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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19 조회수1,153 추천수13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월 19일 연중 제2주간 월요일
 
As long as they have the bridegroom
with them they cannot fast.
No one sews a piece of unshrunken cloth on an old cloak.
If he does, its fullness pulls away,
the new from the old, and the tear gets worse.
(Mk.2,19,20)
 
 
제1독서 히브 5,1-10
복음 마르 2,18-22
 

어떤 자매님께서 자신의 본당에 유명한 강사 신부님의 특강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워낙 좋아하고 존경하는 신부님이셨는데, 전에 한 번 들을 기회가 있었지만 어떤 일이 생겨서 들을 수가 없었거든요. 그래서 이번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참석해서 듣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드디어 특강 날, 친구들과의 약속도 다 미루고 성당에서 신부님의 특강을 들으며 많음 감명을 받습니다. 특별히 ‘감사’에 대한 내용이었는데, 왜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지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늘 감사하며 살겠다는 약속을 주님께 하기도 했지요.

그런데 진동으로 맞춰 놓았던 휴대전화가 힘차게 울리기 시작합니다. 얼른 밖으로 나가 전화를 받으니 남편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왜 전화를 빨리 안 받아! 애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글쎄 사고가 나서 우리 애가 응급실로 실려 갔데. 내가 지금 지방이라 조금 늦을 것 같거든. 당신 먼저 가 있어. 나도 얼른 병원으로 갈게.”

전화를 받은 자매님께서는 어떻게 하셨을까요? 그렇게 듣고 싶어 했던 특강이었으니 끝까지 자리를 지켰을까요? 또한 자녀의 안 좋은 소식을 듣고도 특강 때 가졌던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고 계실까요? 눈앞이 캄캄해지면서 특강에 대한 생각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입니다. 오로지 사랑하는 자녀의 얼굴만 떠올려졌겠지요.

잠깐의 통화이지만 이를 통해 관점이 180도 완전히 바뀔 수가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과 다짐이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지요. 상황에 따라 바뀌어 질 수 있으며, 새로운 깨달음에 의해서 바뀔 수 있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으면서 ‘나는 맞고 너는 틀려!’를 항상 외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를 전지전능하신 주님께 돌리는 경우도 종종 있지요. 왜 불공평하시냐고 하면서, 자기 생각의 기준에 따라 주님의 행동을 판단해 버립니다.

오늘 복음에 사람들은 예수님께 단식을 왜 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 존경과 사랑을 받던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자주 단식을 했었거든요. 그에 비해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혀 단식을 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실 뿐이었으니까요. 이는 단식 자체에만 의미를 두기 때문에 했던 행동입니다. 단식의 본뜻인 회개와 참회의 행위가 아니라, 보이는 단식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으니 예수님과 그 제자들의 단식하지 않음이 못마땅해 보였던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새 천 조각은 새 옷에 대고 기워 입는 것처럼, 또한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담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인해 도래한 새로운 시대에 맞게 새로운 생각과 행동을 해야 함을 이야기하십니다.

항상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열린 마음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을 잘 모실 수 있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나는 자신을 돌아본다. 해야 할 일은 충실히 실행하였는지, 또 친구들에게 신의를 잃는 행동을 하지 않았는지. 또 내가 배운 것을 몸소 실행에 옮겼는지 말이다(공자).


 

가난한 청년(‘좋은 생각’ 중에서)

미국에 사는 제레미는 대학에 합격 했지만 학비를 벌기위해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제레미는 농장에서 일하는 동안에도 도시락을 싸갈 수 없어 점심시간만 되면 수돗물로 고픈 배를 채워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어김없이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 위해 수도가로 향하는데 인부 감독의 큰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집사람은 내가 돼진 줄 아나 봐! 도시락을 뭐 이렇게 많이 싼 거야. 누구 내 도시락 나눠 먹을 사람 없어?"

제레미는 남는 도시락을 나눠먹는 것뿐이니,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감독의 도시락을 나눠 먹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런데 다음날도 또 감독의 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무래도 집사람은 나를 뚱뚱보로 만들 생각인 가봐. 뭐 이렇게 또 많이 싼 거야? 나랑 도시락 나눠 먹을 사람 없어?"

제레미는 또 아무 부담 없이 그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한 달, 감독의 도시락을 나눠먹어 농장을 다니는 동안 배고플 걱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어 농장을 그만두게 된 제레미는 감독 내외분께 감사의 인사를 표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농장 안이 넓어 감독 내외분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경리 아가씨에게 감독 내외분께 대신 인사를 전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경리 아가씨가 말했습니다.

"그 감독께서는 부인이 안 계세요. 몇 해 전에 돌아가셨어요."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는 선행은 그 자체로 선행이 아닙니다. 선행은 그 누구도 모르게 하는 일, 오로지 하느님만 아실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것이 참된 선행이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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