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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그리스도를 품은 별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3 조회수1,064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주님 공현 대축일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복음: 마태오 2,1-12







 예수에게 우유스프를 먹이는 성모



다비드(David, Gerard) 작, (1520), 오크 유화, 35 x 29 cm, 브뤼셀 왕립미술관


     < 그리스도를 품은 별 >

        

며칠 전 주교님의 교구청 사목방문이 있었습니다. 각자 하고 있는 일들을 발표하는데, 교도소 사목을 담당하는 사제가 현재 교도소 수감자 중 가톨릭 신자 비율이 5%도 안 되는 소수라고 말을 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은 거의 없고 많은 수가 교도소 안에서 교리를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밖에서는 10% 정도가 가톨릭 신자라고 하는데 그만큼 가톨릭 신자들이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대부분의 대형 종교에서는 모두 사랑과 자비와 용서 등을 가르치며 이웃에게 해를 입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데도 왜 가톨릭 신자들이 유독 다른 종교의 사람들보다 범죄율이 낮고 또 이웃을 위한 봉사나 자선의 양도 많은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화감독 스티븐 앨런 스필버그는 흥행의 마법사, 천재적 감독이라고 불리어지고 있습니다. 인디아나 존스, E.T., 주라기 공원, 쉰들러 리스트 등 세계인의 사랑받는 영화를 만들어 내었습니다. 스필버그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표창장 한 번 받지 못한 학생이었답니다. 사람들로부터 왕따를 당해 멸시와 천대를 받았고, 대학 시절에도 평균 C 학점을 받았답니다. 그에게는 부모의 이혼과 유대인이라는 열등감과 상처가 그림자처럼 붙어 다녔습니다. 잦은 이사와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친구들의 놀림과 괴롭힘을 당하면 혼자 공상에 빠지고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썼습니다.

이런 그였지만 그를 세계적인 영화감독으로 성공시킨 원동력은 어머니 레아 아들러였답니다. 레아는 열등감에 사로잡힌 아들을 무시하거나 야단치지도 않았고, 아들대신 동네 친구들을 징벌하러 나서지도 않았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아들의 우월성을 발견하고 저렴한 무비카메라를 선물해 주었고 스티븐은 독학으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괴롭힘을 많이 당해 결석을 자주 하였지만 그는 집에서 영화에 대한 공상을 하고 영화를 찍으러 밖으로 나가곤 했습니다. 영화는 혼자 찍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영화에 흥미 있는 친구들을 모아 영화 제작에 동참시켰습니다. 어머니는 스티븐이 친구들과 어울려서 영화를 찍을 수 있도록 전적으로 지원하였습니다. 스티븐의 어머니는 매우 낙관적이고 긍정적인 사람이었습니다. 아들에 대하여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레아는 아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었고, 아들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알아보고 아들에 대한 기대를 가졌습니다. 레아의 어머니 즉 스티븐의 외할머니는 딸 레아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내 말을 잘 새겨둬라. 이 아이는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칠 아이다.”

레아는 아들을 볼 때 마다 어머니의 말을 마음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아들에게 기대를 하였으며 결국 그 기대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사람은 기대에 맞게 행동하려는 성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성향을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합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과 기대를 스스로 실행함으로써 그 예언을 성취시키는 경향입니다.

[출처: 햇볕 같은 이야기, 김필곤, 기대의 힘]

   

그런데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나에게 바라는 것을 충족시켜 주려는 마음이 들까요? 아닙니다.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의 기대만이 상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개들을 봅시다. 개들이 누구나에게 그렇게 친절합니까, 아니면 밥을 주는 주인에게만 잘 보이려고 꼬리를 흔듭니까? 자신에게 음식을 주는 주인에게 고맙기 때문에 주인에게 잘 하려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음식을 해 주는 어머니나 아버지, 혹은 자신을 사랑해주는 가족들의 기대를 저버리려 하지 않을 뿐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도 우리에게 당신 뜻과 함께 당신의 살과 피를 음식으로 내어주시며 다가오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사랑을 받고 그분의 뜻을 따르게 되어 그분을 닮아가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도 그리스도를 보게 됩니다. 이런 면에서 성체성사를 간직하고 있는 가톨릭 신자들이 그만큼 그리스도의 삶과 가깝게 변화되어 있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객관적인 자료로도 우리에게 제공되고 있습니다.

