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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31 수/ 생명과 빛이신 말씀을 품음/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30 조회수829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탄 팔일 축제 내 제7일 수 요한 1,1-18(14.12.31)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요한 1,17)


  

 

 

생명과 빛이신 말씀을 품음

 

한해의 마지막 날 우리는 영원으로 초대하는 요한복음의 시작을 듣는다. 요한복음의 머리말은 로고스의 선재와 강생, 창조와 구원행위 등을 언급하고 있다. 이는 요한복음의 전체 내용을 알아차리도록 이끌어주는 핵심어 역할을 한다. 요한은 예수님의 족보를 전한 공관 복음사가들과는 달리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아버지 안에서 이루어진 영원한 탄생을 서술하고 있다. ‘말씀’은 창조되지 않고 이미 영원 속에 절대적으로 계셨고(반과거형), 하느님과 함께 계셨으며, 아버지와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하느님이셨다(1,1).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하느님의 말씀이나 예수님의 말씀과는 구별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전인격을 가리킨다.


세상 창조는 말씀을 통하여 생겨났다. 이렇듯 ‘말씀’이 하느님의 창조행위에 동참하였으므로 모든 창조 활동은 성부와 성자의 공동행위이다(1코린 8,6).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1,3-4). ‘말씀’은 모든 것의 원천으로서 우리가 충만한 삶을 살아가도록 이끌어주신다. 아울러 말씀은 인간이 걸어가야 할 참된 길을 가리켜주는 ‘빛’이시다(8,12). 예수님께서도 자신을 ‘세상의 빛’이라 하면서 자신을 따라오는 이들은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8,12).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고 있으나 어둠 속에 살아가는 이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깨닫지 못하였다(1,5). 여기서 ‘깨닫다’는 과거형인데 ‘비치다’는 현재형으로 쓰였다. 이는 과거에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1,14) 세상에 오신 예수님을 배척했으나 ‘빛’은 지금도 여전히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3,19) 인간을 비추고 있음을 뜻한다. ‘어둠’은 하느님을 거부한 세상, 하느님의 빛으로 비추어지지 않은 세상을 가리킨다. 사실 영혼의 어둠으로 타락하고 눈먼 인간 자신이 곧 ‘어둠’이다.


말씀이신 예수님은 참빛이시고(1,9) 충만하신 분이셨으나(1,16) 세상은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고’(1,10), ‘맞아들이지 않았다.’(1,11) 그러나 세례자 요한은 빛이 아니지만 ‘빛을 증언하러 왔으며’(1,8),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음을 알려주었다(1,16).


오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 삶을 돌아보자! 성탄 시기의 핵심 영성인 교환의 신비를 통하여 우리는 모든 것을 거저주신 주님을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 창조 이전부터 영원성을 띠고 존재하신 말씀이신 예수님의 전인격이 매순간의 나의 삶에서 드러나는가? 혹시 나는 뿌리도 없고 가야 할 방향도 모르면서 세상의 어둠이 주는 ‘어둠’에 맛들이며 헛되고 헛된 것을 좇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것이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생겨났다면 나도 나의 삶을 통하여 모든 창조의 근원인 예수님의 창조행위에 동참하여야 하지 않을까? 왜 우리는 어둠을 비추는 빛을 알아보지도 맞아들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어둠’인 채 서성대는 것인가? 이 성탄시기에 사람이 되어 오신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주어진 은총과 진리에 감사하며 빛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한해의 마지막 날 물리적 시간의 끝에서 아쉬워 하기보다 창조 이전부터 영원히 계시는 그분을 더 그리워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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