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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4 조회수1,266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24. 대림 제4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44일째), 
사무하7,1-5.8ㄷ-12.14ㄱ.16 루카1,67-7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

어제 저녁기도 시 성전을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큰 성전을 가득 채운 
한 나무의 성탄츄리나무 그윽한 솔향기가 때문이었습니다. 

'아, 성인(聖人) 하나만 있으면 
큰 수도공동체도 성인의 그윽한 성덕의 향기로 가득 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잘 들여다 보면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성인입니다. 
수도형제들의 '성덕의 향기' '기도의 향기'로 가득한 여기 
뉴튼수도원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츄리 나무를 통한 '자연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요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성독이 
널리 보급되고 있습니다. 

별난 독서법이 아니라 
옛 수도승들은 평범한 일상의 수행으로 
성경독서인 렉시오 디비나에 항구했습니다. 

시간이나 목표에 매이지 않고, 정보를 얻을 욕심 없이, 그냥
 '읽기(reading)-묵상(meditation)-
기도(prayer)-관상(cotemplation)'의 리듬따라 이뤄지는 
오관(五官)이 총동원된 전인적, 관상적 성경독서가, 
교회의 전통적, 정통적 성경독서가 
바로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이런 렉시오디비나는 
옛 수도승들에겐 숨쉬는 공기와 같았습니다. 

항구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 
우리를 위로하고 자유롭게, 풍요롭게 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줍니다. 

그러니 영혼의 치유와 건강에 
렉시오 디비나보다 더 좋은 영약(靈藥)은 없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렉시오디비나의 수행입니다. 

저는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에 둘을 첨가합니다. 
내 '삶의 성경'과 '자연 성경'입니다. 

우선 렉시오 디비나의 원천은 신구약 성경이고 
이를 바탕으로 내 삶뿐 아니라 자연에까지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내 삶의 성경, 자연 성경이라 칭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비단 신구약 성경뿐 아니라 
내 삶의 여정을 통해서도,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글자는 몰라도 누구나 보고 깨달아 알 수 있는게 
자연성경이요 내 삶의 성경입니다. 

사막의 교부 아르세니우스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압바 아르세니우스는 자신의 생각들에 대해 
이집트의 연노한 농부에게 털어 놓고 자문을 구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하시고 좋은 교육을 받은 
압바께서 이런 농부에게 생각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합니까?" 

압바의 대답이다. 
"그렇다. 나는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농부의 알파벳을 모른다.“-

물론 아르세니우스의 겸손이 놀랍습니다만 
그의 진정성 가득 담긴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지혜로운 아르세니우스는 
이미 이 농부의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한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연노한 농부의 '삶의 성경'이 
얼마나 풍부한지 직감적으로 깨달은 
아르세니우스임이 분명합니다. 

더불어 '학문의 지식'이 '삶의 체험적 지혜' 앞에 
얼마나 초라하고 무력한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는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완성됩니다. 

때로 삶이 힘들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조용히 주님 앞에 머물러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함이 해결의 지름길입니다. 

우리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의 지도자는 성령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성령의 사람, 나탄 예언자가 친히 
다윗의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해 주며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나탄에게 말씀 하시며 
다윗 삶의 의경을 렉시오 디비나 해 주도록 하십니다. 

다윗의 생애에 하느님을 주어로 넣고 읽으니 
다윗의 삶이 온통 은총임이 드러납니다. 
모든 일은 다윗이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인 '나'가 한 일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것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복음의 즈카르야 찬미가 역시 
성령에 충만한 즈카르야가 삶의 성경을, 이스라엘 역사를 
렉시오 디비나 한 산물입니다. 

아마 사막 같은 침묵 피정 중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이스라엘 역사와 더불어 
자신의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말하였다.' 

서두 말씀에서 보다시피 
성령이 바로 렉시오 디비나의 스승임을 깨닫습니다. 

제 강론 역시 성령의 인도하에 렉시오 디비나 한 결과입니다. 
사실 저는 
신구약 성경, 내 삶의 성경, 자연 성경, 셋을 펼쳐 놓고 
렉시오 디비나 하며 강론을 준비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즈카르야의 훌륭한 렉시오 디비나의 
산물인 '즈카르야 찬가'를 우리 가톨릭 교회 공동체는 
아침기도때 마다 힘차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루하루 내 '삶의 성경'을 잘 써나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2014.12.24. 대림 제4주간 수요일(뉴튼수도원 44일째), 사무하7,1-5.8ㄷ-12.14ㄱ.16 루카1,67-79


                                                                                       

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


어제 저녁기도 시 성전을 들어서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큰 성전을 가득 채운 한 나무의 성탄츄리나무 그윽한 솔향기가 때문이었습니다. 


'아, 성인(聖人) 하나만 있으면 

큰 수도공동체도 성인의 그윽한 성덕의 향기로 가득 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 잘 들여다 보면 수도형제들 하나하나가 성인입니다. 

