만든 초와 성탄카드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첫 서원을 하게 되어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되고 어떤 이들은 몇 달 뒤에 다시 보게 되는데 이들의 눈엔 눈물이 글썽이고 어떤 이들은 안경을 들고 손으로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오히려 제가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남들이 보면 월요일 오후마다 바쁘게 서울로 올라가서 길 막히는 때 내려와야 하는 것을 고생스럽게 여기기도 하지만 이들이 있는 곳이면 부산이라도 내려가고 싶은 마음입니다. 마치 노아의 배가 내려앉을 곳이 없어서 방주 안에서 발을 동동 구르며 비둘기를 날려 보내는 심정과 같을 것입니다. 어떤 땅이라도 이 비둘기가 발붙일 공간을 내어준다면 노아는 너무나 기뻐 그 땅으로 배를 댈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진정한 행복은 이렇게 누군가의 받아주는 마음속으로 내려앉는 기분일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받아주는 누군가에게 가는 것이 바로 내 자신을 내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다윗이 자신은 향백나무로 만든 궁에 살고 있는데 하느님의 궤는 아직 천막에 머무르고 있기에 주님의 집인 성전을 지어드려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됩니다. 물론 하느님은 그 일은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이 하게 될 것이라고 거부하십니다. 그러나 예언자 나탄을 시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살 집을 네가 짓겠다는 말이냐?”

이는 나무라는 말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뒤는 온통 다윗에 대한 축복의 말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의 후손으로서 하느님의 아들이라 불릴 이가 탄생할 것을 예고하십니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나는 그의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

결국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아가 태어나게 된 결정적 이유는 다윗이 주님께 성전을 지어드리겠다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하느님 또한 우리 마음 안으로 들어오시려는 본성이 매우 크십니다. 그러나 그 마음을 받아주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구약에서는 오직 다윗만이 천막에 외로이 계시는 하느님을 좋은 성전을 지어 모시기를 원했고, 신약에서는 오직 성모님만이 당신 마음에 하느님을 받아들여 귀한 성전이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성전을 지어드린다는 말의 뜻은 무엇일까요? 바로 그 분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분을 주인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입니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지금 말씀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내 안의 성전을 짓는 방법은 그분의 뜻을 목숨을 걸고 순종할 결심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으로 오시는 분의 합당한 성전은 진정 그분을 주님으로 모시고 종처럼 순종할 수 있는 사람의 마음인 것입니다.

   

‘TV 동화 행복한 세상에서 바뀐 봉투란 사연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패스트푸드 점에서 바쁘게 식사를 하고 집에 돌아왔는데 중요한 서류봉투를 잃어버린 것이었습니다. 분명 그 패스트푸드 점일 것이라 추측하고 찾아가 보았지만 이미 문이 닫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사정과 전화번호를 적어 문틈으로 밀어 넣고 왔는데, 다음 날 아침 서류를 찾았다는 여점원의 전화가 왔습니다. 빨리 달려가 보았지만 봉투는 자신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여점원은 맞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내용물을 보니 자신의 것이 맞았습니다. 여점원이 그 봉투를 발견한 것은 쓰레기통이었는데 음식물 찌꺼기들이 묻어있어서 깨끗한 새 봉투로 바꾸어놓았던 것입니다.

봉투를 바꾸는 것이 그리 큰일은 아니지만 서류의 주인이 느끼는 것은 사뭇 다를 것입니다. 아마도 자신이 쓰레기통에 들어가 오물이 묻었다가 어떤 누군가에 의해 구해지고 깨끗한 옷을 입게 된 느낌이었을 것입니다. 그만큼 감사했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점원에게 무엇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깁니다. 우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하느님께 그분이 들어오실 성전을 마련해드리려는 마음은 그만큼 축복이 넝쿨째 우리에게 오시게 하는 가장 좋은 길인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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