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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내리사랑, 우리의 치사랑 -사랑은 아름다워라- 이수철 프란치스코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6 조회수1,578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김명준님의 사진.
김명준님의 사진.
김명준님의 사진.




2015.1.6. 주님 공현 후 화요일(뉴튼수도원 57일째), 1요한4,7-10 마르6,34-44


                                                                                          

하느님의 내리사랑, 우리의 치사랑

-사랑은 아름다워라-



10년 전 일이지만 지금도 생생히 기억합니다. 

2004년 로마에서의 3개월 코스의 

'수도자 양성 프로그램(Monastic Formator's Program)에 참석했을 때의 일입니다. 

전 세계에서 30명 이상의 베네딕도회, 시토회, 트라피스트회 남녀 수도자들이 참석했었고, 

그중 수도사제는 10명이었습니다.


"신부님, 영어 미사 하실 수 있겠습니까?“


제 발음을 심히 불안해 한, 

프로그램의 책임자 영국 베네딕도회 신부님의 우려 가득한 물음 이었습니다.


"할 수 있습니다. 하겠습니다.“


하여 제 차례 때마다 10회에 걸쳐 맹렬히 준비하여 영어미사와 더불어 

A4용지 한 장에 조각하듯 수없이 다듬어 정성껏 마련한 짧은 영어 강론을 했습니다. 


몇 수도자들의 극찬을 잊지 못합니다.


"Good idea(좋은 아이디어다)!"  

"Good message(좋은 메시지를 준다)!" 

"Simple!(단순하다)!“ 

"practical(실제적이다)! 

"Colorful(풍요롭다)!“


한 마디로 '아름답다'라는 평이었고, 이후 'Spiritual priest(영적사제)'란 말도 들었습니다. 

아마 최선을 다해 준비한, 하느님의 사랑을 담은 강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말은 통하지 않아도 진리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공감함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느님은 아름다움이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름다움으로 표현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드님을 세상에 보내시어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해주셨습니다.“(1요한4,9ㄴ).


요한 사도의 고백이 참 은혜롭고 아름답습니다. 

하느님의 내리사랑을 속속들이 깨달은 사랑의 사도 요한입니다. 


짧은 1독서 안에 '사랑'이란 단어가 무려 10회 나옵니다. 

하느님 사랑의 수원지에서 흘러내린 우리의 사랑임을 연상케 합니다. 

이 사랑의 근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하느님으로부터 시작된 사랑임을 깨닫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그분을 통하여' 입니다. 


그분 없이는 우리도 없습니다. 


그분 사랑을 통하여 살고 있음을 깨달을 때 자연발생적 응답이 바로 하느님께 대한 치사랑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자체가, 사랑한다는 자체가 바로 하느님 사랑의 증거입니다. 

우리 모두가 그분의 사랑 덩어리이자 하느님 사랑의 현존입니다. 


내리사랑은 있고 치사랑은 없다 하는데, 

이렇게 우리가 그분의 내릿사랑을 통하여 살고 있음을 깨달아 알 때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 치사랑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어 당신의 아드님을 우리 죄를 위한 속죄 제물로 보내 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의 최고의 징표이자 현존이 바로 예수님이자 성인성녀들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께 이르는 길은 이런 하느님의 내리사랑을 통해서입니다. 

하느님의 내리사랑을 깨달을수록 

하느님께 대한 열렬한 사랑이요 이웃에 대한 한없는 연민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의 빛나는 모범이 예수님이요 모든 성인성녀들입니다.


며칠 전의 신선한 체험을 잊지 못합니다. 

눈 내린 수도원의 풍광도 참 신비롭고 아름답습니다. 

수도원 묘지를 방문했을 때, 

하늘 향한 묘비명마다 흰눈으로 곱게 덮여 누가 누구인지 알수가 없었습니다. 

흰눈이 묘비명의 이름과 생몰연대를 덮어 가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걱정할 것 없다. 세상은 몰라줘도 나는 너를 안다.‘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 같았습니다. 

마치 묘비명을 덮고 있는 흰 눈이 

하느님의 은총을, 겸손한 사랑을 상징하는 듯 참 신비로워 보였습니다. 


드러날 때 보다 이렇게 가리워져 있음이 깊은 울림을 줍니다. 

세상엔 가리워져 있어도 하느님만은 아시는 사랑의 성인들처럼 느껴졌습니다. 

세상에 가리워지는 겸손도 새삼 은총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이런 하느님의 내릿사랑을 깊이 깨달았기에 

평생을 드러나지 않는 숨겨진 삶에 행복해 했던 마리너스 수사님이었습니다. 


수사님은 자신의 변신에 대하여 질문을 받을 때면 

트라피스트회의 라파엘 시몬 신부님의 글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간결한 말로 

응답하기를 좋아했다 합니다(공지영의 수도원 기행2.80-81쪽).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가장 위대한 로맨스다.‘

'하느님을 추구하는 것이 가장 위대한 모험이다.‘

'하느님을 만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성취이다.‘


모든 맺힌 실타래 같은 의문들을 완전히 풀어주는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의 내릿사랑을 깨달아 갈수록 걱정, 근심, 두려움, 불안도 점차 사라지고 '사랑의 빛'속에 삽니다. 

도대체 하느님만으로 부요하고 행복하니 저절로 선호하는 숨겨진 삶입니다. 

역설적으로 숨겨질수록 드러나는 삶입니다.


요즘 읽는 전임 교황님이신 베네딕도 16세의 저서(Holy men and women of the middle ages and beyond)를 통해서도 

그분의 놀라운 하느님 사랑을 깨닫습니다. 


재임중 매주 수요일 마다 중세기의 성인들 35분에 대해 강의한 내용인데 

그 사랑과 지혜, 학식의 깊이가 그대로 교황님의 깊이를 반영하는 듯 했습니다. 


성 프란치스코에 대한 강의 중 한 대목을 인용합니다.


-프랑스의 한 작가는 

'세상에서 유일한 하나의 슬픔이 있으니, 

그것은 성인이 되지 못했다는 것, 즉 하느님께 가까이 있지 못했다는 것이다' 라고 썼다. 

성 프란치스코의 증거를 보건데 바로 이것이 참 행복의 비밀임을 이해하게 된다; 

'하느님께 가까이 있는 성인이 되는 것!(to become saints, close to God!)-


우리 인생에서 유일한 단 하나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내릿사랑을 깨달아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할수록 성인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통하여 살게 되었습니다.'라는 성 요한의 고백이 

오늘 복음에서 그대로 실증되고 있습니다. 

굶주린 백성들이 예수님의 사랑의 기적을 통해서 모두 배불리 먹고 살아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찬미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시며,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도록 하셨다.‘


하느님의 내릿사랑과 예수님의 치사랑이 하나로 만나는 순간 발생한 오병이어의 기적입니다. 

바로 우리가 봉헌하는 이 거룩한 성체성사의 표징입니다. 


오늘 복음과 똑같은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를 통해 

당신 말씀과 성체의 사랑으로 우리를 살려 주시고 성덕을 더해 주시어 

우리 모두 아름다운 성인이 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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