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례 탐구 생활 (57)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사제가 성찬의 빵을 성반이나 성작 위에 들어 신자들에게 보이며 그리스도의 잔치에 참여하도록 초대하면, 신자들은 사제와 함께 복음서에 나오는 말씀으로 자신을 낮추는 기도를 바칩니다.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 영혼이 곧 나으리이다. 이 전례문은 카파르나움에서 예수님께 자신의 종을 낫게 해 달라고 청한 어느 백인대장의 입에서 나온 겸손과 신뢰의 말에서 가져왔습니다. 마태오 복음 8장 8절의 문장을 한 단어 (‘제 하인’)만 바꿔(‘제 영혼’) 사용합니다. 다만 우리말 번역문에서는 단어 하나가 더 바뀝니다. 라틴어 원문은 성경의 표현대로 “제 지붕 아래로(sub tectum meum) 주님을 모시기에”라고 되어 있지만, 우리말 번역은 “제 안에”로 대신하였습니다. 아마 곧 성체를 받아 모실 교우들에게 더 적합한 표현이라고 판단한 것 같은데, 전례문과 성경 본문의 직접적인 연관성이 약해졌다는 아쉬움은 남습니다. 참고로, 미사 전례문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성경 원문에 깃들어 있는 의미의 색조가 조금 옅어진 경우가 하나 더 있습니다. 감사 기도 제2양식에서 사제가 예물 위에 두 손을 펴 얹으며 축성을 위해 성령을 청하는 부분이 있는데, 현재 우리말 전례문은 이렇습니다. “간구하오니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 여기서 “성령의 힘으로”에 해당하는 라틴어 원문은 “Spiritus tui rore”인데, “당신 성령의 이슬로”, 또는 “이슬 같은 당신 성령으로” 정도로 옮길 수 있겠습니다. 이 표현은 하느님의 능력을 이슬에 비유한 이사야서의 두 구절 “당신의 이슬은 빛의 이슬이기에 땅은 그림자들을 다시 살려 출산하리이다.”(26,19)와 “하늘아, 위에서 이슬을 내려라.”(45,8)와 관련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보내시는 성령이 ‘위에서 내려오고’ 또 ‘생명을 주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이슬’로 표현하고 전례문도 같은 표현을 이어받았는데, 우리말 전례문은 단순히 ‘힘’으로 번역하였습니다. 그러나 전례문을 번역할 때는 정확한 번역 말고도 고려할 사항이 많기에, 그 모든 요소들을 숙고하고 참작하여 지금의 번역문이 나온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건 그렇고, 다시 오늘의 주제로 돌아와서, 예수님께 이 말을 한 로마군 백인대장은 하느님 계약 밖에 있는 이방인이자 하느님 백성을 무력으로 지배하는 제국의 군인으로서, 자신이 예수님을 자기 집으로 모실 자격이 없는 사람임을 겸손하게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복음에 나오는 다른 많은 이들을 능가하는 커다란 믿음을 보여줍니다. 백인대장은 예수님께서 멀리 떨어져 계신 채 한마디 말씀만으로도 충분히 치유하실 수 있는 능력의 소유자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백성 가운데 그 누구에게서도 이런 믿음을 본 적이 없다고 하시며 감탄해 마지않으십니다. 이 백인대장처럼 우리도 주님의 몸을 내 안에, 즉내 영혼이 사는 집 안에 모실 자격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동시에 백인대장이 예수님께서 자기 종을 치유해 주실 수 있다고 믿었던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께서 우리를 치유해 주실 수 있다는 신뢰를 드러냅니다. 우리는 성찬례를 통해 그분을 가장 친밀한 손님으로 우리 영혼 안에 모시게 될 것입니다. 이 전례문으로 우리는 주님의 몸을 모실 마지막 준비를 마칩니다. [2021년 8월 1일 연중 제18주일 가톨릭제주 3면, 김경민 판크라시오 신부(서귀복자본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