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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5 월/ 주님의 영(靈)과 육(肉)의 영/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4 조회수1,023 추천수4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후 월 마태 4,12-17.23-25(15.1.5)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보십시오.”(1요한 4,1)

 

 

  

The Beginning of the Galilean Ministry

 

 

주님의 영(靈)과 육(肉)의 영 

 

요한은 자신의 첫째 편지에서 하느님은 빛이라고 선포하고 있다(1요한 1,5). 빛이신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그런 하느님을 거절하는 사람들을 선명하게 갈라놓는다. 하느님의 빛이 내리는 심판은 너무나도 근본적인 것으로서 그 심판 앞에서 각 개인과 단체와 사회 및 국가는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빛의 자녀답게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서로 사랑하며”(1요한 1,23)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빛’이란 ‘어둠’과 대등한 실재가 아니며, 단순히 ‘어둠’의 반대도 아니다. 곧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악행을 저지르지 않고 남에게 해코지만 않고 살면 그만인 그런 소아적(小雅的)인 삶이 아니다. ‘빛’은 온누리, 온 존재를 향하고 있고 어디에나 있는 것이나 빛을 받는 사람이나 대상이 그것을 가려버리는 상태가 ‘어둠’이다. 이 ‘어둠’은 근원적으로 계명을 지키지 않아 하느님의 아들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지 않기 때문에 찾아드는 것이다.


계명을 지키고 그분 안에 머묾으로서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물게 되는 분(3,24)이 바로 ‘하느님의 영’이다. 우리 존재의 저 깊은 ‘영’이 있지만 아무 영이나 다 믿어서는 안 된다(4,1).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셨다고 고백하고, 그분을 믿는 영은 ‘하느님의 영’이다(4,2). “주님의 영은 육이 혹독한 단련과 모욕을 당하기를 원하며, 천한 것으로 여겨지고 멸시받고 수치당하기를 원한다. 그리고 겸손과 인내, 그리고 순수하고 단순하고 참된, 영의 평화를 얻도록 힘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항상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한 두려움과 신성한 지혜와 신성한 사랑을 얻기를 갈망한다.”(성 프란치스코, 비인준칙 17,14-16)


이와 반대로 예수님께서 육으로 오셨음을 고백하지도 믿지도 않는 영은 ‘그리스도의 적의 영’ 곧 악마이며(4,3) ‘사람을 속이는 영’(4,6)이다. ‘하느님의 영’은 하느님께 속한 우리 안에 이미 살아계신다. 그러나 하느님께 속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 적의 영’에 휘둘려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또 그들의 말을 듣는다(4,5). 그렇게 사는 이들은 이미 ‘빛’이 오셔서 가까이 계시고 늘 비추어주시지만 알아차리지 못한 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육의 영’에 갇혀 살아간다. “육의 영(靈)은 말마디만을 소유하기를 무척 원하고 애를 쓰지만, 실천을 하는 데에는 그렇지 않다. 그리고 영의 내적인 신앙심과 성덕(聖德)을 추구하지 않고 사람들에게 겉으로 드러나는 신앙심과 성덕을 원하고 열망한다.”(성 프란치스코, 비인준칙 17,11-12)


각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나는 그리스도의 강생을 인정하고 믿는가? 강생에 대한 믿음이 나의 삶에서 드러나고 있는가? 강생을 지금, 여기서 살아낸다는 것은 육신을 취하시어 오신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통하여 한없는 사랑과 영원한 생명을 보여주신 그 삶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나는 오늘도 무엇인가를 하고 누군가를 만나고 미래의 일을 계획하고 말씀 묵상과 봉사활동 등 많은 것을 생각하고 행하였다.


그러나 좀 더 깊은 내 마음 속을 들여다보자. 정녕 나는 어떤 영(靈)을 지니고 생각하고 행하였는가? 의식하면서 고의적으로 하느님께 대한 믿음을 거부하고 하느님 뜻을 거슬러 행동한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그러나 무엇인가를 행하였지만 그저 해왔기 때문에, 또는 교회에서 그렇게 하라고 하니까, 누군가가 그렇게 하면 좋을 것이라고 하니까 ‘생각 없이’ ‘하느님 앞에서 숙고하고 기도하지 않고’ 갈대처럼 움직인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나는 오늘도 ‘주님의 영’에 따라 제정신을 차려 생각하고 움직일 것인가, 아니면 기도 없이 무의식적인 습관에 따라서 ‘육의 영’에 따라 ‘정신없이’ 움직일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4,17) 하고 선포하기 시작하셨다. 회개란 ‘육의 영’에서 벗어나 ‘주님의 영’에 따라 살아가는 것임을 회상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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