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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3 조회수914 추천수8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월 3일 주님 공현 전 토요일
 
Behold, the Lamb of God,
who takes away the sin of the world.
He is the one of whom I said,
‘A man is coming after me who ranks ahead of me
because he existed before me.’
(Jn.1,29-30)
 
 
제1독서 1요한 2,29―3,6
복음 요한 1,29-34
 

어떤 분이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고 합니다. 서로 너무나도 반가웠지요. 상대방 친구는 양팔을 벌려 포옹을 하려 했고, 둘은 오랫동안 꽉 안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친구의 강력한 포옹에 느낌이 이상하더랍니다. 그리고 며칠 동안 계속해서 몸이 감기 걸린 것처럼 힘들어서 병원에 갔는데, 글쎄 갈비뼈 3대가 골절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반가워서 한 포옹이 잘못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잘못이라 할 수 없는 반가워서 한 행동이 이렇게 상대방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네요. 물론 뼈가 약한 사람의 탓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상대방의 몸 상태를 잘 알고 있었다면 이러한 행동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약한 몸이라는 것을 몰랐기 때문에 오랜만에 만난 친구를 병원 신세를 지게 한 것이지요.

제대로 안다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야 상처를 주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그 사람의 입장을 헤아릴 수 있는 마음을 간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진정으로 배려하는 삶, 주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신 사랑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제는 인천교구 평화의 날 미사가 있었습니다. 이 미사의 성가를 신학생들이 맡아서 했지요. 그런데 영성체 후 특송 때 이상한 것입니다. 피아노 반주만 계속될 뿐 노래가 나오지 않았거든요. 저는 ‘신학생들이 왜 이래?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저런 실수를 한 거야?’하면서 그들이 실수를 했다고 마음속으로 판단했지요. 그 순간에 한 신부님이 성가대쪽을 바라보고 난 뒤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신학생들이 지금 영성체 모시고 있는데, 해설자가 미리 특송하라고 말해 버렸네.”

신학생들이 틀린 것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해설자의 실수였던 것이지요. 뒤쪽의 성가대석만 바라봐도 쉽게 알 수 있었던 것을, 저는 보지도 않고 소리만 듣고는 신학생들이 실수를 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늘 자신의 입장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내 입장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기 위해서는 그를 알기 위한 노력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는 세례자 요한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주님에 대해서 ‘하느님의 어린양,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사람들에게 증언합니다. 이러한 증언이 가능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주님에 대해서 알려고 노력했고 그 결과 많은 것을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앎은 항상 주님의 일만을 생각했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우리 역시 주님을 알려고 노력했고, 그럼으로 인해 누구보다도 많이 알아 똑바로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을 증거했던 세례자 요한의 모습을 간직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주님을 세상에 제대로 알릴 수 있습니다.
사랑을 함으로써 비로서 인생이 아름다워졌다. 그리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알게 되었다(카를 쾨르너)


 

전쟁에 크게 패하는 요인(‘행복한 동행’ 중에서)

옛날 어느 장군이 전쟁에서 아군이 밀리고 있다는 급한 전보를 받고 전쟁터에 나가고자 서둘러 말에 올라탔다. 그러자 그의 시종이 붙잡았다.

“장군님, 아직 말의 상태를 다 점검하지 못했습니다. 조금만 기다려 주십시오.”

“단 1분이라도 지체할 수 없다. 그리고 평소에도 이 말은 아무 이상이 없고 건강했다. 오늘이라고 별 일 있겠느냐. 비켜라!”

하지만 불행히도 장군은 그날 전사하고 말았다. 그것도 적군과 맞서기도 전에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실 장군이 타고 나갔단 그 말의 편자는 부서져 있었다. 편자가 부서지자 말은 발의 통증을 못 이겨 기우뚱거리다 그만 장군을 떨어뜨렸다. 장군의 죽음은 군사들의 자신감을 잃게 했으며 곧 전쟁에 크게 패하는 요인이 되었다.

말의 상태를 제대로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었습니다. 모른다는 것, 또한 알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것이 자신에게 돌아올 큰 해가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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