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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6 금/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복음 묵상/ 사랑을 회상하는 사랑의 도구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5 조회수859 추천수11 반대(0) 신고

  

연중 1주 금, 마르 2,1-12(15.1.16)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마르 2,11)
 

  

Jesus Healing of a Paralytic 

 

 

                   

 

 사랑을 회상하는 사랑의 도구  

 

마르코 복음을 보면 예수님의 갈릴래아 논쟁사화(2,1-3,6)와 다른 논쟁사화(11,27-12,37)들이 나온다. 예수님께서는 논쟁하시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언제 어디서나 반대를 받으신다. 갈릴래아에서는 바리사이들과 헤로데 당원들이 예수님을 죽일 음모를 꾸민다(마르 3,6).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메시아 사명을 죽음을 무릅쓰고 끝까지 수행하셨다. 그분은 그렇게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목숨을 거셨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다시 가파르나움의 시몬 베드로의 집에 계실 때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2,2). 아마도 모인 사람들은 저마다 예수님께 병의 치유, 구마(驅魔), 죄 사함, 민족의 해방, 현세 복락 등을 간절히 바랐을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을 영혼을 구원해주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가 아니라 현세적이며 정치적인 해결사로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에 아랑곳 하지 않으시고 먼저 그들에게 말씀을 전하신 다음 사람들이 데려온 중풍 병자를 치유해주시며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2,5)고 하고 말씀하셨다. 이를 본 율법학자들은 의아해하며 예수님께서 하느님을 모독한다고 생각하였다(2,6).


나의 일상을 돌아보자! 예수님께서는 죄의 용서에 앞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셨다. 그런데 우리는 세속적인 편의와 물질을 ‘먼저’ 추구하며 살아가지는 않는가? 또 율법학자들처럼 동료 인간에게 드러나는 하느님의 능력을 부인하고 시기하며 왜곡하지는 않는가? 모여든 사람들의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눈길과 오히려 자신들이 하느님을 모독하고 있음을 모르는 율법학자들의 태도는 엄청난 방향착오가 아닐 수 없다. ‘먼저’ 그분의 말씀을 경청하고, 사랑이신 그분과 일치한 다음에 그분이 주시는 해방과 자유와 행복을 살아나가야 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잠시 멈추어 내가 하고 있는 일과 내가 향하는 발걸음, 관계 맺는 만남들이 방향착각을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는 것은 어떤가?


중풍 병자는 자신의 힘으로는 한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한 채 지내왔다. 사람들은 '믿음을 가지고' 지붕을 벗겨 그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예수님께서 계신 집안으로 내려보냈다(1,4).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1,5) 중풍 병자를 치유해주셨다. 이렇게 해방과 구원의 기쁨은 주변 사람들의 믿음과 생명을 향한 열정과 도움에 의해서도 주어진다. 우리도 선의와 사랑을 모아 서로를 치유하고 중풍처럼 굳어진 편견과 고정관념, 악습을 버리도록 하자! 이것이 삶의 기적 아니겠는가!


여기서 예수님께서 중풍 병자를 치유해주시면서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라”(2,11) 하신 말씀에 주목해보자. 그분은 병만 고쳐주시면 될 것을 왜 더럽고 더는 필요없게 된 들것을 들고 가라고 하셨을까? 중풍 병자에게 들것은 아픔의 역사요 영혼의 어둠 덩어리이자 하느님을 갈망해온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하느님께 가는 길은 아픔과 어둠을 안고 있는 나 자신, 하느님을 갈망했던 과거를 내팽개치고 갈 수 있는 길이 결코 아니다. 하여 그것을 품고 그 안에 새겨진 주님의 은총과 사랑을 회상하며 하느님께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하셨다. 바로 그분이 오늘 “집으로 돌아가라”고 말씀하신다. 이는 왜곡된 신비주의나 뜬구름같은 관념 속에서가 아니라 바로 여기 ‘삶의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고 그분께 찬미 드리라는 뜻이리라!


오늘도 우리를 위한 사랑에 목숨 걸고, 죄를 용서해주시고 해방시켜주시는 주님의 그 큰 사랑을 회상하도록 하자! 삶의 자리에서 자신의 어둠과 상처를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주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뜻을 알아차리도록 하자! 회상을 삶으로 기념하기 위해 중풍 병자의 치유를 도왔던 사람들처럼 다른 이들을 위한 주님의 사랑의 도구가 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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