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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대가(大家) -성 요한-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7 조회수1,190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27. 토요일(뉴튼수도원 47일째)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사랑의 대가(大家)
 -성 요한-

대가 중의 대가가 사랑의 대가입니다. 
비상하거나 별난 성인이 아니라 사랑의 성인입니다. 

비상한 관상이나 영적 성장이 아니라 
사랑의 관상, 사랑의 성장입니다. 

얼마 전 
형수님의 의미심장한 짧은 카톡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삶은 신비, 사랑밖엔 길이 없네. 
이 두 문구가 요즈음 제 입속에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신비 중의 신비가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모두입니다. 

사도중의 사도가 
예수님의 애제자라 일컫는 사랑의 사도 성 요한입니다. 
성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사랑의 대가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몇 해전 나왔던 제 책 제목도 생각이 납니다. 

몇 가지 사랑에 관한 예화를 나눕니다. 

얼마 전 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 
성인같던 수도형제의 얼굴이 화로 인해 이지러져있었고 
순간 형제들의 분위기가 얼어붙은 듯 했습니다. 

'아 같은 얼굴이 어쩜 이리도 닯을 수가 있을까? 
웃을 때는 천사같고 성인같던 얼굴이
화가 나니 이렇게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나?'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또한 얼굴의 신비입니다. 
누구나의 얼굴이요 저 또한 이런 얼굴을 보였던 
부끄러웠던 과거도 잊지 못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화는 내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장면이었습니다. 

사막교부에 관한 두 일화입니다.

-압바 포멘은 압바 암모나스의 말을 전한다. 
'사람은 자기 거처에서 사는 방법을 
배움이 없이 허송세월 100년 동안도 머물 수 있다.-

놀랍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랑의 성장 없이 그냥 오랫동안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장 트랙 많이 도는 경주처럼 사랑의 성장이 없이, 
생각이 없이  그냥 나이만 먹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한 자리에 정주해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의 사랑일 수 있음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그 극한의 고행생활에도 불구하고 102세까지 
장수를 누렸다는, 사막의 성인 안토니오의 풍모입니다.

'그의 눈은 침침하지 않았고 눈빛은 살아있었으며 
매사 분명히 보았다. 
그는 치아 하나도 잃지 않았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단지 수척해져 있을뿐, 
그의 발이나 손은 아주 건강했다.‘

흡사 모세의 모습(신명34,7)을 연상케 합니다. 
아타나시오가 쓴 '안토니오 전기'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치열한 수행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육신이 건강할 수 있음은 
바로 사랑의 성장이 받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인용했던 유명 배우 한석규의 인터뷰 대목도 
저에겐 귀한 교훈이라 다시 인용하여 나눕니다.

"배우의 좋은 점을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린다면,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 배우입니다. 
저는 젊었을 땐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근데 나이가 조금씩 조금씩 먹을 때 
배우라는 일이 정말 좋구나 하는 그런 점들 중에 하나가 
60이 되어서 70이 돼서 제가 하고 싶은 역,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라고 그럴까요?"

제가 소원하는 바도 이런 노년입니다.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 비단 배우뿐일까요. 
수도자는 물론 믿는 모두가 이에 해당됩니다. 

내 나이 60이, 70이, 80이 됐을 때의 모습의 
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깨어 노력하며 산다면, 
나이 먹어 가는 것이 좋고, 
그 인생 역시 허무가 아닌 충만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결코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는 먹어 육신은 노쇠(老衰)해도 영혼은 영원한 청춘일 것입니다.

사랑의 노력과 성장이 이런 노년 인생을 만듭니다. 
성공인생이냐 실패인생이냐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성장' 하나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들 중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평생 순교의 삶을 살았던 성 요한 사도가, 
또 102세까지 장수를 누렸던 성 안토니오가 
성공적 인생의 본보기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성공'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봐도 
성 요한 사도의 사랑의 탁월함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사랑할 때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언합니다.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겸손한 사랑'의 요한이기에 
'나'를 숨기고 자신의 체험을 '우리'로 돌립니다. 

평생 예수님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며 
동고동락한 애제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도주한 상황에서 성모님과 함께 
끝까지 십자가의 주님곁에 머물렀던 애제자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의 함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져 다다랐다.“

요한의 주님 사랑의 탁월함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사랑의 눈'이 있을 때 보고 믿습니다. 
사랑의 눈이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랐던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수제자에게 먼저 우선순위를 양보한 
애제자 요한의 배려의 겸손이 감동입니다. 

