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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6 조회수1,116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26일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
 
When they hand you over,
do not worry about how you are to speak
or what you are to say.
You will be given at that moment what you are to say.
For it will not be you who speak
but the Spirit of your Father speaking through you.
(Mt.10,19-20)
 
 
제1독서 사도 6,8-10; 7,54-59
복음 마태 10,17-22
 

컴퓨터를 켜면 ‘어떤 메일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가지고 제일 먼저 메일 박스를 확인합니다. E-Mail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대에는 우편함을 늘 확인했지만, 이제는 우편함으로 들어오는 우편물보다는 E-Mail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지요. 아무튼 그리운 사람에게 메일이 오지는 않았는지, 새로운 소식이 온 것은 아닌지 라는 부푼 기대와 설렘으로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서 메일함을 확인합니다. 열 몇 개의 메일이 오기는 했지만 저를 반기는 메일은 솔직히 거의 없습니다. 제목만 봐도 그냥 지워야 할 메일이 대다수이지요.

‘편안한 대화와 이성 친구를 만날 수 있는 곳’, ‘집에서 손쉽게 할 수 있는 카지노 대박’, ‘여성 앞에서 자신감을 찾으세요’, ‘당신을 위해 이 글을 씁니다’ 등등.... 달콤한 유혹으로 자신을 클릭해달라고 하지만, 저를 위한 것이 아닌 단순한 스팸메일이기에 클릭보다는 곧바로 휴지통으로 보내버립니다. 기대와 설렘이 실망으로 변해지는 순간이지요. 이렇게 제게 필요한 메일은 전체 메일 중에 거의 5% 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컴퓨터를 켤 때마다 메일 박스를 반드시 확인합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5%는 꼭 읽어야 하는 메일이기 때문이지요. 그리운 친구나 반가운 지인의 메일이 들어올 수도 있고, 저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는 메일이 전체 메일의 5%를 담당하기 때문입니다.

95%가 쓸데없는 메일이지만 그 5% 때문에 반드시 확인하는 저를 쓸데없는 행동을 한다고 그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그 5%의 저를 위한 메일이 95%의 쓸데없는 메일을 상세하고도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문득 신앙도 이렇지 않을까 싶습니다. 신앙생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지요. 보이지 않는 하느님, 또 내게 어떤 말도 해주지 않으시는 하느님. 일상 삶을 살면서 영향을 크게 주지 않는 신앙인데 굳이 간직해야 하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니까 그 모든 것을 다 한 뒤에야 신앙생활을 하겠다고 하십니다. 하지만 5%의 저를 위한 메일 때문에 메일함을 여는 것처럼, 우리 삶 안에서 크게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 같은 그 신앙 덕분에 희망을 간직하며 기쁘게 살아가신 분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오늘 우리는 교회의 첫 번째 순교자로 존경을 받는 성 스테파노 축일을 보내고 있습니다. 성인께서는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주님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님을 반대하는 어떤 말과 행동에 대해 굴복하지 않으셨지요. 그리고 결국 돌에 맞아 순교를 하십니다. 스테파노와 같은 순교자가 날 것을 예상하셨는지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끝까지 견디는 이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우리의 신앙을 잃어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내 삶 안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고 신앙을 접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끝까지 간직하고 그분께 굳은 희망을 간직할 때 구원이라는 큰 선물을 받습니다.
잡초는 그 가치가 아직 알려지지 않은 풀이다(에머슨).


 

지휘관이 될 수 없는 이유

칭기즈 칸은 아무리 싸워도 지치지 않는 용맹한 자기 부하 예순베이에 대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순베이는 아무리 싸워도 지칠 줄 모른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기 같은 줄 안다. 자기만큼 못하면 화를 낸다. 그런 사람은 지휘관이 될 수 없다. 군대를 통솔하려면 병사들과 똑같이 갈증을 느끼며 피곤해야 한다.”

예수님께서 나약한 인간의 몸을 취해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알게 됩니다. 우리와 똑같은 모습으로 오신 주님, 우리를 이해하고 더 사랑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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