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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뇌물이 아니라 예물을 바쳐라 / 반영억라파엘 감곡매괴성모성당 신부님
작성자김세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4 조회수1,075 추천수18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대축일





<우리는 동방에서 임금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 마태오 2,1-12





뇌물이 아니라 예물을 바쳐라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님은 사랑이시고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이 세상에 오셨지만 주님을 알아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세상에 구원자 예수님께서 오셨지만 동방의 박사들이 경배하기 전까지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바로 동방의 박사들을 통하여 주님의 탄생이 공적으로 드러났음을 기념합니다. 이 시간 동방의 박사들이 예수님께 경배 드리고 예물을 바쳤듯이 우리에게도 주님을 알아 뵙고 진정한 예물을 바쳐드릴 수 있는 마음을 불러 일으켜 주시길 기도합니다.

 



우리를 죄악으로부터 구원해주실 구세주가 오셨다는 것은 큰 기쁨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그분의 탄생을 두려워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누리고 있는 자기의 기득권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움켜쥔 것을 놓으면 자유를 얻을 것인데 움켜쥐고 있기 때문에 잃어버립니다. 먼저 주면 잃을 것이 없는데 주지 않으려 하니까 결국은 누가 빼앗지 않아도 빼앗긴 기분입니다. ‘기쁨을 나누면 시기질투가 되고, 슬픔을 나누면 약점이 된다’는 말이 그냥 나온 거시 아닙니다.

 



복음을 보면 동방의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하 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들은 헤로데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습니다. 왜 놀랐을까요? 헤로데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임금인데 감히 어디에 다른 임금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하는 놀라움입니다. 또한 백성들이 놀란 것은 저 소리를 들은 헤로데가 어찌 나올까? 불똥이 튀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헤로데는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시간을 정확히 알아내고서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 하고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진심이 아니었습니다. 속셈은 따로 있었습니다. 자기 말고 다른 왕이 나온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2살 이내의 남자 아기를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이 큰 죄악을 가져온 것입니다.

 



사실 헤로데는 로마를 위한 전쟁에 큰 공을 세워서 기원전 47년에 총독으로 임명되었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에 대성전도 짓고 세금정책도 잘 세워서 백성을 위했습니다. 자기 개인 사치품을 팔아서 백성의 식량도 사들이고 하던 선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왕권을 빼앗길까 두려워하면서부터 의심증이 생기고 의처증이 생겼습니다. 결국 말년에 가서 폭군으로 둔갑하였습니다. 그래서 부인 미리암도 죽이고, 장모 알렉산드라도, 장남 안티파테르도 다 죽였습니다. 장남의 두 아들도 그리고 10명의 부인에게서 난 아들들 중에도 왕권을 탐낸다 싶으면 다 죽이고 말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세속적인 욕심이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오는가를 확인 할 수 있습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충분한데도 근심합니다.”

 



야고보서에 보면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가져옵니다.(야고1,15) 욕심을 내다가 얻지 못하면 살인을 하고 남을 시기 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면 싸우고 분쟁을 일으킵니다(야고4,2).라고 말합니다. 결국 욕심을 부리면 끝이 좋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욕심을 부리지 마십시오. 욕심은 그나마 지금처지의 행복마저도 거두어 갑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버림으로써 풍성함과 자유로움을 누리게 됩니다.

 



술에 만취한 베드로가 한참 비틀비틀 걷다가 전봇대 앞에서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더니 전봇대를 잡고 서너 바퀴 빙빙 맴을 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는 전봇대에 기대어 땅바닥에 풀썩 주저 앉았습니다. 그리고는 중얼거렸습니다. 큰일 났군, 사방이 완전히 막혀 버렸어!

 


