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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누가 성인인가? -사랑, 기도, 기적-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7 조회수1,58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1.7. 주님 공현 후 수요일(뉴튼수도원 58일째), 
1요한4,11-18 마르6,45-52

                                                                                                           
누가 성인인가?
-사랑, 기도, 기적-

말이든 글이든 긍정적일수록 좋습니다. 
생명과 빛, 희망을 줘야 합니다. 
제가 성경의 시편을 사랑하는 것도 이래서입니다. 
시편을 맛들이다 보니 세상 시들은 맛이 없어졌습니다. 

책들도 많지만 
성경이 제일이고 다음으로는 성인들의 전기입니다. 
생명과 빛, 희망으로 가득한 
긍정적이고 사실적이고 진정성 넘치는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신부님은 연세가 있으신데도 
산에서 갓 내려온 동자 스님같이 천진(天眞)한 모습입니다.“
(미주평화신문2014.12.21. 5면).

제 강의를 듣고 보리수 자매회의 일원인 백영희 자매님이 
쓴 칼럼 중 위 글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긍정적 칭찬의 힘은 놀랍습니다. 
긴 글중 이 한 구절만 생각납니다. 

성인들의 특징은 천진함에 있습니다. 
때로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하기 까지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본래의 천진함이요 
나이 들어도 이 천진함은 결코 잃어선 안됩니다. 

얼마전 제 강론을 애독하는 자매님이 웃으며 전화상 한 말도 
생각납니다.

"신부님 강론을 읽으면 뉴튼수도원 수사님들은 다 성인 같아요.“
"예, 사실 성인 수사님들입니다.“

잠시 덕담을 나누며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잘 들여다 보면 모두 천진한 성인같은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요즘 성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 사실은 
성인들의 천진함입니다. 
진정 위대한 신학자나 성인일수록 천진함도 함께 갑니다. 
바로 열렬한 주님 사랑이,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이 천진함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성녀 소화데레사의 임종어는 늘 읽어도 감동입니다.
"내 하느님, 내 당신을 사랑합니다(My God, I love you)!“

임종전 손에 십자가의 주님을 꼭 잡고 그윽히 바라보며 
고백한 성녀의 감동적 임종어입니다. 
성녀의 아름다운 평생 삶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고백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임종 얼마전 주님과 대화한 것을 
문틈으로 엿들은 수사님의 증언도 신선한 감동입니다.

-십자가의 주님께서 성인에게 다정히 묻습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설명해 왔다. 
내가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토마스가 주님께 드린 대답입니다.
"아, 주님! 당신만으로 족합니다(Nothing but yourself, Lord!)!“

오직 주님 당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입니다. 
짧은 말마디 안에 토마스의 전 삶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참 거룩한 욕심입니다. 

주님을 통째로 소유하는 것 하나만 원한다는 성인의 고백입니다. 
사실 이보다 큰 행복도 부자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평범한 내 고유의 모습인 성인입니다. 

거룩함은 세례성사의 은총에 가장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할 때 
성사의 은총이 우리를 부단히 성화(聖化)합니다. 
사실 인생 일대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 것 하나뿐이고 
이런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누가 성인입니까?

첫째, '사랑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요즘 미사 중 독서와 복음의 배치가 절묘합니다. 
독서의 주인공은 주님의 애제자, 사랑의 사도 요한이고 
복음의 주인공은 주님이자 스승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전수 받은 애제자 요한의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에도 '사랑'이 무려 12회 나옵니다. 
사랑 빼놓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우리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성인들은 모두 '사랑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할수록 하느님을 닮아 
사랑의 사람, 성인이 됩니다. 
저절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 냅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심판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감동적인 강론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 원하는 대로 하라. 
침묵한다면 사랑으로 침묵하고, 
말한다면 사랑으로 말하고, 
형제의 잘못을 교정하려면 사랑으로 교정하고, 
용서하려면 사랑으로 용서하라. 
네 안에 사랑이 뿌리 내리도록 하라. 
그 뿌리에서 선(善)은 자라난다.“

새삼 사랑뿐이 답이, 길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우선적 특징은 사랑입니다.

둘째, '기도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아니 사랑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비결은 사랑 하나뿐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소통은 생명이자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소통의 기도 없으면 영혼은 식물인간이 됩니다. 

