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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3의 길" -주님의 길-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9 조회수1,192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29. 월요일(뉴튼수도원 49일째)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1요한2,3-11 루카2,22-35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제 3의 길"
-주님의 길-

오늘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제 3의 길, 
주님의 길에 대한 묵상입니다. 

이런저런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
어제 수도원 묘지에 갈 때 봄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상 기온 탓인지 봄 날씨 같았습니다. 
'아, 겨울 속에 봄이, 절망 속에 희망이, 
어둠 속에 빛이, 죽음 속에 빛이구나! 
현세의 삶 안에 이미 내세의 하늘나라이구나!' 라는 
깨달음 이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사는 것이 바로 제 3의 길입니다.

2.
요즘 겸손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몇 달전 전임 시몬 아빠스님을 방문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생각납니다. 

작은 음성으로 '고백성사' 운운하시기에 웬 말씀인가 했는데, 
저에게 고백성사를 보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여 고백성사를 드렸는데
'겸손이 참 아름답다'는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여기 뉴튼수도원에서도 
전임 미국 출신의 조엘 아빠스님과 루가 수사님도 
묵묵히 낮은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도 겸손을 배웁니다. 

미국 수도자들이 주축을 이뤘던 번성기때의 
뉴튼수도원을 생각하면 비애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전혀 그런 내색없이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현재'를 사는 것이 바로 겸손임을 배웁니다. 

바로 겸손이 제3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3.
여기 미국의 뉴튼수도원이 부러운 것은 
광활한 사막 같은 외적공간입니다. 
외적공간이 넉넉하니 저절로 침묵하게 되고 
마음도 넉넉하고 여유로워지는 느낌입니다. 

한국의 작은 외적공간에서 
어떻게 내적공간을 넓히며 살아야 할지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제3의 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바로 이것이 제3의 길입니다. 

끊임없는 수행이 목표하는 바도
 사랑의 수행을 통한 마음의 비움이자 순수입니다. 
이래야  제 3의 길, 넓은 내적공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버티지 못하면 자살이고, 버티면 암이다'라는 
인터넷에서 읽은 말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각박한 현실을 풍자한 말입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살 길이 바로 오늘 소개할 
제3의 길입니다.

5.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로 교수들은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사슴을 말이라 했다'는, 
거짓이 진실인양 횡행했던 한 해를 풍자한 말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거짓말로 세상끝까지라도 갈수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다'는 
말도 생각납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예측 가능하고 신뢰가 있어야 하며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회개와 진실이 제3의 길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이 '제3의 길'에 답을 줍니다. 
주님의 길, 사랑의 길, 생명의 길, 겸손의 길입니다. 

평상심이 도란 말도 있듯이 아주 평범한 길입니다. 
길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계명에, 말씀에, 일상의 하느님 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빛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성탄시기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계명의 핵심은 사랑이요 이게 제3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부모와 시메온이 그 모범입니다. 
모두 일상의 계명에, 
제3의 길인 사랑에 충실했던 분들입니다.

'모세와 율법의 규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율법에 충실함 역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께 봉헌한 예수 아기였기에 마리아, 요셉 부부는 
예수 아기를 하느님의 선물로 믿어 참으로 사랑했을 것입니다. 

예전 존경했던 선배 신부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수차 인용했던 말씀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규칙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명답입니다. 
규칙대로, 법대로, 말씀대로, 계명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주어진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요 제3의 길입니다. 

시메온에 대한 묘사도 아름답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에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비상한 신비가가 아니라 
시메온처럼 이런 일상의 하느님 계명에 충실한, 
의롭고 독실한 자가 참 신비가입니다. 

이런 이들 위에 머물러 계시는 성령입니다.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메온입니다. 
일상에서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했던 시메온에게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했던 하루를 마치고 
매일 끝기도때 마다 시메온과 함께 바치는
 '시메온의 노래'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2,29-32).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했던 우리 역시 
시메온처럼 예수님을 한 가슴 가득 받아 모시고 
주님을 찬미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2014.12.29. 월요일(뉴튼수도원 49일째) 성탄 팔일 축제 내 제5일, 1요한2,3-11 루카2,22-35


                                                                                                            

"제 3의 길"

-주님의 길-


오늘은 좌도 우도, 진보도 보수도 아닌, 제 3의 길, 주님의 길에 대한 묵상입니다. 

이런저런 예화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1.

어제 수도원 묘지에 갈 때 봄 기운을 느꼈습니다. 

이상 기온 탓인지 봄 날씨 같았습니다. 


'아, 겨울 속에 봄이, 절망 속에 희망이, 어둠 속에 빛이, 죽음 속에 빛이구나! 

현세의 삶 안에 이미 내세의 하늘나라이구나!' 라는 깨달음 이었습니다. 


이런 깨달음을 사는 것이 바로 제 3의 길입니다.


2.

요즘 겸손에 대해 많이 생각합니다. 

몇 달전 전임 시몬 아빠스님을 방문했을 때의 신선한 충격이 생각납니다. 

