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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2 금/ 참 행복을 준비하는 주제 파악/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1 조회수879 추천수3 반대(0) 신고

   

성 대 바실리오와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요한 1,19-28(15.1.2)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요한 1,27)
 

 

John the Baptist's Testimony to Himself 


 

참 행복을 준비하는 주제 파악

 

오늘 복음에서 당시 유다 백성의 종교지도자였던 바리사이들이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그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한다. 그들의 질문에 요한은 서슴지 않고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다”(요한 1,20)라고 사실대로 고백하였다. 그는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거짓말쟁이”(1요한 2,22)가 아니었다. 계속 누구인지 묻는 그들에게 그는 “나는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내어라’ 하고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요한 1,23)이며, “나는 그분의 신발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1,27) 라고 한다. 어느 날 그가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눈여겨보다가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1,36) 하고 말하자 그의 두 제자가 자신을 떠나 예수님을 따라갔다(1,37). 이렇게 그는 계속 사람들의 관심을 자신이 아닌 ‘예수님께로’ 돌렸다.


요한은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며 그분의 길을 준비하는 도구일 뿐임을 고백한다. 사실 그는 자신을 추종하는 이들이 많아 두려움을 느낀 헤로데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다. 그에게는 상당한 지지 세력이 있어 얼마든지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요 길을 닦는 자임을 분명히 인식하였고, 그 인식의 바탕 위에서 생각하고 행동하였다. 그는 평생을 그렇게 자기 위치에서 하느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소명을 철저히 살았다. 그는 체포되어 감옥에서 자신의 생명에 대한 실질적인 위협, 즉 ‘자신의 영혼의 어두운 밤’과 대면한다. 그래서 요한은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분이 선생님이십니까? 아니면 저희가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마태 11,1-19) 하고 물었다. 그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생각과는 다른 식으로 오신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심판을 위해서가 아니라 모든 이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것이다!

 

우리에게도 언제든 이런 상황은 일어날 수 있다. 이른바 영혼의 어둔 밤을 몰고 오는 것들, 예컨대 내가 기대하는 하느님의 모습과 성령의 활동과는 다를 때, 위기와 고통의 순간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원하는 식의 응답이 없을 때, 온갖 영적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간 듯 느껴질 때 우리는 깊은 어둠에 빠질 수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세례자 요한은 우리에게 말한다. “그분은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요한 3,30) “나는 그분의 신발 끈을 풀어 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마태 3,11) 세례자 요한은 이렇게 ‘하느님과 이웃을 귀한 손님이요 왕으로 모시며, 자신을 심부름꾼으로 뚜렷이 인식하였다. 그의 이런 겸손과 더욱 작아지고 아래로 내려가는 자세야말로 우리가 걸어야 할 행복의 길이다! 에릭슨이 말하는 자아정체감은 비단 청소년기에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영적 여정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이다.

 

광속(光速)으로 흘러가는 일상사 속에서 많은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주어진 세상의 현실에 얽매여 살아가고 있다.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나갈 수 있을까? 자신이 누구인가를 알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을 창조하신 하느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곧 기도 안에서 그분과 일치함으로써 그분이 주인이시고 자신은 하느님의 일을 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임을 알아차리게 된다. 하느님의 말씀과 눈으로 자신을 보지 않고서는 자기 주제파악을 할 수 없다. 하느님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올바로 깨닫게 된 사람의 삶의 방향은 자기중심에서 벗어나 철저히 이타적(利他的)으로 바뀐다. 무엇을 하든 자신의 뜻을 앞세우지 않고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하느님 안에서 의미 없는 것은 바라지도 행하지도 않게 된다. 이것이 참된 영적 성숙을 위한 기본자세요 지름길이다.

 

또한 인간학과 심리학 등의 도움을 받아 자신을 깊이 이해할 필요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수용이 있을 때에야 자신을 참으로 사랑할 수 있고, 자신을 진정 사랑할 줄 아는 사람만이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의 말처럼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원하고 사랑하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이다. 우리도 삶의 어려움과 영혼의 어둠 속에서도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고 주제파악을 하여 겸손되이 사랑의 길을 걸어가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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