이어 전광석화(電光石火), '사랑의 눈'으로 빈무덤을 보는 순간 
주님의 부활을 즉시 믿는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여기서도 요한의 사랑의 탁월성이 입증됩니다.

바로 우리 역시 요한처럼 
사랑으로 영적오관(靈的五官)을 활짝 열어 
이런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모시는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의 영적오관이 활짝 열려야 
주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주님을 눈으로 보며, 손으로 만져보고, 
주님의 향기를 코로 맡으며, 
주님이 좋으심을 입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절로 뒤따르는 사랑의 성장입니다. 
사랑의 성장에 
성체성사보다 더 좋은 영적 식(食)과 약(藥)은 없습니다. 

바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성 요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누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과의 사랑의 친교에 참여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사랑의 친교, 사랑의 성장, 충만한 기쁨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이 셋을 동시에 이루어 주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
(요한1,14.16). 

아멘.

 


2014.12.27. 토요일(뉴튼수도원 47일째)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1요한1,1-4 요한20,2-8


                                                                                                          

사랑의 대가(大家)

 -성 요한-


대가 중의 대가가 사랑의 대가입니다. 

비상하거나 별난 성인이 아니라 사랑의 성인입니다. 


비상한 관상이나 영적 성장이 아니라 사랑의 관상, 사랑의 성장입니다. 

얼마 전 형수님의 의미심장한 짧은 카톡 메시지가 생각납니다.


"삶은 신비, 사랑밖엔 길이 없네. 

이 두 문구가 요즈음 제 입속에 계속 맴돌고 있습니다.“


신비 중의 신비가 사랑의 신비입니다. 

사랑은 모두입니다. 

사도중의 사도가 예수님의 애제자라 일컫는 사랑의 사도 성 요한입니다. 


성 요한뿐 아니라 우리 모두 사랑의 대가로 불림 받고 있습니다.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여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하느님의 정의입니다. '

사랑밖엔 길이 없었네' 몇 해전 나왔던 제 책 제목도 생각이 납니다. 


몇 가지 사랑에 관한 예화를 나눕니다. 


얼마 전 늘 만면에 웃음이 가득해 성인같던 수도형제의 얼굴이 화로 인해 이지러져있었고 

순간 형제들의 분위기가 얼어붙은 듯 했습니다. 


'아 같은 얼굴이 어쩜 이리도 다를 수가 있을까? 

웃을 때는 천사같고 성인같던 얼굴이 화가 나니 이렇게 다른 얼굴이 될 수 있나?' 


새삼스런 깨달음이었습니다. 


이 또한 얼굴의 신비입니다. 

누구나의 얼굴이요 저 또한 이런 얼굴을 보였던 부끄러웠던 과거도 잊지 못합니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화는 내지 말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굳힌 장면이었습니다. 


사막교부에 관한 두 일화입니다.


-압바 포멘은 압바 암모나스의 말을 전한다. 

'사람은 자기 거처에서 사는 방법을 배움이 없이 허송세월 100년 동안도 머물 수 있다.'-


놀랍고 무서운 말씀입니다. 

사랑의 성장 없이 그냥 오랫동안 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운동장 트랙 많이 도는 경주처럼 사랑의 성장이 없이, 

생각이 없이  그냥 나이만 먹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오래 한 자리에 정주해도 여전히 제자리 걸음의 사랑일 수 있음을 경고한 말씀입니다.


그 극한의 고행생활에도 불구하고 102세까지 장수를 누렸다는, 사막의 성인 안토니오의 풍모입니다.

'그의 눈은 침침하지 않았고 눈빛은 살아있었으며 매사 분명히 보았다. 

그는 치아 하나도 잃지 않았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단지 수척해져 있을뿐, 그의 발이나 손은 아주 건강했다.‘


흡사 모세의 모습(신명34,7)을 연상케 합니다. 

아타나시오가 쓴 '안토니오 전기'에 나오는 한 대목입니다. 

치열한 수행생활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육신이 건강할 수 있음은 

바로 사랑의 성장이 받쳐주었기 때문입니다.


