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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8 조회수1,048 추천수11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월 18일 연중 제2주일
  
They said to him, “Rabbi” -.
which translated means Teacher .-,
“where are you staying?”
He said to them, “Come, and you will see.”
So they went and saw where Jesus was staying,
and they stayed with him that day.
It was about four in the afternoon.
(Jn.1,38-39)
 
 
제1독서 1사무 3,3ㄴ-10.19
제2독서 1코린 6,13ㄷ-15ㄱ.17-20
복음 요한 1,35-42

 

교구청에 근무하는 직원으로부터 자신의 예전 직장에서 있었던 재미있었던 일을 하나 들었습니다. 서울의 어느 회사를 막 다니기 시작한 어느 날, 윗 상사가 어떤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 ‘남영주차장’에 전화를 걸라면서 번호를 가르쳐 주더랍니다. 그래서 전화를 걸어서 “남영주 차장님 부탁합니다.”라고 정중하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은 자꾸만 “누구요?”만을 외치더라는 것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남영주 차장님’이 아니라 ‘남영 주차장’에 전화를 걸라는 것임을 알게 되었지요.

이 말을 들으면서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모릅니다. 예전 국어시간에 들었던 ‘아버지가방에들어가신다’라는 문장이 생각나면서 ‘띄어쓰기’에 따라 의미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음을 깨닫습니다(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가방에 들어가시는 것일까요?). 어쩌면 주님께 대한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내가 어떻게 주님을 이해하고 받아 들이냐에 따라 전혀 다른 주님의 모습으로 보게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많은 사이비 종교와 이단이 끊이지 않고 생겨나는 것이지요.

주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과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선은 주님을 알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냥 무조건 주님께서 다 해주실 것이라는 생각, 나만 잘 되면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주님을 내 중심으로 판단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오늘 제1독서에 나오는 사무엘이 보였던 자세입니다. 즉,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고백을 생활 안에서 계속 해야 합니다. 자신의 말을 하는데 익숙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을 듣는데 더 익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당신을 찾아온 제자들에게 “무엇을 찾느냐?”라고 물으십니다. 사실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전지전능하신 분께서 왜 당신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습니까? 눈치 없는 저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당신을 찾아온 제자들에 대한 배려입니다. 당신을 신뢰할 시간을 주시는 것이지요. 무엇을 찾는지를 명확하게 스스로 알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참으로 신뢰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안드레아는 나중에 베드로를 찾아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무엇을 찾느냐?’는 예수님의 물음에 제자들은 “라삐, 어디에 묵고 계십니까?”라고 말함으로써 예수님께 배우고자 하는 갈망을 엿볼 수 있습니다. 그냥 거리에서 하느님의 중요한 말씀을 듣는 것이 아닌 당신의 숙소에서 깊이 있게 듣고 싶다는 배움에 대한 열망인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묵을 숙소를 가리키지 않고 대신 “와서 보라.”라고 하십니다. 직접 따라와서 봐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이 대화들을 묵상하면서 예수님께 대한 우리의 자세를 배우게 됩니다. 하느님의 중요한 말씀들을 듣기 위한 우리의 정성과 열망은 어떠했나요? 또한 직접 “와서 보라”면서 우리 스스로의 노력을 바라시는데 우리는 과연 어떤 노력을 했을까요? 그냥 저절로 좋은 일이란 좋은 일은 다 알아서 내게 이루어지길 바랐고, 주님의 기쁜 소식을 듣고 실천하려는 노력보다는 세속적이고 물질적인 충족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요?

들으려는 노력도 부족했고, 알려는 정성도 없었던 우리들의 모습들을 반성하면서 이제까지의 나와는 다른 모습으로 주님께 나아가야 함을 깨닫습니다. 그때 내 몸이 거룩하게 되어, 하느님의 영광을 이 세상에 환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거룩한 성전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유로워지고 싶은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유롭게 만들어야 한다. 자유는 요정의 선물처럼 우연히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유란 무엇인가/ 그것은 자기 자신에 대해 책임질 의지를 갖는 것이다(막스 슈티르너).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인터넷에서 퍼온 글’)

두 천사가 여행 도중 어느 부잣집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부자는 천사들에게 수많은 객실 중 차가운 지하실의 비좁은 공간을 내 주었다. 두 천사가 잠자리에 들 무렵, 늙은 천사가 벽에 구멍이 난 것을 발견하고는 그 구멍을 메워주었다.

젊은 천사가 "아니, 우리에게 이렇게 대우하는 자들에게 그런 선의를 베풀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러자 늙은 천사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라고 말했다.

그 다음날 밤 두 천사는 가난한 집에 머물게 되었는데, 농부인 집주인 부부는 자신들도 부족한 음식을 함께 나누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침대까지도 내주었다. 다음날 아침, 농부 내외가 암소가 죽은 것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죽은 암소는 그들이 우유를 짜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소득원이었다.

이것을 보고 젊은 천사가 화가 나서 늙은 천사에게 따졌다. 부잣집은 모든 걸 가졌으면서도 불친절 했는데 도와주었으면서 궁핍한 살림에도 자신들의 모든 것을 나누었던 농부의 귀중한 암소를 어떻게 죽게 놔둘 수 있나요? 그러자 늙은 천사가 대답했다.

“부잣집에서 잘 때 난 벽속에 금덩이가 있는 것을 발견했지. 그래서 나는 그 금을 찾지 못하게 구멍을 막은걸 세. 그런데 어제밤 우리가 농부의 집에서 잘 때는 죽음의 천사가 그의 아내를 데려가려고 왔었네. 그래서 내가 대신 암소를 데려가라고 했지.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네.”

하느님의 뜻을 어떻게 부족한 우리 인간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깨닫고 그저 주님의 말씀을 잘 듣기 위해 노력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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