수도형제들의 '성덕의 향기' '기도의 향기'로 가득한 여기 뉴튼수도원입니다. 


바로 이것이 성탄츄리 나무를 통한 '자연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요즘 렉시오 디비나(Lectio Divina) 성독이 널리 보급되고 있습니다. 

별난 독서법이 아니라 

옛 수도승들은 평범한 일상의 수행으로 성경독서인 렉시오 디비나에 항구했습니다. 


시간이나 목표에 매이지 않고, 정보를 얻을 욕심 없이, 

그냥 '읽기(reading)-묵상(meditation)-기도(prayer)-관상(cotemplation)'의 리듬따라 이뤄지는 

오관(五官)이 총동원된 전인적, 관상적 성경독서가, 

교회의 전통적, 정통적 성경독서가 바로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이런 렉시오디비나는 옛 수도승들에겐 숨쉬는 공기와 같았습니다. 


항구한 렉시오 디비나 수행을 통한 깨달음이 우리를 위로하고 자유롭게, 풍요롭게 합니다. 

평화와 기쁨을 줍니다. 


그러니 영혼의 치유와 건강에 렉시오 디비나보다 더 좋은 영약(靈藥)은 없습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으로 산다.“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한 것이 렉시오디비나 수행입니다. 


저는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에 둘을 첨가합니다. 

내 '삶의 성경'과 '자연 성경'입니다. 


우선 렉시오 디비나의 원천은 신구약 성경이고 

이를 바탕으로 내 삶뿐 아니라 자연에까지 확장시키는 것입니다. 

저는 감히 내 삶의 성경, 자연 성경이라 칭합니다. 


살아계신 하느님은 비단 신구약 성경뿐 아니라 

내 삶의 여정을 통해서도, 자연을 통해서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글자는 몰라도 누구나 보고 깨달아 알 수 있는게 자연성경이요 내 삶의 성경입니다. 


사막의 교부 아르세니우스에 관한 재미난 일화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압바 아르세니우스는 자신의 생각들에 대해 이집트의 연노한 농부에게 털어 놓고 자문을 구했다. 

이를 의아하게 여긴 제자가 그에게 물었다. 


"아니 어떻게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하시고 좋은 교육을 받은 압바께서 

이런 농부에게 생각을 털어놓고 자문을 구합니까?" 

압바의 대답이다. 

"그렇다. 나는 라틴어, 그리스어에 능통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이 농부의 알파벳을 모른다.“-


물론 아르세니우스의 겸손이 놀랍습니다만 그의 진정성 가득 담긴 말이 의미심장합니다. 

바로 지혜로운 아르세니우스는 이미 이 농부의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한 것입니다. 


삶의 현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연노한 농부의 '삶의 성경'이 얼마나 풍부한지 

직감적으로 깨달은 아르세니우스임이 분명합니다. 

더불어 '학문의 지식'이 '삶의 체험적 지혜' 앞에 얼마나 초라하고 무력한지 깨달았을 것입니다.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는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완성됩니다. 

때로 삶이 힘들고 길이 보이지 않을 때 

조용히 주님 앞에 머물러 지금까지 살아 온 내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함이 해결의 지름길입니다. 


우리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의 지도자는 성령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보면 그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성령의 사람, 나탄 예언자가 친히 다윗의 삶을 렉시오 디비나 해 주며 

하느님의 넘치는 은총을 깨닫게 해 주십니다.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말하여라. '주님이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나탄에게 말씀 하시며 다윗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해 주도록 하십니다. 


다윗의 생애에 하느님을 주어로 넣고 읽으니 다윗의 삶이 온통 은총임이 드러납니다. 

모든 일은 다윗이 한 일이 아니라 하느님인 '나'가 한 일로 드러납니다. 


바로 이것이 삶의 성경의 렉시오 디비나입니다.


복음의 즈카르야 찬미가 역시 성령에 충만한 즈카르야가 

삶의 성경을, 이스라엘 역사를 렉시오 디비나 한 산물입니다. 


아마 사막 같은 침묵 피정 중 

마음의 눈이 활짝 열려 이스라엘 역사와 더불어 

자신의 삶의 성경을 렉시오 디비나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때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이렇게 말하였다.' 

서두 말씀에서 보다시피 성령이 바로 렉시오 디비나의 스승임을 깨닫습니다. 


제 강론 역시 성령의 인도하에 렉시오 디비나 한 결과입니다. 

사실 저는 신구약 성경, 내 삶의 성경, 자연 성경, 셋을 펼쳐 놓고 

렉시오 디비나 하며 강론을 준비합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는 즈카르야의 훌륭한 렉시오 디비나의 산물인 

'즈카르야 찬가'를 우리 가톨릭 교회 공동체는 아침기도때 마다 힘차게 노래합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으로 하루하루 내 '삶의 성경'을 잘 써나가도록 도와 주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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