말 그대로 '살기위해' 사랑이요 기도입니다. 
숨쉬듯 기도하며 하느님 사랑을 호흡해야 영혼이 삽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군중과 제자들을 떠나 보내신 다음 
불야불야 발 걸음을 재촉하여 
하느님을 만나 기도하러 산에 가시지 않습니까?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만나는 이런 외딴곳의 기도처, 
오아시스와 같은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야 삽니다. 
그래야 
샘솟는 사랑, 초연한 사랑의 건강한 영혼으로 살 수 있습니다.

셋째, '기적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기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마술 같은 괴이한 기적이 아니라 
사랑의 기적, 기도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기적의 모범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그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과 기도에 응답하여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바로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도대체 성체성사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랑의 기적 후에 하느님 안에 쉬시면서 충전시킨 후 
맞바람으로 인해 호수 한 가운데에서 곤궁 중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사랑의 기적을 베푸시어 이들을 살려내십니다. 

기적과 기적 사이에 
사랑의 기도가 자리 잡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습니다. 

이런 비상한 사랑의 기적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온통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삶은 기적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노래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사랑의 기도를 통해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성인이 되십시오. 이보다 고결하고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성인이 되는 원리는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1.사랑의 사람이 되십시오. 
2.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3.기적의 사람이 되십시오.
바로 성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여 성인이 되게 하십니다. 

아멘.





2015.1.7. 주님 공현 후 수요일(뉴튼수도원 58일째), 1요한4,11-18 마르6,45-52


                                                                                                           

누가 성인인가?

-사랑, 기도, 기적-


말이든 글이든 긍정적일수록 좋습니다. 

생명과 빛, 희망을 줘야 합니다. 


제가 성경의 시편을 사랑하는 것도 이래서입니다. 

시편을 맛들이다 보니 세상 시들은 맛이 없어졌습니다. 


책들도 많지만 성경이 제일이고 다음으로는 성인들의 전기입니다. 

생명과 빛, 희망으로 가득한 긍정적이고 사실적이고 진정성 넘치는 글들이기 때문입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합니다.


"신부님은 연세가 있으신데도 산에서 갓 내려온 동자 스님같이 천진(天眞)한 모습입니다.“

(미주평화신문2014.12.21. 5면).


제 강의를 듣고 보리수 자매회의 일원인 백영희 자매님이 쓴 칼럼 중 위 글이 저를 행복하게 했습니다. 

긍정적 칭찬의 힘은 놀랍습니다. 

긴 글중 이 한 구절만 생각납니다. 


성인들의 특징은 천진함에 있습니다. 

때로는 천진난만(天眞爛漫)하기 까지 합니다. 

하느님이 주신 본래의 천진함이요 나이 들어도 이 천진함은 결코 잃어선 안됩니다. 


얼마전 제 강론을 애독하는 자매님이 웃으며 전화상 한 말도 생각납니다.

"신부님 강론을 읽으면 뉴튼수도원 수사님들은 다 성인 같아요.“

"예, 사실 성인 수사님들입니다.“


잠시 덕담을 나누며 유쾌하게 웃었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잘 들여다 보면 모두 천진한 성인같은 여기 수도자들입니다. 

요즘 성인들의 전기를 읽으며 새삼 깨닫는 사실은 성인들의 천진함입니다. 

진정 위대한 신학자나 성인일수록 천진함도 함께 갑니다. 

바로 열렬한 주님 사랑이, 성체성사에 대한 사랑이 천진함의 원천임을 깨닫습니다. 


성녀 소화데레사의 임종어는 늘 읽어도 감동입니다.

"내 하느님, 내 당신을 사랑합니다(My God, I love you)!“


임종전 손에 십자가의 주님을 꼭 잡고 그윽히 바라보며 고백한 성녀의 감동적 임종어입니다. 

성녀의 아름다운 평생 삶이 그대로 응축되어 있는 고백입니다.


성 토마스 아퀴나스가 임종 얼마전 주님과 대화한 것을 문틈으로 엿들은 수사님의 증언도 

신선한 감동입니다.


-십자가의 주님께서 성인에게 다정히 묻습니다.

"토마스야, 너는 나에 대해 참 잘 설명해 왔다. 내가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토마스가 주님께 드린 대답입니다.

"아, 주님! 당신만으로 족합니다(Nothing but yourself, Lord!)!“


오직 주님 당신 하나만으로 충분하다는 고백입니다. 

짧은 말마디 안에 토마스의 전 삶이 요약되어 있습니다. 


참 거룩한 욕심입니다. 


주님을 통째로 소유하는 것 하나만 원한다는 성인의 고백입니다. 