작은 음성으로 '고백성사' 운운하시기에 웬 말씀인가 했는데, 

저에게 고백성사를 보시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하여 고백성사를 드렸는데 '겸손이 참 아름답다'는 깨달음을 잊지 못합니다. 


여기 뉴튼수도원에서도 

전임 미국 출신의 조엘 아빠스님과 루가 수사님도 

묵묵히 낮은 자리를 지키는 모습에서도 겸손을 배웁니다. 


미국 수도자들이 주축을 이뤘던 번성기때의 뉴튼수도원을 생각하면 비애를 느끼기도 하겠지만 

전혀 그런 내색없이 하느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현재'를 사는 것이 바로 겸손임을 배웁니다. 


바로 겸손이 제3의 길임을 깨닫습니다.


3.

여기 미국의 뉴튼수도원이 부러운 것은 광활한 사막 같은 외적공간입니다. 

외적공간이 넉넉하니 저절로 침묵하게 되고 마음도 넉넉하고 여유로워지는 느낌입니다. 


한국의 작은 외적공간에서 어떻게 내적공간을 넓히며 살아야 할지 답을 주는 것이 바로 제3의 길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


로 이것이 제3의 길입니다. 

끊임없는 수행이 목표하는 바도 사랑의 수행을 통한 마음의 비움이자 순수입니다. 


이래야  제 3의 길, 넓은 내적공간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4.

'버티지 못하면 자살이고, 버티면 암이다'라는 인터넷에서 읽은 말마디를 잊지 못합니다. 

자본주의 경쟁 사회를 살아가는 각박한 현실을 풍자한 말입니다. 

이런 절망적 상황에서 살 길이 바로 오늘 소개할 제3의 길입니다.


5.

올 한해를 되돌아보는 사자성어로 교수들은 '지록위마(指鹿爲馬)'를 꼽았다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에 나오는 고사성어로 '사슴을 말이라 했다'는, 

거짓이 진실인양 횡행했던 한 해를 풍자한 말입니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없습니다. 

'거짓말로 세상끝까지라도 갈수있지만 돌아올 수는 없다'는 말 생각납니다. 

말이든 행동이든 예측 가능하고 신뢰가 있어야 하며 

바로 이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회개와 진실이 제3의 길입니다.


바로 오늘 말씀이 '제3의 길'에 답을 줍니다. 

주님의 길, 사랑의 길, 생명의 길, 겸손의 길입니다. 


평상심이 도란 말도 있듯이 아주 평범한 길입니다. 

길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습니다. 


바로 하느님의 계명에, 말씀에, 일상의 하느님 법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나는 그분을 안다.'하면서 그분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쟁이고, 그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분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 안에서 참으로 하느님의 사랑이 완성됩니다. 

어둠이 지나가고 이미 참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빛속에 있다고 말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사랑하는 사람은 빛속에 머무르고. 그에게는 걸림돌이 없습니다.“


성탄시기 우리 모두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바로 계명의 핵심은 사랑이요 이게 제3의 길입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의 부모와 시메온이 그 모범입니다. 

모두 일상의 계명에, 제3의 길인 사랑에 충실했던 분들입니다.


'모세와 율법의 규정에 따라 정결례를 거행할 날이 되자, 

예수님의 부모는 아기를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올라가 주님께 바쳤다. 

그들은 또한 주님의 율법에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어린 집 비둘기 두 마리를' 바치라고 명령한 대로 제물을 바쳤다.‘


율법에 충실함 역시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주님께 봉헌한 예수 아기였기에 마리아, 요셉 부부는 

예수 아기를 하느님의 선물로 믿어 참으로 사랑했을 것입니다. 


예전 존경했던 선배 신부님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수차 인용했던 말씀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까?-

"규칙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명답입니다. 

규칙대로, 법대로, 말씀대로, 계명대로, 하느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입니다. 

주어진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는 것, 바로 이것이 사랑이요 제3의 길입니다. 


시메온에 대한 묘사도 아름답습니다.

'이 사람은 의롭고 독실하며, 이스라엘에이 위로받을 때를 기다리는 이였는데, 

성령께서 그 위에 머물러 계셨다.'


비상한 신비가가 아니라 시메온처럼 이런 일상의 하느님 계명에 충실한, 

의롭고 독실한 자가 참 신비가입니다. 

이런 이들 위에 머물러 계시는 성령입니다. 


마침내 아기 예수님을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미하는 시메온입니다. 

일상에서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했던 시메온에게 하느님 주신 최고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했던 하루를 마치고 매일 끝기도때 마다 

시메온과 함께 바치는 '시메온의 노래'입니다. 


"주님, 이제야 말씀하신 대로, 당신 종을 평화로이 떠나게 해 주셨습니다. 

제 눈이 당신 구원을 본 것입니다. 

이는 당신께서 모든 민족들 앞에서 마련하신 것으로, 

다른 민족들에게는 계시의 빛이며,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입니다.“(루카2,29-32).


이 거룩한 미사시간,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했던 우리 역시 시메온처럼 

예수님을 한 가슴 가득 받아 모시고 주님을 찬미하는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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