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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2 조회수1,183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월 2일 성 대 바실리오와 나지안조의 성 그레고리오 주교 학자 기념일
 
“I am the voice of one crying out in the desert,
‘Make straight the way of the Lord,’
as Isaiah the prophet said.”
(Jn.1,23)
 
 
제1독서 1요한 2,22-28
복음 요한 1,19-28
 

어느 마을에 욕심쟁이 할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이 할아버지 집 앞에는 커다란 나무가 있었는데, 무더운 여름에 이 나무 그늘 아래는 더위를 식히는 곳으로는 최고였지요. 하루는 한 젊은이가 이 나무 그늘 아래로 들어와 더위를 식히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할아버지께서는 화를 내면서 이 나무가 자기 것이니 그날에서 당장 나가라는 말씀하셨지요. 그 순간 젊은이는 “제가 이 나무 그늘을 사겠습니다.”라고 말하면서, 10만원에 팔았습니다. 할아버지는 이 젊은이의 우둔하다고 생각하면서, 공짜로 10만원 벌었다고 기뻐했습니다.

그런데 해가 기울자 나무 그늘이 욕심쟁이 할아버지 마당으로 벋는 것입니다. 젊은이는 그늘을 따라 할아버지 집 마당으로 들어섰지요. 잠시 뒤, 나무 그늘이 안방으로 길게 드리워졌습니다. 그러자 젊은이는 안방에 들어가 누웠습니다. 할아버지가 화를 벌컥 내며 내쫓으려고 했지만, 젊은이는 나무 그늘 판 것을 잊었냐면서 그냥 안방에 누워 한숨 푹 자고 일어났지요.

그 뒤로 젊은이는 틈나는 대로 그늘을 따라 욕심 많은 할아버지의 안방으로 들어가 쉬곤 했습니다. 심지어는 더 나아가 동네 사람들에게도 큰 인심을 쓰듯이 “이 나무 그늘은 제 것이니 언제든지 와서 쉬다 가십시오.”라고 말하면 초대까지 했지요. 결국 이 할아버지는 참다못해 결국 다른 마을로 이사를 가고 말았지요.

내 것이 아닌 것에 욕심을 내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내 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어떤 이득을 취하려고 했던 적은 아니었을까요? 내 것은 내 것, 남의 것도 내 것이길 바라며 살고 있는 우리는 아닐까요? 생각해보면 내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의 삶을 모두 마친 뒤에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합니다. 내 것인 것처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하느님께서 잠시 우리들에게 맡긴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세례자 요한은 자기 것이 아닌 것에 절대로 욕심을 부리지 않습니다. 솔직히 자신이 이제까지 보여준 그 모든 행동을 통해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었지요. 그래서 엘리야, 예언자 등의 호칭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절대로 그 호칭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단지 주님의 길을 곧게 낼 뿐이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사명에 충실할 뿐임을 이야기하지요. 그리고 주님의 신발 끈을 풀어드리기에도 합당하지 않다며 지극히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오로지 하느님께 집중했었고 그래서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모든 것을 투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 것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다시금 떠올려 보았으면 합니다. 나의 소유도 그리고 나의 명예도 결국은 내 것이 아님을, 오직 주님의 것이었음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눈으로 남을 볼 줄 아는 사람은 훌륭한 사람이다. 그러나 귀로는 남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알고, 머리로는 남의 행복에 대해서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은 더욱 훌륭한 사람이다(유일한).


 

내 개가 아닌데...(‘좋은 생각’ 중에서)

한 청년이 커다란 개를 데리고 있는 아저씨에게 물었다.

“아저씨 개는 사람을 무나요?”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허허, 내 개는 사람을 물지 않아요.”

청년은 그 말에 안심하고 개를 쓰다듬었다. 그런데 개가 잽싸게 손가락을 무는 것이 아닌가! 화가 난 청년이 아저씨에게 따졌다.

“안 문다고 했잖아요!”

그러자 아저씨가 하는 말...

“이 개는 내 개가 아닌데...”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청년의 잘못? 아저씨의 잘못?

누구의 잘못이라고 말하기가 상당히 애매한 상황입니다. 왜냐하면 자세히 묻지 않고 개를 만진 청년에게 잘못이, 자신의 개가 아님을 말하지 않은 아저씨에게도 잘못이 어느 정도 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이 세상이 어쩌면 이런 상황과 비슷하지 않을까요? 누구의 잘못이라고도 말할 수 없으며, 또 누가 잘한 것이라고 말하기도 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런 불확실의 세상에 살면서도 왜 이렇게 잘잘못을 구분하려고 할까요?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특히 주님의 뜻에 맞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대충 살면 물리고 맙니다. 악이라는 사나운 개한테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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