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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묵상] 무엇을 찾느냐?_중년의 시간 (2015.1.18)
작성자오승희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7 조회수910 추천수3 반대(0) 신고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35-42
그때에 35 요한이 자기 제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다가, 36 예수님께서 지나가시는 것을 눈여겨보며 말하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말하는 것을 듣고 예수님을 따라갔다. 38 예수님께서 돌아서시어 그들이 따라오는 것을 보시고, “무엇을 찾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라삐’는 번역하면 ‘스승님’이라는 말이다.
3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와서 보아라.” 하시니, 그들이 함께 가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을 보고 그날 그분과 함께 묵었다. 때는 오후 네 시쯤이었다.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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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시간

 

때는 네 시쯤이었습니다. "무엇을 찾느냐?" 그분이 물으십니다. 나이가 사십대라 그런가, 네 시쯤이라는 시간이 사무칩니다. 어린이가 아침 아홉 시를 살고 있다면 스무 살 청년은 열두 시 정오를 지나고 있겠지요. 사춘기 청소년들은 열 시나 열한 시쯤 될까요? 제 나이는 아직 해가 저물지는 않은 오후 네 시쯤이라고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 시간에 우리는 무엇을 찾고 있을까요? 아홉 시에 어린이가 찾는 것과 열두 시에 청년이 찾는 것은 분명히 다를 터인데, 지금 중년의 우리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밤이 오기 전에 그게 무엇인지 알게 될까요. 다음 날이 되기 전에 찾던 것을 얻게 될까요.

 

네 시를 사는 중년의 부모가 열한 시를 사는 청소년 자녀에게 보여줄 것은 이제 없는 듯합니다. 찾은 것이 있어야 가르쳐 줄 터인데, 무엇을 찾는지도 모르면서 알려 줄 것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심지어 인생사 쓴 맛조차 아이들은 자습이 가능합니다. 그저 우리는 우리대로 물어물어 가는 수밖에 없지요. "스승님,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 오라 하시든, 말라 하시든 우리는 따라가야 합니다. 잠시 한눈을 팔더라도 용서를 구하면서, 딴 생각을 하다가 길을 잃을지라도.

 

그런데 예수님의 대답은 "와서 보아라."입니다. 예수님께서 묵으시는 곳은 어떤 곳이었길래, 새로운 제자들은 그날 바로 그분과 함께 묵을 수 있었을까요? 무궁화 다섯 개의 호텔 같은 편안한 잠자리여서? 머리 기댈 곳 없는(마태오 8,20) 분이었으니, 이건 아니겠지요. 제자단에서 고위직 대우를 받을 수 있어서? 사도로 뽑힌 이의 이야기이니 성경 본문에도 실렸겠지만, 당적을 쉽게 옮기는 사람은 누구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럼 세력을 보니 곧 집권할 것 같아서? 요한은 그분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불렀습니다. 어린양은 곧 희생제물로 바쳐질 대상이지요.

 

요한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곁에서 바로 자기들이 현존하는 현실을 보았을 것입니다. 예수님이 묵으시는 곳은, 지금 우리가 묵는 곳과 같았을 겁니다. 예수님은 현실을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현실로 들어오심으로써 우리에게 사랑의 자세를 가르쳐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육화는 우리에게 큰 위로가 됩니다.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 그보다 큰 사랑은 없으니까요.

 

+퍼시아저씨(20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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