살다 보면 사방이 완전히 막혀 버린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길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가 착각하고 있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내 욕심이 그 길을 가려서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헤로데는 천년만년 권력을 잡을 줄 알고 욕심을 부렸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없습니다. 그는 죽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내 것을 움켜잡지 말고 하느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행복의 길입니다.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동방의 이방인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멀리서 귀한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왔습니다. 온갖 어려움을 겪으면서 삶의 자리를 옮겼습니다. 하느님을 발견하면, 삶의 태도를 바꿔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까지 목적달성을 위해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을 인도한 것이 무엇입니까? 예, 별입니다. 그러나 깊이 보면 별이 아닙니다. 그들의 믿음입니다. 구세주를 기다리는 간절한 믿음이 별을 찾아냈습니다. 오늘 복음을 보면 박사들이 그분의 별을 보고 라고 표현합니다. 별이 믿음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믿음이 그분의 별을 볼 수 있게 한 것입 니다. 대사제들이나 율법학자들도 메시아의 탄생에 대해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유다인들은 주님을 주님으로 알아보지 못하였습니다. 정말 등잔 밑이 어두웠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알고 있는 지식이 머리에 머물렀지 믿음으로 승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동방의 박사들(6세기경부터 카스팔, 발타살, 멜키올이라고 불렀습니다)은 믿음이 있었기에 먼 길을 마다 않고 주님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혹 예물과 뇌물의 차이점을 아십니까? 내가 바치면 예물이고, 남이 바치면 뇌물이랍니다. 감사해서 그저 고마워서 바치면 예물이고, 조건이 붙으면 뇌물입니다. 주님, 이것을 해 주시면 제가 이것을 꼭 하겠습니다. 이것은 뇌물이지요. 우리가 봉헌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 입니다. 예물을 봉헌해야지 뇌물을 바쳐서는 안 되겠습니다. 먼저 감사하면 나머지는 주님께서 풍성히 채워주십니다.

 



어찌 되었든 동방 박사들은 예물을 준비하였습니다. 그들이 준비한 첫 번째 예물은 황금입니다. 황금은 가장 귀한 것이었습니다. 왕권을 말합니다. 당신을 왕으로 모셔 순종하고 살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당신은 주인이시고 저는 종입니다.’

 


두번째의 예물은 유향입니다. 제사장의 권한, 다시 말하면 그분의 신분이 신적 사제인 왕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이십니다.’ 신성을 말합니다.


 

그리고 몰약은 썩지 않게 하는 방부제를 말합니다. 왕이 죽음을 감당하는 인성을 지니신 분으로 오셨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동시에 썩지 않게 하는 것이기에 불사불멸을 상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위한 사랑 때문에 인간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려고 오셨습니다. 미사 때 사제가 봉헌예물을 준비하면서 포도주에 물을 섞으면서 기도합니다. “이 물과 술이 하나 되듯이 인성을 취하신 그리스도의 신성에 저희도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말미암아 영원히 썩지 않는 새 생명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구세주로 오신 주님께 어떤 예물을 드려야 할까?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가장 귀한 선물은 믿음의 사람이 된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는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는 삶으로 황금을 예물로 드려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거룩함을 유지하는 자기성화의 모습으로 유향을, 또한 불사불멸에 대한, 다시 말하면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의 삶을 몰약의 예물로 바쳐드려야 하겠습니다.

 


그 구체적인 실천 방안 중에 하나는 선교입니다.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가졌다면 예비자 인도를 통해 그 믿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의 빛을 받았지만 많은 사람은 아직 그렇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들에게 주님을 증언할 의무가 있습니다. 영생에로 인도된 기쁨은 혼자 누리지 말고 이웃에게도 전해야 합니다. 전교는 우리의 소명이고 그래야 믿음이 성장하고 기쁨도 커집니다. 그러므로 예비자를 인도하시고 인도된 사람이 꼭 영세 받을 수 있도록 정성을 기울여 열매 맺는 기쁨을 차지하기를 바랍니다.

 


한 사람이 한명을 세례를 받을 수 있도록 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잠시 앞으로 예비자로 인도할 한 사람을 기억하실까요? 내가 기억하는 사람이 세례를 받게 위해서는 우리가 이 지역사회에서 더 거룩하고 모범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말은 앞서는데 행동이 뒤따르지 않으면 우리 자신이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마태5,16)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고 빛나게 하는 가운데 아버지 하느님을 만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늘 각자가 지향하고 봉헌하는 예비자를 기꺼이 받아주시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동방의 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한 후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한 왕의 부탁보다도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더 중요하게 받아드려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습니다. 여기서 다른 길로 돌아갔다 사실이 중요합니다. 그들은 내 길이 아니라 하느님의 길을 선택하였습니다. 내 계획, 뜻을 내려놓고 하느님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들은 믿음의 사람, 하느님의 사람입니다. 더 이상 과거에 매인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다가오는 인간적인 요구보다도 천상 것을 우선시하고 하느님의 뜻을 더 중요시하는 삶의 방향전환이 꼭 필요합니다. 일상 안에서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다가오는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하느님의 손길을 꼭 잡으시길 기원합니다. 사람에게 매이거나 세상 것에 묶여 천상을 놓치는 일은 결코 없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여러분 위에 주님께서 떠오르시고, 그분의 영광이 여러분 위에 나타나기 바랍니다(이사60,2). 사랑합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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