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의 항의를 받으시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2,27) 하고 말씀하시며 안식일법의 본래 정신을 분명히 밝혀주셨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사랑으로 창조하신 다음에 안식일을 정하셨다(창세 1,26-2,4). 인간이 있어 법과 제도가 필요하게 되는 것이고, 그런 것들은 인간을 위해서만 존재이유가 있는 것이다. 일찍이 랍비 시므온 벤 메나자(Schimeon ben Menasja, 서기 180년경)도 “너희들이 안식일에 맡겨진 것이 아니다. 안식일이 너희들에게 맡겨졌다.”라고 말한 바 있다.
바리사이들도 일정한 경우에는 율법의 예외를 인정함으로써 율법을 완화시켜 해석하려고 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훨씬 폭을 넓혀 율법을 인간을 위한 사랑의 바탕 위에서 해석하셨다. 예수님에게 있어서 율법은 상대적인 의미와 가치가 있을 뿐 비인간적으로 적용될 수는 없었다. 곧 안식일법의 세칙들이 인간구원에 방해가 된다면, 그것은 분명히 하느님의 뜻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인간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은 안식일의 주인이시다(레위 23,3). 그런데 오늘 복음의 대목에서는 예수님이 안식일의 주인으로 언급되고 있다. 말하자면, 예수님의 권위 있는 사랑의 가르침이 인간을 살리는 것이지 인간을 도구화 하는 안식일법이 자유와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삶을 성찰해보자! 그리스도교 신학은 인간학이다. 우리를 지극한 사랑으로 창조하신 하느님의 그 사랑의 의지를 실현해나가는 것이 우리가 걸어야 할 길이요 삶의 목적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우에도 우리는 인간을 최우선시 해야 하며, 최고의 가치로 삼아야 한다. 사람 위에 사람도 제도나 법도 있을 수 없다. 우리는 어떤가?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차별의식, 수직적인 줄세우기를 통해 다른 이들을 종속시키는 행동, 인간을 도구화 하는 자본과 경제논리, 사람을 살리는 법이 아닌 힘 있는 자들의 칼로 변해버린 법 등. 얼마나 많은 인간의 종속화, 도구화가 이루어지고 있는가!
이제 살아가는 일상생활, 평범한 대인관계에서부터 서로를 소중히 여기도록 하자. 그 어떤 제도나 법도 인간 위에 있을 수 없으며, 인간을 도구화 하지 않도록 다짐하자. 우리 삶에 원칙과 기준, 다양한 법규들이 필요하지만 그것에 얽매이지 말고 그것을 넘어서는 사랑의 일치와 화합을 찾아나가려는 넓은 마음을 갖도록 하자! 교회 안에서도 하느님의 법과 말씀을 인간의 틀 안에 가두려는 시도나 남을 지배하기 위해 자신의 잣대로 해석하지 않도록 하자! 늘 인간을 위하시는 하느님의 그 사랑의 마음으로 서로를 존중하고 소중히 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