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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7 조회수1,120 추천수17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4년 12월 27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
 
They both ran,
but the other disciple ran faster than Peter
and arrived at the tomb first;
(Jn.20,4)
 
 
제1독서 1요한 1,1-4
복음 요한 20,2-8
 

어느 잡지에서 본 내용의 글입니다.

하루는 80대의 노신사가 엄지손가락의 봉합침을 빼기 위해 병원을 방문했다. 그는 아홉 시에 약속이 있다며 빨리 해 달라고 재촉했다. 의사는 상처를 치료하며 물었다.

“왜 이렇게 서두르시나요?”

“아내와 아침 식사를 해야 합니다.”

노신사의 부인은 치매에 걸려 요양원에 있다고 했다. 의사가 물었다.

“어르신이 약속 시간에 늦으면 부인께서 역정을 내시나 봐요?”

노신사의 대답은 뜻밖이었다.

“아니오. 아내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지 5년이나 됐어요.”

“부인이 어르신을 알아보지 못하는데도 매일 아침마다 요양원에 가신단 말입니까?”

노신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내는 나를 못 알아보지만, 나는 아직 그녀를 알아볼 수 있다오.”

사실 우리는 내가 받는 사랑을 먼저 생각할 때가 많지요. 하지만 진정한 사랑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요? 상대방이 내게 주는 사랑을 먼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것이며 자신이 베풀 수 있는 사랑에 의미를 두는 것이 진정한 사랑인 것입니다. 주고받는 것은 세상의 시점에서 이야기하는 허울뿐인 사랑일 뿐입니다.

사랑이란 단어를 너무나도 쉽게 들을 수 있는 세상입니다. 이렇게 사랑으로 가득 차 있는 세상처럼 보이지만 더 많은 죄악이 계속되는 부족한 사랑, 거짓된 사랑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은 사랑의 사도라고도 불리는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을 지내고 있습니다. 그는 사랑을, 특히 주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마리아 막달레나의 이야기를 듣고서 누구보다도 빨리 무덤으로 달려갈 수 있었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에도 항상 주님의 곁에 머물면서 사랑을 키워왔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그 순간 역시 함께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의 사랑을 보고 배웁니다. 사랑이란 언제나 함께 하는 것이며, 사랑하는 분에 대한 일이라면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가야 하는 것이 사랑인 것입니다. 나의 손익계산을 먼저 하는 사랑이 아닌,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랑. 내가 받을 것을 따지는 사랑이 아닌, 내가 베풀 수 있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그 사랑의 모범을 주님께서 먼저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나약하고 부족한 인간의 육체를 취해서 이 땅에서 오셨다는 것, 그리고 인간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시지 않으셨다는 것. 그 사랑을 따라야 합니다.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건 박수 받은 사람이 아니라, 박수 치는 사람이다(이철환).


 

아이가 단 것을 좋아하는 이유

어렸을 때에는 편식을 참 많이 했었습니다. 파, 마늘, 생강, 고추, 생선, 오징어 등등……. 참! 젓갈도 상당히 싫어했던 것 같습니다. 달고 맛있는 음식도 참으로 많은데 왜 부모님께서는 맛없고 쓰고 매운 것만을 주시는지 그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을 먹어야 영양이 풍부해져서 건강해진다고 이야기하시지만, 솔직히 사탕과 초콜릿만 먹고 지냈으면 하는 마음이었지요.

지금 현재 부모님의 교육 덕택인지 단 음식은 거의 먹지 않습니다. 그리고 제가 당시에 먹기 힘들어했던 음식들이 지금은 좋아하는 음식으로 변했지요. 그런데 왜 그 당시에는 지금 좋아하는 음식들을 먹기가 그렇게 힘들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며칠 전에 본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습니다. 글쎄 아이들의 미각 신경은 성인보다 훨씬 예민하다는 것입니다. 성인은 혀로 맛을 느끼는데 비해 아이는 혀의 입천장, 목구멍 등 입 전체로 맛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하더군요. 똑같이 쓴 음식을 먹어도 아이들이 참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몰랐다면 어렸을 때 편식을 하려 했던 이유를 도저히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통해 어렸을 때에는 어쩔 수 없었음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지금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다른 차원에서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것은 아닐까요? 조금만 마음을 열고 바라볼 수 있는 넓은 마음의 소유자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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