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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4 주일/ 구원의 별빛을 찾아가는 영혼의 갈증/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3 조회수931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대축일 마태 2,1-12(15.1.4)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마태 2,10)

 

  

The Visit of the Magi

 

 

구원의 별빛을 찾아가는 영혼의 갈증 

 

주님 공현 축일은 하느님의 신비가 온 세상 모든 백성에게 알려진 것을 확인하고 기념하는 날이며, 동시에 그리스도 강생의 신비를 보다 깊이 묵상하고 그 신앙을 장엄하게 고백하는 날이다. 박사들은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2,2) 베들레헴 작은 고을에 나신 유다인의 왕을 찾아 멀고도 험한 길을 걸었다. 그들은 우리의 인생길과도 같은 베들레헴을 향한 여정에서 ‘별을 쳐다보면서’ 빛으로 오신 주님을 찾아 나섰고, 그 별에 담긴 메시지를 알아보았다. 박사들은 사실 영혼의 갈증을 지니고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의 표상이다. 따라서 참으로 인간답고 행복하게 살고자 한다면 동방박사들로부터 그 지혜를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 목자들과 이방인들에게 먼저 드러내 보이시어 그들을 ‘구원의 잔치’에로 초대하셨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의 빛, 행복의 빛, 희망의 빛이 이 세상을 비추고 있다. 오늘 동방박사들이 따라갔던 별빛이 우리 모두에게도 비치고 있다. 이사야 예언자는 ‘일어나 비추어라!’(60,1) 하고 외친다. 세상의 빛으로 어둠을 비추는 햇살로 오신 주님을 맞아들이는 올바른 태도는 ‘세상의 빛’(마태 5,14)이 되어 사는 것이다. 우리네 삶을 환히 밝혀주는 변함없는 빛을 바라보며 우리 각자가 ‘세상의 빛’이 됨으로써 공현이 되어야 한다. 빛으로 사는 길을 오늘 복음은 말해 준다.


동방 박사들은 ‘별을 쳐다보고’ 거기서 하느님의 뜻을 읽었으며, 별의 인도에 자신들을 맡겼다. 우리는 멈추어 생각할 틈도 없이 너무도 바삐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우리는 하느님의 뜻과 그분의 인도하심에 자신을 맡기기보다는 자기 이익을 추구할 때가 많다. 늘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세상의 일들, 그리고 세상 재물에 속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어리석게 거기에 매달리곤 한다. 그러나 동방 박사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가치를 볼 줄 알았다. 그들은 자신들의 눈을 맹목적으로 믿지 않았으며 자신들이 본 것을 전부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중심을 잡을 줄 알았고, 그래서 그들은 하늘을 보며 걸으면서도 넘어지지 않았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인생길이다.


동방박사들은 보이지 않는 ‘메시아의 탄생’에 희망을 두고 ‘멀고도 험한’ 길을 걸었다. 그들은 중요한 것을 위해 모두를 버리고 멀고도 험한 길을 걸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삶의 모든 여정을 하느님의 손길에 맡길 줄 알았고, 하느님께로부터 삶의 희망과 어둠을 통과할 수 있는 빛이 옴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사들은 멀리에서 와서 구세주께 경배를 드렸다. 우리의 삶의 태도는 어떤가? 상황과 기분에 따라 변덕을 부리지는 않는가? 예수님 없이 나의 삶은 의미가 없고, 그분을 떠나서는 죽음과 죄와 어둠 밖에는 없음을 깊이 깨닫도록 하자. 기도와 성사, 성경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평범한 일상사를 통하여 ‘아주 가까이에서’ 빛을 비추어주시는 주님을 바라보자.


동방박사들은 말구유에서 구세주와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며 “땅에 엎드려”(2,11) 주먹만 한 아기에게 왕권을 상징하는 황금과, 그분의 신성(神性)에 대한 경배의 표시인 유향, 그분의 죽음에 대한 고백인 몰약을 선물로 바치며 경배드렸다(2,11). 아기 예수에게는 그 어떠한 화려함이나 권위도 없었으며, 작은 몸짓과 거룩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유다가 거부하고 오히려 이방인들이 받아들인 마구간의 탄생, 이것이야말로 십자가의 역설적인 진리이다. 어리석은 자에게 드러내 보이신 이 사랑의 역설을 동방박사들은 알아차렸고, 크게 실망했지만 실망 속의 더 큰 희망을 체험했다. 또한 겸손했기에 놀라운 강생의 신비를 알아차리고 경배를 드릴 수 있었다.


우리는 작은 것의 소중함을 알아차리는가? 미소한 사건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과 섭리를 알아보는가? 실낱같은 희망의 표지를 보며, 절망과 어둠의 순간에도 하느님께 찬미를 드리는가? 동방박사들은 아기에게 경배드린 다음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2,12) 그들은 헤로데의 악의 앞에서도 ‘하느님 뜻에 순종함으로써’ 아기 예수를 찬미하였다. 그렇다. 하느님께 드리는 찬미는 유창한 언변이나 아름다운 선율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행동의 찬미가 빠진 신앙생활은 얼어붙은 수도꼭지요, 구멍 난 냄비와 같다.


유다 하늘의 별빛은 오늘 나의 삶이 되어 세상을 비추어야 한다. 우리들 가운데에는 별빛을 외면하는 이도 있고, 별빛을 보고도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으며, 그 의미를 알고서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별빛을 보고 그 의미를 깨달아 스스로가 빛이 되려고 하는 이들도 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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