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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행복도 노력의 결과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7 조회수1,282 추천수14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주님 공현 후 목요일



< 그분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


복음: 1요한 4,19-54





세례자 요한


엘 그레코(Greco, El) 작, (1600), 샌프란치스코 파인아트 미술관


     < 행복도 노력의 결과 >

  

유투브 참 좋은 이야기빈대보다는 나아야지라는 제목으로 고 정주영 회장의 일화가 나와 있어 소개합니다.

정주영 회장이 젊을 때 인천에서 막노동을 하고 피곤한 몸으로 숙소에 들어가면 득실거리는 빈대 때문에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궁리 끝에 나무 평상 하나를 만들고 큰 대야에 물을 담아 평상 네 다리를 담갔습니다. 헤엄을 치지 못하는 빈대들이 대야의 물을 건널 수 없어서 그 다리를 타고 침상 위로는 못 올라올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그래서 며칠은 빈대의 공격 없이 편히 잘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부터는 다시 빈대의 공격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불을 켜고 밤새 빈대가 어떻게 침상 위로 올라올 수 있었나를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젊은 정주영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됩니다. 침상 다리로는 기어 올라갈 수 없는 것을 아는 빈대들이 이젠 바닥에서 벽을 타고 올라가 천장을 타고 침상 위까지 와서는 그 밑으로 뛰어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정주영 회장은 평상시에도 빈대보다는 나아야지라는 말을 중얼거렸다고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 오더라도 해결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해결방법이란 결국 무언가를 이루고 말겠다는 신념에서 나오는 노력의 결과인 것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향해 달려갑니까? 바로 우리의 행복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의 행복은 무엇에 의해 주어집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하면 행복하고 아무리 부자라도 집에 미움이 가득하면 지옥을 경험합니다. 그런데 사랑하고 싶다고 사랑을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독서에서처럼 사랑하려면 먼저 사랑을 받아야만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먼저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신 것이라 합니다. 그는 우리 스스로에게서는 사랑의 힘이 나올 수 없음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은 먼저 받아야만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았기에 그 감사로움으로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이 기뻐하시는 일인 이웃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아직 사랑도 받아보지 못한 사람에게 사랑을 강요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스스로 감사하여 사랑을 찾기 이전까지는 깨진 독에 물 붓기라는 생각이 들더라도 끊임없이 사랑을 부어주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그 사랑을 믿기만 한다면 그 사람도 이제 다른 사람에게도 사랑을 부어줄 수 있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믿음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해주셨음에도 믿지를 못한다면 그분의 사랑의 힘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이 주신 사랑보다는 다른 것을 더 가지기 원하기 때문입니다.

다이어트를 해서 얻는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덜 먹고 더 운동해야 합니다. 그것이 쉽습니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쉽게 얻어지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사랑하면 행복합니다. 그 행복을 위해서 사랑을 얻기 위해서도 우리가 얼마나 큰 노력을 해야겠습니까? 진정으로 행복하고 싶다면 그분의 사랑을 믿으십시오. 믿기 위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써야만 합니다. 그래야 그 믿음이 주는 행복의 열매를 얻습니다. 다이어트 하고 싶다고 하면서도 많이 먹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면 사실은 하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머리에 총을 대고 하라고 하면 안 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우리도 우리 모든 에너지를 투자할 수 있을 만큼 원치 않는다면 그분의 사랑을 믿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우리를 사랑해 주셨는데, 우리 또한 그분의 사랑을 완전히 느낄 수 없는 이유는 세상 다른 것을 더 원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에 믿음이 생기지 않는 것일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가 수천 번을 보았던 예수님께서 매맞으시는 그림이 그날 그 시간에는 자신을 위한 수난이었음을 느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세상 즐거움을 끊는 준비를 해 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준비되어야만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또한 밭에 묻힌 보물을 위해서는 가진 것을 다 팔아야 하는 희생이 필요합니다.

 

 

 

 

 

 

 

 

 

 

 


 






    요셉 신부님 홈페이지: http://www.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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