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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하느님 예찬(禮讚)-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4-12-31 조회수1,303 추천수15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12.31. 수요일(뉴튼수도원 51일째),
1요한2,18-21 요한1,1-18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하느님 예찬(禮讚)-

한 해의 끝날이 감격스럽습니다. 
도반(道伴)의 성탄축하카드 서두 부분이 생각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어느덧 2014년도 허무하게 가네요. 
한 해의 막바지에 설 때마다 늘 연례행사처럼 되뇌는 말,
'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가?“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그러나 허무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전에 '절망'이란 단어가 없듯이, 
제 삶의 사전에 '허무'란 단어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허무가 아닌 저에겐 충만한, 감사와 은총으로 가득한 
한 해였습니다. 

나라는 극심한 내홍을 겪었고 겪고 있는 중이지만 
저와 수도원은 하느님이 눈부시게 활약하신 해였습니다. 

제 삶의 여정이나 수도여정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하느님이 제 삶의 문장에 주어가 되시어 맹활약한 해였습니다. 

하여 저절로 
강론 제목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이라고 정했고, 
하느님을 자랑하리라 작심했습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호언장담하던 저를 
하느님은 더 겸손해지라고, 더 비워 낮아지라고, 
요셉수도원을 자치수도원으로 승격시키면서 원장직을 
내려 놓아 주심과 동시에 안식년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수도원 밖을 순례하라는 특별한 선물을 주시니
 '안식년'은 '순례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닌 아무도 예상 못한 하느님의 특단의 조처였습니다. 

하여 난생 처음 외적 순례 중 많은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성지가 있어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있어 성지입니다. 

수도원이 있어 수도자가 아니라 수도자가 있어 수도원입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제가 수도원을 떠나 머문 곳 역시 모두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을 떠나 우선 감행한 것이 국내 순교 성지 순례 였고 
1차로 수도권 주변의 성지 순례에 이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성주간이 지난 부활주일 다음 
월요일부터는 20여일의 단식기도 순례 피정을 했습니다. 
2차례에 걸쳐 수녀원 연피정을 지도했고, 
사랑하는 수도형제들이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7.11일) 
행사도 마련해 줬습니다. 

2011년 수도서원 25주년 은경축, 
2012년 수도원 설립 25주년, 
2013년 요셉수도원에 파견된지 25주년 등 
저에겐 참 의미있는 '25'라는 숫자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25주년을 맞이 해 쓴 제 좌우명 같은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작 고백시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다시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25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이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25년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長大)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山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정말 수도원을 떠난 
안식년 중에도 이렇게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떠남의 여정-이제 다시 시작이다-(2014.3,22 강론)'이 
예언처럼 적중된 해였습니다. 
하루하루 흐르는 강물처럼 살았습니다만 
늘 하느님 안에 정주했습니다. 

이어 8.20일부터 10.8일까지 50여일 동안, 
루르드-800km 2000리의 산티야고까지의 도보-파티마 순례중에도 
매일미사를 드렸고, 강론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수도원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수도원을 떠난 안식년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 어디서든 
성무일도는 물론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을 올리며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저를 통해 하느님이 이루신 놀라운 기적입니다. 

11.11일부터는 미국의 사막같은 뉴튼수도원에서 
내적순례중이고 오늘 12,31일은 '뉴튼수도원 51일째' 되는 날입니다.

참 위태로운 것이 살다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날이 그날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일상의 늪'에 빠지거나 
'시간의 감옥'에 갇힌 무력한 수인이 되어 
세월의 풍화작용에 몸과 맘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마련입니다. 

떠남의 여정은 그대로 '살기위한' 탈출의 여정입니다. 
이래야 매일매일이 새 하늘, 새 땅의 새날이요, 
바로 매일 미사와 강론이 이를 가능하게 해줬습니다.

-압바 포멘은 압바 피올에 대해
 '그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했다(Each day he made a new beginning)'고 말했다.-

사막교부의 말씀대로, 
날마다 다시 일어나 '초보자(beginner)'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겸손이요 진정한 영성가입니다. 

아주 간단한 영성생활의 지침입니다. 

