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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믿음의 대상은 믿어야 하는 이의 가르침이다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1 조회수1,098 추천수10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나해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 그리스도는 내 뒤에 오시는 분이시다. >


복음: 요한 1,19-28





세례자 요한


엘 그레코(Greco, El) 작, (1600), 샌프란치스코 파인아트 미술관


     < 믿음의 대상은 믿어야 하는 이의 가르침이다 >

                 

며칠 동안 자기 위에 침대에 누우면 다리에 근육이 저린 것과 같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불편했었습니다. 특히 허벅지 뒷부분이 그랬습니다. 이는 본래 축구나 테니스와 같은 활동량이 많은 운동을 하던 사람이 그런 운동을 하지 못하고 지내다보니 그런 운동을 할 때 사용하던 근육들이 풀려버려서 매우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구청 계단을 오를 때만이라도 다리 근육을 쓰고 싶어서 뛰어 다니다가 주교님께 왜 뛰어다니느냐고 애정 어린 한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로는 누울 때 나타나는 그 이상하고 불편한 느낌을 가시게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며칠 전에 예전 출신 본당 수녀님께 안부 전화를 받았습니다. 책을 냈는데 왜 당신한테 알리지 않았느냐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당신은 요즘 절운동을 하고 있다고 하고 그것을 저에게 해 보도록 추천했습니다. 이는 불교에서 108배를 하는 것을 운동으로 만든 것이고 특히 SBS에서 방영한 ‘0.2평의 기적이란 프로그램 때문에 우리나라에 더 많이 알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전에 조금은 해 보았기 때문에 무슨 운동인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매트도 있지만 전에는 숫자를 세면서 그것을 하는 것이 불편하여 조금 하다가 포기하고 말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스마트폰 어플이 있어서 절 할 때마다 숫자를 세어주고 다 끝나면 박수까지 쳐 준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불교에서 하는 식의 절을 하기보다는 수영선수가 출발하기 직전에 양 팔을 다리 밑까지 쭉 내리는 것처럼 양손을 하늘로 추켜올렸다가 다리 밑까지 쭉 내려서 절을 하면 더 효과적이라는 것입니다. 문득 그런 자세를 여러 번 하면 다리 뒤쪽 근육들이 당겨지고 다시 근육들이 붙게 될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며칠 해 보았습니다. 언제까지 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으로서는 매우 좋은 운동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20분 정도밖에 안 걸리는 데도 수영 1시간 한 효과가 난다고 하는데 정말 온 몸이 뻐근하고 특히 허벅지 뒷부분이 당겨지는 좋은 느낌이 났습니다. 불편한 느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아침부터 기도하는 마음으로 절을 하면서 겸손하게 시작하니 정신도 맑아지는 느낌입니다.

   

저는 제 몸이 좋아지는 이 느낌에서 문득 오늘 독서에서 요한이 간단하게나마 설명한 인간이 구원되게 되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누군가는 누군가의 뜻으로 나에게 다가오고 그 뜻을 받아들여 실천하면 그 뜻 안에 나를 변화시키는 힘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아마도 당신 자신을 받아들이게 하시기 위해 파견자인 수녀님을 보내주셨고 제가 수녀님의 말을 받아들이고 실천함으로써 결국 하느님을 받아들이게 되어 저의 문제가 해결되게 해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이시기도 하고 당신을 받아들이도록 그리스도를 파견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아드님을 먼저 믿어야 하느님도 모실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드님 안에 아버지께서 머무시기 때문입니다.

아드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라야 아버지도 모십니다.”

그런데 아드님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그분께서 가르치신 것을 마음에 간직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사람이 원하는 뜻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십시오. 처음부터 들은 것을 여러분 안에 간직하면, 여러분도 아드님과 아버지 안에 머무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그분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 곧 영원한 생명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그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를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 아버지는 아드님 안에 계시기에, 그 아드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고 실천하면 우리 안에 아드님과 아버지께서 들어오셔서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분의 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 뜻을 전해주시는 분은 우리 안에 먼저 들어오시는 성령님입니다. 그 성령님은 진리의 성령이시기에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가르쳐주신 모든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요한은 성령의 오심을 기름부음이라 표현하는데 기름이 바로 성령님을 상징한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분에게서 기름부음을 받았고 지금도 그 상태를 보존하고 있으므로, 누가 여러분을 가르칠 필요가 없습니다. 그분께서 기름 부으심으로 여러분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십니다. 기름부음은 진실하고 거짓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그 가르침대로 그분 안에 머무르십시오.”

,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은 그리스도의 참 뜻이 성령을 통하여 나에게 오는데 그 말을 실천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사제와 레위인은 성전에 예배를 드리기 위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예배가 중요하였기 때문에 강도를 만나 길에 쓰러져 있는 피투성이의 사람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은 비록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 마음 안에서 울려오는 성령의 소리, 그리스도의 가르침, 즉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을 무시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성전에서 예배한 사람들이 아닌 당신의 뜻을 실천한 이 사마리아 사람만이 구원받을 것임을 암시하십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가르침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는 것이지 그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고 예배 행위만 한다고 해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란 바로 그분의 말씀 안에 참 생명이 있어서 그것을 실천하면 내 자신 안에 영원한 생명이 거하게 된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말씀에 생명이 있음을 먼저 믿는 것입니다. 즈카리야는 하느님은 믿었지만 천사가 전해 준 그 말씀은 믿지 않아서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천사가 전해주는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믿었기에 참으로 영원한 생명을 당신 태중에 간직하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믿고 그대로 실천하는 길만이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입니다. 혹 내가 알고 있으면서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이 있으면서도 미사와 같은 예식에 참여하는 것을 더 중요시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는지 반성해야 할 것입니다. 그분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으면서 하는 모든 행위들은 영원한 생명을 간직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의 계명을 믿고 실천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존재 또한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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