사실 이보다 큰 행복도 부자도 없습니다. 


우리 모두 성인이 되라 불림 받고 있습니다. 

비상한 성인이 아니라 평범한 내 고유의 모습인 성인입니다. 


거룩함은 세례성사의 은총에 가장 깊은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참으로 사랑할 때 성사의 은총이 우리를 부단히 성화(聖化)합니다. 

사실 인생 일대의 목적은 성인이 되는 것 하나뿐이고 이런 청정욕(淸淨慾)은 얼마든지 좋습니다. 


누가 성인입니까?


첫째, '사랑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요즘 미사 중 독서와 복음의 배치가 절묘합니다. 

독서의 주인공은 주님의 애제자, 사랑의 사도 요한이고 

복음의 주인공은 주님이자 스승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 스승에 그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그대로 전수 받은 애제자 요한의 사랑입니다. 


오늘 독서에도 '사랑'이 무려 12회 나옵니다. 

사랑 빼놓으면 정말 아무 것도 아닌 우리 인생임을 깨닫습니다. 

성인들은 모두 '사랑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할수록 하느님을 닮아 사랑의 사람, 성인이 됩니다. 

저절로 서로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 냅니다. 

이런 사랑이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심판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감동적인 강론이 생각납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 원하는 대로 하라. 

침묵한다면 사랑으로 침묵하고, 

말한다면 사랑으로 말하고, 

형제의 잘못을 교정하려면 사랑으로 교정하고, 

용서하려면 사랑으로 용서하라. 

네 안에 사랑이 뿌리 내리도록 하라. 그 뿌리에서 선(善)은 자라난다.“


새삼 사랑뿐이 답이, 길이 없음을 깨닫습니다. 

성인들의 한결같은 우선적 특징은 사랑입니다.


둘째, '기도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기도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사랑하면 저절로 기도하게 됩니다. 

아니 사랑은 기도입니다. 

기도는 테크닉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기도를 잘하는 비결은 사랑 하나뿐입니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소통입니다. 

소통은 생명이자 사랑입니다. 

하느님과 소통의 기도 없으면 영혼은 식물인간이 됩니다. 


말 그대로 '살기위해' 사랑이요 기도입니다. 

숨쉬듯 기도하며 하느님 사랑을 호흡해야 영혼이 삽니다. 


오늘 복음의 예수님을 보십시오.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5천명을 배불리 먹이신 군중과 제자들을 떠나 보내신 다음 

불야불야 발 걸음을 재촉하여 하느님을 만나 기도하러 산에 가시지 않습니까?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예수님처럼 우리도 하느님과 만나는 

이런 외딴곳의 기도처, 오아시스와 같은 장소와 시간을 마련해야 삽니다. 

그래야 샘솟는 사랑, 초연한 사랑의 건강한 영혼으로 살 수 있습니다.


셋째, '기적의 사람'이 성인입니다.


성인들은 한결같이 '기적의 사람들'이었습니다.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마술 같은 괴이한 기적이 아니라 사랑의 기적, 기도의 기적입니다. 


예수님이 바로 이런 기적의 모범입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그러합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과 기도에 응답하여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바로 매일의 성체성사를 통해 사랑의 기적을 일으키시어 우리를 살게 하십니다. 

도대체 성체성사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오병이어, 사랑의 기적 후에 하느님 안에 쉬시면서 충전시킨 후 

맞바람으로 인해 호수 한 가운데에서 곤궁 중인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사랑의 기적을 베푸시어 이들을 살려내십니다. 


기적과 기적 사이에 사랑의 기도가 자리 잡고 있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주님의 복음 말씀입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습니다. 


이런 비상한 사랑의 기적만이 기적이 아닙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왔고, 지금 살고 있는 것도 기적입니다. 


'사랑의 눈'만 열리면 온통 기적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삶은 기적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이런 깨달음에서 저절로 샘솟는 하느님 찬미와 감사의 노래입니다. 

하느님은 오늘도 여전히 우리의 사랑의 기도를 통해 기적을 행하고 계십니다.


성인이 되십시오. 이보다 고결하고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 

성인이 되는 원리는 아주 단순 명료합니다.


1.사랑의 사람이 되십시오. 

2.기도의 사람이 되십시오. 

3.기적의 사람이 되십시오.


바로 성인이 되는 지름길입니다. 


주님은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 은총으로 

우리 모두를 정화(淨化)하고 성화(聖化)하여 성인이 되게 하십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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