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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 밤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탄생하셨습니다! -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5 조회수802 추천수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25.목요일(뉴튼수도원 45일째-1)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이사9,1-6 티토2,1-14 루카2,1-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오늘 밤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밤 마침내 고대하던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께서 뉴튼수도원에 탄생하셨습니다. 

제 영혼의 고향, 
요셉수도원에서 26년 사는 동안 수도원을 떠나 
다른 곳에서 성탄을 지내기는 꼭 두 번입니다. 

첫번은 2002년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생존 수도원(St. John' Abbey)이고, 
이번 2014년은 여기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뉴튼수도원(St. Paul's Abbey)입니다. 

하느님은 뉴튼수도원에서 탄생하실 주님을 맞이하라고 
저를 안식년에 잠시 뉴튼수도원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동안 대림시기, 뉴튼수도원 형제들은 
성탄츄리나무를 판매하며 주님의 길을 충실히 닦아 왔고 
마침내 오늘 밤, 
형제들이 닦은 길을 통해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오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이 마침내 오늘 실현되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 기뻐합니다(이사9,1-2ㄱ)'. 

이사야를 통한
하느님의 빛나는 비전,  '그리스도의 평화의 빛'이 
칠흑같은 어둠을 대낮같이 환히 밝힙니다.

'정녕 주님께서는 우리가 짊어질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오!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이사9,3.5).

이사야 예언자의 숨가쁜 감격에 넘친 고백입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주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맛나는 인생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탄생하신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맛, 
무슨 기쁨으로 이 사막같은 세상을 살아갑니까? 

이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절망의 시대에 희망으로, 
죽음의 시대에 생명으로, 
주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의 구유' 안에 탄생하셨습니다. 

이 벅찬 기쁨을 잠시 가라 앉히고 
아기 예수님은 어디서 태어나셨고, 
누가 이 복된 탄생을 체험했으며, 
그 탄생의 축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디서 탄생하셨습니까?

베들레헴에 있는 마뭇간 구유 안에 탄생하셨습니다. 
아주 상징적입니다. 
하느님의 역설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은혜롭습니다. 

'그들(마리아, 요셉부부)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2,7). 

하느님의 가난과 겸손의 극치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낮을 수는, 더 작을 수는, 더 비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런 가장 낮은 어둠의 자리 
누추한 곳에 탄생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예고하는 탄생입니다. 

평생을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고통 받는 이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다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이, 
비천한 구유 안에서의 탄생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위인이 이런 비천한 자리에 탄생했습니까? 

가난한 이들, 상처받은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는 주님의 
이런 비천한 데서의 탄생 자체가 복음이요 위로요 치유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은 
결코 화려하고 안락한 고대광실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어둡고 추운, 소외되고 가난한 자리에서 탄생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탄생을 체험한 이들은 누구입니까?

밤의 침묵과 고독 중에 깨어 있던 
들판의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상징입니다. 
다 잠들어 있던 밤, 깨어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만이 
주님 탄생을 체험했습니다. 

그 기라성 같은 신학자나 종교지도자들, 
부유한 이들이 아닌, 
깨어있던 가난한 목자들만이 
주님 탄생을 목격했으니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이들에게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 둘레를 환히 비춥니다. 

오늘 밤, 
목자들과 함께 깨어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천사의 음성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뉴튼수도원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2,10-11).

전능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여기 가난한 수도자들이 살고 있는 뉴튼수도원이 
바로 다윗 고을 베들레헴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탄생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는 
기쁨과 평화의 선물입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13-14)-

얼마나 신명나는, 은혜로운 장면입니까? 

예수님 탄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차고 넘칩니다. 

하느님께는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영광과 평화, 예수님의 삶의 요약이자 
우리 믿는 이들의 희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평화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평화보다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영광과 평화', 이것이 우리 구원의 양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오로의 말씀대로 오늘 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2,11). 

바로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주님 탄생을 고대하며 깨어 기다리던 
우리들의 '가난한 마음의 구유' 안에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예수님 탄생하셨습니다. 

탄생하신 주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모두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
(티토2,12). 

우리 모두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14).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히 내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2014.12.25.목요일(뉴튼수도원 45일째-1) 예수 성탄 대축일 밤 미사

이사9,1-6 티토2,1-14 루카2,1-14


                                                                                 

늘 밤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탄생하셨습니다!


오늘 밤 마침내 고대하던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께서 뉴튼수도원에 탄생하셨습니다. 

제 영혼의 고향, 요셉수도원에서 26년 사는 동안 

수도원을 떠나 다른 곳에서 성탄을 지내기는 꼭 두 번입니다. 


첫번은 2002년 미국 미네소타주에 있는 생존 수도원(St. John' Abbey)이고, 

이번 2014년은 여기 미국 뉴저지주에 있는 뉴튼수도원(St. Paul's Abbey)입니다. 


하느님은 뉴튼수도원에서 탄생하실 주님을 맞이하라고 

저를 안식년에 잠시 뉴튼수도원에 파견하셨습니다. 

그동안 대림시기, 뉴튼수도원 형제들은 성탄츄리나무를 판매하며 주님의 길을 충실히 닦아 왔고 

마침내 오늘 밤, 형제들이 닦은 길을 통해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오셨습니다.