얼마전 인용했던 유명 배우 한석규의 인터뷰 대목도 저에겐 귀한 교훈이라 다시 인용하여 나눕니다.


"배우의 좋은 점을 조금 거창하게 말씀드린다면,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 배우입니다. 

저는 젊었을 땐 그런 생각 안 해봤어요. 

근데 나이가 조금씩 조금씩 먹을 때 배우라는 일이 정말 좋구나 하는 그런 점들 중에 하나가 

60이 되어서 70이 돼서 제가 하고 싶은 역, 그리고 그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이라고 그럴까요?"


제가 소원하는 바도 이런 노년입니다. 

나이 먹는 것을 기다리는 직업이 비단 배우뿐일까요. 

수도자는 물론 믿는 모두가 이에 해당됩니다. 


내 나이 60이, 70이, 80이 됐을 때의 모습의 때를 기다리는 즐거움으로 깨어 노력하며 산다면, 

나이 먹어 가는 것이 좋고, 그 인생 역시 허무가 아닌 충만한 기쁨이 될 것입니다. 

결코 치매나 우울증에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나이는 먹어 육신은 노쇠(老衰)해도 영혼은 영원한 청춘일 것입니다.


사랑의 노력과 성장이 이런 노년 인생을 만듭니다. 

성공인생이냐 실패인생이냐를 좌우하는 것은 바로 '사랑의 성장' 하나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들 중 유일하게 천수를 누리며 평생 순교의 삶을 살았던 성 요한 사도가, 

또 102세까지 장수를 누렸던 성 안토니오가 성공적 인생의 본보기입니다. 

말그대로 '사랑의 성공'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을 봐도 성 요한 사도의 사랑의 탁월함이 뚜렷이 드러납니다. 

사랑할 때 온몸으로 체험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처음부터 있어온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 눈으로 본 것, 

우리가 살펴보고 우리 손으로 만져 본 것, 이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증언합니다. 

바로 이 영원한 생명을 선포합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겸손한 사랑'의 요한이기에 '나'를 숨기고 자신의 체험을 '우리'로 돌립니다. 

평생 예수님을 지근 거리에서 모시며 동고동락한 애제자 요한의 증언입니다. 

다른 제자들이 다 도주한 상황에서 

성모님과 함께 끝까지 십자가의 주님곁에 머물렀던 애제자 요한입니다. 


오늘 복음을 보십시오. 

수제자 베드로와 애제자 요한의 함께 하는 모습이 참 보기 좋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 달렸는데, 다른 제자가 빨리 달려 무덤에 먼져 다다랐다.“


요한의 주님 사랑의 탁월함이 한눈에 들어오는 장면입니다. 

'사랑의 눈'이 있을 때 보고 믿습니다. 

사랑의 눈이 있을 때 보이지 않는 것도 보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랐던 다른 제자도 들어갔다. 그리고 보고 믿었다.‘


수제자에게 먼저 우선순위를 양보한 애제자 요한의 배려의 겸손이 감동입니다. 

이어 전광석화(電光石火), 

'사랑의 눈'으로 빈무덤을 보는 순간 주님의 부활을 즉시 믿는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여기서도 요한의 사랑의 탁월성이 입증됩니다.


바로 우리 역시 요한처럼 

사랑으로 영적오관(靈的五官)을 활짝 열어 이런 영원한 생명의 주님을 모시는 미사시간입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말씀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성체를 모심으로 우리의 영적오관이 활짝 열려야 

주님의 말씀을 귀로 듣고, 주님을 눈으로 보며, 손으로 만져보고, 

주님의 향기를 코로 맡으며, 주님이 좋으심을 입으로 맛볼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저절로 뒤따르는 사랑의 성장입니다. 

사랑의 성장에 성체성사보다 더 좋은 영적 식(食)과 약(藥)은 없습니다. 


바로 미사에 참석한 우리 모두를 향한 성 요한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보고 들은 것을 여러분에게 선포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친교를 나누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의 친교는 아버지와 또 그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쁨이 충만해지도록 이 글을 씁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아드님과의 사랑의 친교에 참여하는 미사시간입니다. 

사랑의 친교, 사랑의 성장, 충만한 기쁨이 하나로 이어집니다.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에게 이 셋을 동시에 이루어 주십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네."(요한1,14.16).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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