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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9 금/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복음 묵상/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8 조회수884 추천수6 반대(0) 신고

   

주님 공현 후 금 루카 5,12-16(15.1.9)


영원한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1요한 5,10) 
 

 

Jesus heals a leper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오늘 제1독서는 하느님께 대한 믿음만이 세상을 이길 수 있으며 영원한 생명을 가져다준다고 가르친다.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사랑’이라는 주제는 4장에서 그리고 특히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에 관한 주제와 결합될 때 절정에 이른다. 그러나 저자는 이 두 번째 주제에 대해 덧붙인다. 이런 맥락에서 무엇보다도 ‘세상을 이기는 신앙’이 강조되고 있다.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에 관하여 해주신 증언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이 당신 아드님에게 있다는 것이다.”(1요한 5,11)

 
닷, 홀던, 마샬, 슈트렉커 등은 ‘하느님의 증언’이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들을 합친 것이라고 본다. 요한은 하느님의 삶이요 종말론적 구원인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파견되어 나타나셨으며 우리가 ‘만질’ 수 있는 아들 안에 있다고 선포한다(5,11-12). 아드님을 모시고 있는 사람은 그 생명을 지니고 있기에(5,12)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은 영원한 생명의 원천이다.


오늘 복음에서 나병환자는 우리에게 하느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가는 길을 보여주고 있다. 성경에서는 나병뿐 아니라 온갖 종류의 피부병을 나병이라 한다. 나병은 불결하고 전염성이 강하다고 여겼으므로, 나환자들은 다른 이들과의 접촉을 피해야 하였다. 그들은 사람들이 다가오지 못하도록 “불결, 불결” 하고 소리를 질러야 했고, 예루살렘과 기타 성곽도시에는 들어가지도 못했고 다른 곳에서는 따로 살아야 했다. 나아가 종교의식이나 사회생활에 참여할 수도 없었다. 그야말로 나환자들은 '산 송장' 취급을 받았다. 율법교사들의 눈에 그들은 나병이라는 형태로 자기 몸에 죄를 짊어진 이들로 보였다. 그들이 만지는 것은 즉시 불결한 것이 되었다. 그들은 끊임없이 경계의 대상이었고 배척받는 죄인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한 나환자가 자신의 처참한 처지를 알고 인정하면서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5,12) 겸손하게 예수님께 깨끗하게 해주실 것을 간청한다. 치유 여부는 온전히 예수께 달려있음을 알고, 나병환자는 선입견이나 자기주장을 버리고 가장 낮은 자세로 자신을 그분의 뜻에 온전히 내맡겼다. 예수님께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시자 곧 그에게서 나병이 떠나갔다(5,13). 나병이 떠나감은 단순한 몸 안의 치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아픔과 고통과 영혼의 어둠 상태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음을 의미한다. 그토록 "쓴맛이었던 바로 그것이 도리어 몸과 마음의 단맛으로 변한 것"(성 프란치스코 유언 3)이다. 이는 하느님의 자비와 예수님께 대한 믿음의 결과였다. 한없이 낮추는 자세가 소통과 치유와 해방을 가져온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하리라!


참된 믿음이란 어떤 것일까? 참된 믿음을 지니려면 무엇보다도 신앙의 대상이 어떤 분이신지 분명히 알아야 하고 그분께 초점을 맞추고 집중해야 한다. 참 신앙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자세로" 믿는 분께 모든 것을 기꺼이 맡겨야 한다. 참 신앙에는 사랑의 동기 외에 다른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믿음은 순수해야 하고 진실해야 하며 항구해야 한다. 때와 장소에 따라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을 한다면 참 신앙이 아니다. 참 신앙을 지닌 사람은 겸손하며 차별을 없애려 오신 예수님의 마음을 받아들이며 삶으로써 실천한다.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동기로 율법을 어기면서까지 나환자를 해방시켜주셨다. 그분은 자신이 부정하게 되거나, 율법을 어겼다고 적대자들로부터 비난받는 것을 조금도 개의치 않으셨다. 그분께서 접촉이 금지된 나병환자에게 손을 대시는 것은 승리자의 위엄 있는 동작이다. 그분의 이런 행동으로 “버림받았던” 한 병자가 다시 생명을 회복하고 공동체에 되돌아 올 수 있게 된 것이다. 우리도 모두가 멀리하고 싫어하는 '좋지 않음'의 상황에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어야 하지 않을까?


'영원한 생명 안에 머무시는' 그분은 몸소 인간 조건 속으로 들어오시어 우리의 나약함과 어려움을 가엾게 여기시는 연민의 정을 드러내 보이시며 우리에게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주신다. 그분은 우리가 당신을 탁월한 치유자로 여기고 필요할 때만 당신께 낯을 돌리는 것을 원치 않고 당신 안에 머물길 바라신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는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이다(1요한 5,12). 우리 모두 사랑으로 오신 그분을 믿어 영원한 생명의 길, 해방의 길로 나아가자! 영원히 살기 위해 생명이신 그분께 있는 그대로의 나를 개방하고 내맡기도록 하자! 그 어떤 어려움 속에서도 영혼의 나병이 나에게서 떠나가게 해주시라고 기도드리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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