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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과 우리의 기쁨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주님 공현 후 토요일(2015년 01월 10일)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0 조회수626 추천수6 반대(1)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제1독서

<우리가 무엇을 청하든지 그분께서 들어 주신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5,14-21

복음

<신랑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를 듣게 되면 크게 기뻐한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22-30

 

 

주님 공현 후 토요일(2015년 01월 10일) 하느님과 우리의 기쁨

 

주님 세례 축일 전날인 오늘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이 등장합니다. 요한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기쁨을 부각시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기회 있을 때마다 ‘기쁨’을 강조하실 정도로 기쁨은 우리 신앙 삶과 수도생활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하하 웃으며 떠드는 그런 피상적이고 지나가버리는 기쁨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요. 이것은 실망만을 안겨주는 거짓 기쁨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신부를 얻는 이는 신랑이오. 신랑의 벗이 곁에 있다가 신랑 목소리를 들으면 크게 기뻐하지요. 내 기쁨도 그렇게 벅차 있소”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를 명확히 깨달았습니다. 자기 자신을 ‘신랑의 벗’이라고 소개합니다. 혼인잔치의 주인공은 신랑입니다. 신부를 맞아들이는 신랑은 기쁨의 원천입니다. 신랑의 벗은 단지 신랑의 기쁨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요한은 “그분은 커져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하는 법이오”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작아지고 상대방은 커지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을까요? 우리네 속담처럼,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프고 또 못먹는 호박에다 말뚝도 박기까지 하는데 말입니다. 남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이 내가 땅을 사고 내가 그 호박을 먹어야 기쁘고 행복한 줄 압니다. 어떤 부모는 자식의 행복을 위해(자세히 살펴보면 부모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게 하려고 부정적 방법을 쓰기까지 합니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갑질’도 이기적인 행복의 추구 때문입니다. 이건 남의 얘기가 아닙니다. 솔직히 우리 안에도 이런 욕구가 꿈틀거립니다. 정말 이런 것에서 기쁨이 올까요? 세상이 말하는 성공에 골인해야 정말 기쁨이 절로 오는 걸까요?

 

어느 신부님이 강론글에서 “세례는 강물을 거슬러 사는 것이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의 사고방식이라는 강물을 거슬러 사는 사람이 바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이렇게 반대로 살아가는 것이 세례의 삶입니다. 유대인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성공은 하느님의 여러 이름들 중 하나가 아니다”고 단언했습니다. 세상이 주는 성공은 높아지는 것이고 잘 나가는 것이고 남들보다 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당신의 선구자였던 세례자 요한처럼 예수님한테도 이 땅에서는 성공은 없었습니다. 실패의 상징인 십자가만 있었을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십자가에서 철저히 실패하신 이분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내일 막을 내리는 성탄의 신비는 작아짐과 낮추임의 사건입니다. 작아지고 낮아질 때 참으로 성탄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이 작아지고 낮아짐에 따라 우리 인간은 커지고 높아졌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기쁨입니다. 우리도 작아지고 낮아짐에 따라 다른 사람이 커지고 높아집니다. 이것이 우리의 기쁨입니다. 베네딕도 성인은 규칙서 제7장에서 그리스도인의 기본 자세인 겸손에는 12단계가 있으며 이 단계를 다 오른 다음에야 하느님의 사랑에 이른다고 가르친다. “겸손의 이 모든 단계를 다 오른 다음에 수도승은 곧 하느님의 사랑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이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내며…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과 좋은 습관과 덕행에 대한 즐거움에서 하게 될 것이다”(7,67-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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