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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학습의 비밀, 메타인지와 하브루타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6 조회수1,133 추천수12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4년 나해 주님 공현 후 수요일


< 사랑엔 두려움이 없습니다
 >


독서: 요한1서 4,11-18






동방 박사들의 방문


안젤리코(Fra Angelico) 작, (1432-1434),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 학습의 비밀, 메타인지와 하브루타 >


 

저는 강론을 하면서 끊임없이 신자들에게 질문을 합니다. 물론 대부분의 신자들이 틀린 대답을 말하도록 일부러 유도합니다. 그러면 처음엔 잘 대답하다가도 나중에 자꾸 틀리니까 스트레스를 받아서 아예 입을 닫아버립니다. 그러면 다시 모두가 쉽게 대답할 수 있는 질문들로 용기를 북돋아줍니다. 그런 다음 또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함정이 섞인 질문들을 합니다. 이렇게 강의를 들으면 물론 틀린다는 스트레스를 받기는 하지만 그냥 반복해서 듣는 것보다 두 배 가까운 학습효과를 보게 됩니다.

 

요즘 학습능력을 평가하는데 절대적으로 사용되는 기준은 더 이상 I.Q.가 아닙니다. 만약 아이큐가 학습능력을 결정한다면 세계 3위의 아이큐를 자랑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한 해에 한두 명은 노벨상을 타야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보다 아이큐가 떨어지는 유태인들이 노벨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메타인지를 잘 이용하는 법을 조상들로부터 전수받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고등학교 때 전교 1등 하는 친구를 좀 살펴본 적이 있는데, 그 아이 책상이 항상 지우개 똥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무언가를 들으면 그것을 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그는 스스로 자신이 필기했던 것들을 지우고 자기의 언어로 다시 표현하여 새롭게 필기를 합니다. 자기의 것을 표현할 때 비로소 객관적으로 보게 됩니다. 글을 쓰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자신의 생각을 글로 쓰면 형편없는 것을 스스로 보고 느끼게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착각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운 것입니다. 그냥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 좋다는 착각 속에 사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스트레스 받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을 사람으로 만드는 가장 큰 힘은 사람은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3자가 되어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을 메타인지라고 합니다. 동물은 자신들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지만,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볼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이 메타인지 능력이 학업성적을 좌우하는 것입니다. 전교 1등 하는 아이들은 반드시 필기한 것을 지우개로 지우고 자신의 언어로 시험을 치듯이 다시 기억해 내어 재필기하는 자기를 시험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그래야 모르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알게 되고 그것을 더 확실히 알기 위해 무엇을 더 공부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EBS 특별기획 왜 우리는 대학에 가는가라는 프로그램 제5말문을 터라에서 실험을 해 보았습니다. 8명의 대학생들을 칸막이가 쳐 진 도서관에서 역사공부를 3시간 동안 하고 시험을 쳐 보도록 하였습니다. 또 다른 8명의 학생은 칸막이가 없는 교실에서 같은 내용을 이야기를 하며 공부하고 같은 시험을 치게 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당연히 이야기를 하며 공부를 한 아이들이 시험 성적이 좋았습니다. 조용한 공부방에서 공부한 학생들의 평균은 48, 서로 말을 하면서 공부한 학생들은 76점을 받았습니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차이를 보인 것입니다. 자신이 아는 것을 표현할 때 더 명확해지는 것입니다. 메타인지의 힘인 것입니다. 소크라테스가 말하려고 했던 것도 결국엔 그것일 것입니다.

네가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아라.”

이것을 위해서 소크라테스는 상대가 모르겠다는 말을 할 때까지 끊임없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런 메타인지 능력을 키우는 교육을 받아온 민족이 유태인들입니다. 유태인이 세계 인구의 0.2%밖에 되지 않지만 역대 노벨상 수상자 중 22%가 유태인이고 2013년에는 12명 중 6, 50%가 유태인이었습니다.

그들에게는 독특한 공부방법이 있습니다. ‘하브루타라고 합니다. 탈무드에 나오는 말인데, 공부할 때 항상 파트너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도서관은 그래서 시끄러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토론식으로 공부를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교실도 마찬가지고 예배를 보는 회당도 결코 정숙하지만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여기저기서 불만의 소리를 할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그런 문화 때문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에 두려움이 없습니다.

 

무언가 질문을 할 때 대답을 하지 않는 경우는 마치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는 자신의 몸을 가리는 행위와 같습니다. 높이 있는 사람이 남들이 자신의 부족함을 알아 낮아지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자존심이고 교만입니다. 이것이 두려움을 만들고 그래서 우리 자신을 가리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틀리는 생각을 평생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누가 바로잡아 줄 수 있겠습니까? 자신 안에만 가두어 놓으면 어떻게 객관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알 수 있겠습니까? 말하고 표현하고 가르쳐야 비로소 그것이 객관화 되고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저도 이런 면에서 매일 이런 글을 쓰는 것을 저 자신을 위해서도 참으로 감사한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오늘 독서에서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두려움은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가지는 것입니다. 그 무언가를 잃을까봐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다면 다른 모든 것은 틀려도 좋습니다. 부끄럽지 않습니다. 쇼생크 탈출에서 빠져나갈 굴을 다 파 놓고 다른 죄수들에게 노래를 틀어주던 그 주인공처럼 더 이상 두려움이 있을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도 그렇게 틀려도 되고 꼴찌가 돼도 되고 그렇지만 자신의 의견을 자신 있게 표현하고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교육이 되어야만 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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