이사야 예언이 마침내 오늘 실현되었습니다.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봅니다.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즐거움을 많게 하시고, 기쁨을 크게 하십니다. 

사람들은 주님 앞에서 기뻐합니다(이사9,1-2ㄱ)'. 


이사야를 통한 

하느님의 빛나는 비전, '그리스도의 평화의 빛'이 칠흑같은 어둠을 대낮같이 환히 밝힙니다.


'정녕 주님께서는 우리가 짊어질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를, 

미디안을 치신 그날처럼 부수십니다. 

오! 우리에게 한 아이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영원한 아버지,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

(이사9,3.5).


이사야 예언자의 숨가쁜 감격에 넘친 고백입니다. 


신실하신 하느님이십니다. 

우리 모두 그리스도를 탄생시키신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주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셨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 맛나는 인생이, 세상이 되었습니다. 

탄생하신 주님이 계시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맛, 무슨 기쁨으로 이 사막같은 세상을 살아갑니까? 


이 어둠의 시대에 빛으로, 절망의 시대에 희망으로, 죽음의 시대에 생명으로, 

주 그리스도께서 오늘 우리 모두의 '마음의 구유' 안에 탄생하셨습니다. 


이 벅찬 기쁨을 잠시 가라 앉히고 

아기 예수님은 어디서 태어나셨고, 

누가 이 복된 탄생을 체험했으며, 

그 탄생의 축복은 무엇인지에 대한 묵상을 나눕니다.



첫째, 예수님은 어디서 탄생하셨습니까?


베들레헴에 있는 마뭇간 구유 안에 탄생하셨습니다. 

아주 상징적입니다. 

하느님의 역설입니다. 


바로 다음 대목이 은혜롭습니다. 


'그들(마리아, 요셉부부)은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이다.'(루카2,7). 


하느님의 가난과 겸손의 극치입니다. 

세상에 이보다 더 낮을 수는, 더 작을 수는, 더 비울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이런 가장 낮은 어둠의 자리 누추한 곳에 탄생하리라고 누가 상상이나 하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의 눈에 철저히 숨겨져 있는 예수님의 탄생입니다. 

예수님의 운명을 예고하는 탄생입니다. 


평생을 낮은 자리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고통 받는 이들과 끝까지 함께 하시다 

마침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의 삶이, 

비천한 구유 안에서의 탄생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위인이 이런 비천한 자리에 탄생했습니까? 


가난한 이들, 상처받은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는 

주님의 이런 비천한 데서의 탄생 자체가 복음이요 위로요 치유입니다.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님은 결코 화려하고 안락한 고대광실에서 탄생하지 않았습니다. 

오늘도 어둡고 추운, 소외되고 가난한 자리에서 탄생하십니다.



둘째, 예수님의 탄생을 체험한 이들은 누구입니까?


밤의 침묵과 고독 중에 깨어 있던 들판의 양 떼를 지키는 목자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상징입니다. 

다 잠들어 있던 밤, 깨어 양떼를 지키던 가난한 목자들만이 주님 탄생을 체험했습니다. 


그 기라성 같은 신학자나 종교지도자들, 부유한 이들이 아닌, 

깨어있던 가난한 목자들만이 주님 탄생을 목격했으니 바로 이것이 복음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이들에게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 둘레를 환히 비춥니다. 


오늘 밤, 목자들과 함께 깨어 주님 탄생을 기다리는 우리를 향한 주님의 천사의 음성입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보라, 나는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오늘 너희를 위하여 뉴튼수도원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루카2,10-11).


전능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은 시공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여기 가난한 수도자들이 살고 있는 뉴튼수도원이 바로 다윗 고을 베들레헴입니다.



셋째, 예수님의 탄생의 축복은 무엇입니까?


무엇보다 하느님의 영광을 찬미할 수 있는 기쁨과 평화의 선물입니다. 

다음 대목이 이를 입증합니다. 


-그때에 갑자기 그 천사 곁에 수많은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이렇게 찬미하였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13-14)-


얼마나 신명나는, 은혜로운 장면입니까? 

예수님 탄생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축복이 차고 넘칩니다. 

하느님께는 영광, 사람들에게는 평화, 세상에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영광과 평화, 예수님의 삶의 요약이자 우리 믿는 이들의 희망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하느님께는 영광이 되고, 이웃에게는 '평화의 사람'으로 사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평화보다 하느님께 영광이 되는 것은 없습니다. 

'영광과 평화', 이것이 우리 구원의 양면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바오로의 말씀대로 

오늘 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나타났습니다(티토2,11). 


바로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탄생하셨습니다. 


주님 탄생을 고대하며 깨어 기다리던 우리들의 '가난한 마음의 구유' 안에 

우리 구원자 주 그리스도 예수님 탄생하셨습니다. 


탄생하신 주 그리스도의 은총이, 우리 모두를 교육하여, 불경함과 속된 욕망을 버리고, 

현세에서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해 줍니다(티토2,12). 


우리 모두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소리 높여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2,14).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주님 성탄의 축복이 여러분 모두에게 가득히 내리시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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