평화신문 2012. 10. 28일자 1188호에 가톨릭 신자들 나눔 활동 으뜸!’이라는 제목으로 기분 좋은 기사가 실렸었습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종교인·비종교인을 통틀어 기부와 자원봉사 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아름다운재단(이사장 예종석)17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한 제12회 국제 기부문화 심포지엄에서 강철희(연세대 사회복지대학원) 교수는 '누가 이웃을 돌보는가?' 발표를 통해 천주교 신자들의 기부 참여율은 68%(2011), 개신교(61%)불교(60%) 신자보다 높다고 밝혔다. 강 교수에 따르면, 1인당 기부금액 또한 천주교 신자는 371100원으로, 개신교(213400)와 불교(106000)에 비해 월등히 많았다. 또 천주교 신자의 자원봉사 참여율은 49%, 기독교(34%)·불교(27%) 신자보다 높았다. 자원봉사 시간 역시 천주교 신자들은 36.5시간으로, 타 종교 신자들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객관적 현실이 이런데도 사회 사람들은 천주교보다 개신교가 더 많은 자선과 봉사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2013년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하 기윤실)이 시민들을 대상으로 한국 교회의 사회적 신뢰도 여론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 교회의 사회 봉사활동이 전체 종교기관 중 1위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인다고 하여 현실도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이 개신교가 한 조사에서도 개신교인들을 빼놓고 비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신뢰하는 종교는 로마 가톨릭(47.0%), 불교(38.0%) 순이었고, 개신교는 12.5%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호락호락하지 않고 날카로운 눈초리로 종교들을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사실 종교를 판단하는 기준은 그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삶 속 어디서나 우리는 가톨릭 신자라는 이름을 걸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타 종파에서 아무리 선교를 위해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결코 이길 수 없는 선교의 방법은 바로 우리들의 참 그리스도를 믿는 삶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우리가 믿고 바라고 사랑하는 분이 어떤 분임을 추측합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삶을 보고 우리가 믿는 하느님을 마음속으로 그려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녀들을 보고 그 보이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과 같습니다. 이 기본적 삶이 바탕이 되지 않고서 하는 모든 선교는 단기적인 성과를 낸다고 하더라도 거시적이고 장기적으로는 신자 수가 줄어듦을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증거하는 가장 완전한 방식이 그분의 가르침과 우리에게 기대하시는 대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사실 동방박사들이 보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던 바로 그 별이 지금도 떠 있는데 그 별이 바로 우리들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더 밝은 별이 되기 위해 우리가 더 해야 하는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바로 그리스도를 더 먹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먹으면 그 먹는 것이 바로 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해 주는 밥을 먹으면 어머니의 기대대로 살게 되어 어머니를 내 안에 품게 되는 것처럼, 우리 또한 말씀과 성체를 통해 그만큼 그 분을 더 먹으면 그분이 우리 삶을 통해 나타나시게 되는 것입니다. 각자가 먹는 것이 각자를 만들어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말씀과 성체를 통해 먹고 자신도 모르게 그분의 기대대라 살며 세상의 빛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장미란 선수가 역도를 들어 올리며 금메달을 확정짓는 순간 우리 모두는 울컥하는 감동을 느꼈습니다. 그 짧은 시간이지만 우리는 얼마나 오랜 시간 장미란 선수가 고생을 했는지를 봅니다. 김연아 선수도 그렇고 모든 위대한 일을 이루어놓은 사람들이 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순간이 짧을 수 있지만 사람들은 그 짧은 순간에도 우리를 만들어 주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여주는 동방의 별이라는 사실을 잊지말고 그 빛을 잃지 않도록 끊임없이 해를 품은 달처럼 그리스도를 먹고 품을 수 있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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