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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1.19 월/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의 복음 묵상 - 굶주림을 채우는 사랑의 단식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8 조회수931 추천수5 반대(0) 신고

  

연중 2주일 마르 2,18-22(15.1.19)


“신랑이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 없다.”(마르 2,19)
 

 

The Question about Fasting

 

 

                   

 

 굶주림을 채우는 사랑의 단식  

 

유다인들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의 날에 의무적으로 단식했고(레위 16,29), 바리사이들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했다(디다케 8,1). 그러나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은 스승의 고행을 본받아 자주 단식했던 것 같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로”(마태 11,19) 통한 스승의 영향으로 예수님 생전에는 속죄의 날을 제외하고 단식하지 않았다.


마르코 복음사가는 19-20절에서 생전의 예수님의 입을 빌어 왜 초대교회 신자들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다음에 단식을 해야 하는지를 밝히고 있다. 1세기 교회에서는 아마도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금요일마다 단식했을 것이다. 1세기 말에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하는 풍습이 있었다(디다케 8,1). 구약에서는 혼인잔치를 종말론적 구원의 상징으로 표현했다(이사 61,10).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시대야말로 구약의 약속이 실현되어 종말론적 구원이 이룩되어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시기라고 하신다. 따라서 단식을 해야 하는 동기는 예수님께서 죽으심으로써 기쁨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 대한 헤아릴 수 없는 사랑 때문에 당신의 아들 예수를 이 세상에 사람의 모습으로 보내주셨다. 이렇게 해서 죄와 어둠과 나약함 속에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벌이시는 사랑의 축제에 예수님과 함께 하도록 초대받았다. 또한 하느님의 사람 되심은 인간의 한계와 제약 안으로 기꺼이 들어오신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니기에 우리 또한 그렇게 사랑의 존재가 되어야 할 소명을 받은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한 사람도 예외 없이’ 이 사랑의 축제에서 기쁨과 평화를 체험하며 신명나게 하느님을 찬미할 수 있어야 한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은 까닭은 사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함이 곧 기쁜 축제이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함께 하는 축제는 어떤 이벤트나 행사가 결코 아니다. 이 축제는 영원으로 이어지는 매순간의 축제여야 한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선과 사랑의 축제를 거부하는 이들의 반대에 부딪쳐 결국 죽음을 맞게 되었다. 예수님의 죽음은 ‘사랑의 부재’, ‘축제의 장례식장화’를 의미한다. 바로 이때야말로 그 빈자리, 결핍, 부재를 다시 하느님으로 채우기 위해 단식을 해야 할 때이다. 우리네 주변을 둘러보자. 사랑 결핍, 선과 정의의 부재, 굶주림과 소외된 이들의 절규가 메아리치는 현장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다! 단식은 사순절이나 대림절에 의무적으로 하는 형식적인 행위가 아니다. 하느님 사랑에 대한 목마름을 확인하고 공감하고, ‘더불어 행복하기 위한’ 사랑의 축제를 벌이지 못함에 대한 가슴 치는 회개의 몸부림이야말로 참 단식이다. 단식하는 그 빈자리에서 굶주리고 가난한 이들, 사랑을 받지 못한 이들,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들, 억울함에 한숨을 멈추지 못하는 이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그들에게로 발걸음을 돌리도록 하자. 새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철저하고 새로운 회개의 정신으로 단식하며(2,21-22) 그 빈 골짜기에 다시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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