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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30 화/ 지나가버리는 세상과 영원히 남는 삶/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29 조회수1,013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탄 팔일 축제 내 제6일 화 루카 2,36-40(14.12.30)
 

“세상은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지나간다.”(1요한 2,17)


  

Anna the Prophetess

 

 

지나가버리는 세상과 영원히 남는 삶

 

올해도 우리는 쓰다만 편지처럼, 못다 읽은 책의 마지막 장을 보듯 만감이 교차하는 해끝에 서 있다. 사도 요한은 어두움의 위험성과 빛 가운데 걸어야할 필요성에 대하여 사람들에게 경고한 다음, 여기서는 사람들이 온갖 사태에 대처하는 가장 훌륭한 방법이 무엇인가를 일러준다. 그 방비책이란 자신들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를 알아보며, 자신들을 위하여 지금까지 무엇이 이루어졌는가를 명심해 두라는 것이다. 죄의 세력에 대한 최선의 방비는 자신이 누구이며 무엇인가?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무엇을 이룩해 주셨는가를 자각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지적하기를, “세상도 세상 안에 있는 것들도 사랑하지 말라”(1요한 2,15)고 한다. 누구나 세상을 사랑하면 그 사람 안에는 사랑이 없으며(2,15)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육의 욕망과 눈의 욕망과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은 세상에서 온 것인데, 세상도 지나가고 세상의 욕망도 다 지나간다.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은 영원히 남는다고 가르친다(2,16-17).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 당시 유대인들은 페르시아의 사상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들은 생각하기를 세상을 빛과 어두움의 전장으로 여겼다. 이 양자 사이에는 영원한 투쟁이 있으며, 어느 편을 섬기는가 하는 문제는 인생의 일대 선택이라는 것이다. 모든 사람은 빛이든 어두움이든 어느 편에 기울어진다는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러한 속에서 유대인들은 시간을 두 가지로 나누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사악하고 죄악에 물들어 버린 멸망의 시대인 현시대이고, 또 하나는 다가오는 시대인 하느님의 시대로서 온전히 선한 시대이다.


그리스도인의 기본적인 세계관은 이와는 다른 의미를 지닌다. 요한은 다가오는 시대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왔으며, 하느님의 나라가 임하였다고 가르쳤다. 하느님의 나라가 이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의 백성을 위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이들을 위하여 임했다는 것이다. 세상은 하느님의 창조물이며, 하느님은 만물을 훌륭하게 지으셨다. 또한 예수님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사랑하셨으며,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이라 할지라도 내일의 운명을 모르면서 피는 들꽃보다 더 누리지 못하였다고 하셨다. 예수님은 수없이 세상과 자연, 그리고 그 변화를 취하여 비유와 예증으로 삼으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버리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과 믿음을 저버리는 세속에 끌려 다니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곧 비열한 욕망, 그릇된 가치관, 죽음의 문화와 불의를 거슬러 거짓 신들을 따르지 말라는 것이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아가는 우리의 삶은 어떠해야 할까?
첫째는 오늘 복음에 나오는 한나 예언자처럼 하느님과의 굳건한 관계를 맺어야 하고 삶의 시작도 마침도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나는 여든네 살이 되도록 과부로서 사회적 약자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는 “성전을 떠나는 일 없이 단식하고 기도하며 밤낮으로 하느님을 섬겼다.”(루카 2,37) 또한 그녀는 시메온처럼 구원을 보게 된 기쁨에 하느님께 감사드렸다. 하느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와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였던 것이다.


다음으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 한다(1요한 2,17). 유한한 인간이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불로초나 갖가지 생명 연장을 위한 보조식품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영원하신 하느님’의 뜻을 실천해야만 한다. 인간의 유한성은 영원성을 지닌 하느님 안에서만 의미를 지닌다. 그것이 행복의 길이다.


끝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세상의 의미를 분명히 알아차려 처신해야 한다. 성 프란치스코가 이미 간파했듯이 세상은 하느님의 선(善)이 드러나는 곳이요 전능 자비하신 하느님을 만나는 장(場)이다. 그러나 세상은 동시에 하느님의 선을 자기 것으로 소유하려는 경향(appropriatio) 때문에 악이 공존하는 곳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런 세상은 찰라처럼 지나가버리는 잠시성(暫時性)과 하느님의 영원성(永遠性)이 동시에 드러나는 곳이다. 문제는 나의 태도이다. 지나가버릴 세상, 헛되고 헛된 세상이지만 내가 영원하신 하느님 안에 머물고 그분의 뜻을 실천한다면 세상은 영원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육의 욕망’, ‘눈의 욕망’, ‘살림살이에 대한 자만’을 버리고 영원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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