어제 새해를 축하한다는 아프리카의 수도형제에게 
"Every day is a new day to me(매일이 나에게는 새날이다)"라 
화답하면서 자족했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모두의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를 깨어 마지막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성령의 기름을 받아 진리를 알았으니 
거짓 없이 깨어 진리대로 지금 여기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사도의 다음 복음 말씀도 연상되어 은혜로웠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바로 이 말씀이 복음 중의 복음이요, 
말씀의 은총이 우리를 참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말씀은 하느님이자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된 신비가 성탄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된 것은 사람이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란 
교부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얼마나 존엄한 품위의 사람인지요. 
한 번의 성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탄의 신비는 계속 일어납니다. 

하여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하느님의 영광이 환히 빛나는, 
새 하늘, 새 땅의 새 날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1요한4,9). 

아멘.



2014.12.31. 수요일(뉴튼수도원 51일째),1요한2,18-21 요한1,1-18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하느님 예찬(禮讚)-



한 해의 끝날이 감격스럽습니다. 

도반(道伴)의 성탄축하카드 서두 부분이 생각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어느덧 2014년도 허무하게 가네요. 

한 해의 막바지에 설 때마다 늘 연례행사처럼 되뇌는 말,'시간이 왜 이렇게 빨리 가는가?“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입니다. 

그러나 허무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의 사전에 '절망'이란 단어가 없듯이, 제 삶의 사전에 '허무'란 단어도 이미 사라졌습니다. 

허무가 아닌 저에겐 충만한, 감사와 은총으로 가득한 한 해였습니다. 


나라는 극심한 내홍을 겪었고 겪고 있는 중이지만 

저와 수도원은 하느님이 눈부시게 활약하신 해였습니다. 


제 삶의 여정이나 수도여정에 있어 획기적인 전환점이 된 해였습니다. 

하느님이 제 삶의 문장에 주어가 되시어 맹활약한 해였습니다. 


하여 저절로 강론 제목은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이라고 정했고, 

하느님을 자랑하리라 작심했습니다.


"불암산이 떠나면 떠났지 난 안 떠난다.“

호언장담하던 저를 하느님은 더 겸손해지라고, 더 비워 낮아지라고, 

요셉수도원을 자치수도원으로 승격시키면서 

원장직을 내려 놓아 주심과 동시에 안식년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수도원 밖을 순례하라는 특별한 선물을 주시니 '안식년'은 '순례년'이 되었습니다. 

하느님 아닌 아무도 예상 못한 하느님의 특단의 조처였습니다. 


하여 난생 처음 외적 순례 중 많은 일들을 체험했습니다. 

성지가 있어 성인이 아니라 성인이 있어 성지입니다. 


수도원이 있어 수도자가 아니라 수도자가 있어 수도원입니다. 

하느님은 어디에나 계시기에 제가 수도원을 떠나 머문 곳 역시 모두 수도원이었습니다. 


수도원을 떠나 우선 감행한 것이 국내 순교 성지 순례 였고 1차로 수도권 주변의 성지 순례에 이어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성주간이 지난 부활주일 다음 월요일부터는 

20여일의 단식기도 순례 피정을 했습니다. 


2차례에 걸쳐 수녀원 연피정을 지도했고, 

사랑하는 수도형제들이 사제서품 25주년 은경축(7.11일) 행사도 마련해 줬습니다. 

2011년 수도서원 25주년 은경축, 

2012년 수도원 설립 25주년, 

2013년 요셉수도원에 파견된지 25주년 등 저에겐 참 의미있는 '25'라는 숫자입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25주년을 맞이 해 쓴 제 좌우명 같은 '하루하루 살았습니다.'라는 자작 고백시를 

봉헌하는 마음으로 다시 나눕니다.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하늘 향한 나무처럼

비가 오든, 눈이 오든, 덥든 춥든, 

봄, 여름, 가을, 겨울

늘 하느님 불러 주신 이 자리에서

하느님만 찾고 바라보며 정주(定住)의 나무가 되어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살다보니 1년생 작은 나무가 

이제는 25년 울창한 아름드리 하느님의 나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언제나 그 자리에 불암산(佛巖山)이 되어 

가슴 활짝 열고 모두를 반가이 맞이하며 살았습니다.

있음 자체만으로 

넉넉하고 편안한 산의 품으로 

바라보고 지켜보는 사랑만으로 행복한 산이 되어 살았습니다.

이제 25년 연륜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장대(長大)한 

'하느님의 살아있는 산맥(山脈)'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끊임없이 

하느님 바다 향해 흐르는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때로는 좁은 폭으로 또 넓은 폭으로

때로는 완만(緩慢)하게 또 격류(激流)로 흐르기도 하면서

결코 끊어지지 않고 계속 흐르는 '하느님 사랑의 강(江)'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활짝 열린 앞문, 뒷문이 되어 살았습니다. 

