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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6 화/ 기능인인가? 함께 존재하는 사람인가?/ 기경호(프란치스코)신부님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5 조회수747 추천수6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마르 6,34-44(15.1.6)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마르 6,37) 
 

 

The Miracle of the Loaves and the Fishes by Vasili Nesterenko

 

 

기능인인가? 함께 존재하는 사람인가? 

 

오늘 같은 능력지상주의, 자격증 시대, 끝없는 경쟁 시대에 사랑이나 평화를 말하고 희생과 나눔을 실천하라는 성경의 가르침은 거의 관심을 끌지 못하거나 선택사항으로 바뀌어버린 것은 아닐까? 오늘 제1독서는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라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사랑이신 하느님께 어떻게 응답해야 할까?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바로 이에 대한 답을 주신다. 먼저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6,34). ‘가엾은 마음이 드신 것’은 단순히 불쌍히 여긴 것 그 이상으로 ‘마음이 동하여 한 마음이 되어 아파하셨다’는 뜻이다. 라틴어로는 ‘콤파시오’(compassio’, con + passio)가 잘 말해주듯 ‘더불어 느낀다’, ‘한 마음으로 아픔을 느낀다’는 뜻이다. 예수님의 마음은 바로 군중들의 마음 깊이 들어가 그들과 한마음이 되셨다. 예수님께서는 허기진 군중들의 영혼의 갈증을 보셨다. 그리고는 예수님은 물질적인 것, 현실적인 것을 먼저 찾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의 메마른 영혼에 하느님의 말씀을 채워주신다.


저녁때가 되자 제자들이 예수께 와서 “여기는 외딴곳이고 시간도 이미 늦었습니다. 그러니 군중들을 돌려보내어 주변 촌락이나 마을로 가서 스스로 먹을 것을 사게 하시라”(6,35)고 말한다. 이렇게 제자들은 군중과 ‘함께 하는 사랑’이 아니라 ‘눈앞에 벌어진 사람의 갈증’을 사무적으로 처리하려 했고, 각자의 책임으로 떠넘기려 했다. 그들은 기능 위주의 해결, 성과(成果) 위주의 해결 방식을 선택하려 한 것이다. 이를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6,37) 하신다. 그렇다! 사랑은 나를 건네주는 것이지, ‘저기에 있는’ ‘어떤 좋은 것’을 입으로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사랑을 목말라 하는 이들 앞에서 ‘먼저 사랑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일’로 만들어 방관자가 되어서는 안 된다. ‘함께’ 철저히 남을 위하여 ‘움직이는’ 삶이 바로 신앙인의 삶이 아니겠는가?


제자들은 계속해서 물질주의적인 시각으로 “저희가 가서 빵을 이백 데나리온어치나 사다가 그들을 먹이라는 말씀입니까?”(6,37) 하고 물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지닌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져오라 분부하셨다. 여기서 빵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허리춤의 광주리에 넣고 다니다가 먹는 값싸고 거친 보리빵이고, 물고기는 거기에 반찬처럼 곁들여 먹던 말린 염어였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초라한 음식을 보고 ‘먼저’ 감사의 기도를 드리심으로써 ‘하느님과의 만남’이 중요함을 깨우쳐주신 다음, 육신에 필요한 음식을 나눠주신다. 이처럼 예수님의 시선과 제자들의 시선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


나의 삶을 성찰해 보자. 나는 하느님과의 만남보다는 일을 우선시하고 있지는 않는가? 성과위주, 능력위주, 속도위주의 삶을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하느님으로 인해 뜨거운 가슴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하느님과는 무관한 일처리,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의 눈길에서 벗어나 ‘그들의 일’로 무관심하게 지나치는 태도, 육적이고 외적이며 물질적인 시각에서 문제 해결을 하려는 태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는가? 혹시 그렇다면 나는 ‘현대가 만든 죽음의 함정’에 스스로를 내모는 것이리라!


이제 예수님처럼 ‘함께 하는 존재’, ‘철저히 남을 위해 사는 사람’으로 살아보자. 가난하고 비천한 이들 안에서 먼저 그들의 영혼의 갈증을 읽고, 일처리보다는 먼저 하느님과의 만남을 중요시하자. 이것이 신앙인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가. 이런 태도가 값싸고 거친 가난한 이들의 보리빵을 풍요로운 하느님의 선물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오늘 이 시간 하느님 앞에 나는 어디에 마음을 두고 살고 있는지 겸손되이 자신을 살펴보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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