앞문은 세상에 활짝 열려 있어 

찾아오는 모든 손님들을 그리스도처럼 환대(歡待)하여 영혼의 쉼터가 되었고

뒷문은 사막의 고요에 활짝 열려 있어 

하느님과 깊은 친교(親交)를 누리며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기도하고 일하며 살았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용서하며, 순종하며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고

세상을 위해 기도하며 

끊임없이 일하면서 하느님의 일꾼이 되어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주님의 집인 수도원에서 

주님의 전사(戰士)로, 

주님의 학인(學人)으로, 

주님의 형제(兄弟)로 살았습니다.

끊임없이 이기적인 나와 싸우는 주님의 전사로

끊임없이 말씀을 배우고 실천하는 주님의 학인으로

끊임없이 수도가정에서 주님의 형제로 살았습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 살았습니다.

하루하루 일일일생(一日一生), 하루를 평생처럼, 처음처럼 살았습니다.

저에겐 하루하루가 영원이었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이렇게 살았고 내일도 이렇게 살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토록 영광과 찬미 받으소서.-


정말 수도원을 떠난 안식년 중에도 이렇게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떠남의 여정-이제 다시 시작이다-(2014.3,22 강론)'이 예언처럼 적중된 해였습니다. 

하루하루 흐르는 강물처럼 살았습니다만 늘 하느님 안에 정주했습니다. 


이어 8.20일부터 10.8일까지 50여일 동안, 

루르드-800km 2000리의 산티야고까지의 도보-파티마 순례중에도 매일미사를 드렸고, 

강론을 써서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수도원에 있을 때는 물론이고, 

수도원을 떠난 안식년 중에도 하루도 빠짐없이 언제 어디서든 

성무일도는 물론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강론을 올리며 하루하루 살았습니다. 


저를 통해 하느님이 이루신 놀라운 기적입니다. 


11.11일부터는 미국의 사막같은 뉴튼수도원에서 내적순례중이고 

오늘 12,31일은 '뉴튼수도원 51일째' 되는 날입니다.


참 위태로운 것이 살다보면 어제나 오늘이나 내일이나 그날이 그날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일상의 늪'에 빠지거나 '시간의 감옥'에 갇힌 무력한 수인이 되어 

세월의 풍화작용에 몸과 맘도 서서히 무너져 내리기 마련입니다. 


떠남의 여정은 그대로 '살기위한' 탈출의 여정입니다. 

이래야 매일매일이 새 하늘, 새 땅의 새날이요, 바로 매일 미사와 강론이 이를 가능하게 해줬습니다.


-압바 포멘은 압바 피올에 대해 

'그는 날마다 새롭게 시작했다(Each day he made a new beginning)'고 말했다.-


사막교부의 말씀대로, 

날마다 다시 일어나 '초보자(beginner)'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 겸손이요 진정한 영성가입니다. 


아주 간단한 영성생활의 지침입니다. 


어제 새해를 축하한다는 아프리카의 수도형제에게 

"Every day is a new day to me(매일이 나에게는 새날이다)"라 화답하면서 

자족했던 일도 생각이 납니다.


"자녀 여러분, 지금이 마지막 때입니다.“


사도 요한은 우리 모두의 경각심을 일깨웁니다. 

바로 오늘 지금 여기를 깨어 마지막처럼 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거룩하신 분으로부터 성령의 기름을 받아 진리를 알았으니 

거짓 없이 깨어 진리대로 지금 여기를 살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사도의 다음 복음 말씀도 연상되어 은혜로웠습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은총과 진리가 충만하신 아버지의 외아드님으로서 지니신 영광을 보았다. 

그분의 충만함에서 우리 모두 은총에 은총을 받았다.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


바로 이 말씀이 복음 중의 복음이요, 말씀의 은총이 우리를 참 사람으로 살게 합니다. 

말씀은 하느님이자 그리스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된 신비가 성탄의 신비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된 것은 사람이 하느님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란 교부의 말씀도 생각납니다. 


얼마나 존엄한 품위의 사람인지요. 


한 번의 성탄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평생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안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성탄의 신비는 계속 일어납니다. 


하여 우리 모두는 하루하루 은총과 진리가 충만한, 

하느님의 영광이 환히 빛나는, 

새 하늘, 새 땅의 새 날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하느님은 당신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 주셨네."(1요한4,9).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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