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하고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입을 열지 않았다(3,4). 여기서 예수님의 의도는 안식일일지라도 죽을 위험에 있는 이들을 구하는 데서 더 나아가 일반 병자까지 고쳐주는 선행을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악행을 저지르는 것으로 보셨다. 그분은 철저히 인간을 위하시는 분이시다.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는 질문은 너희는 어찌하여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될 일 가운데 가장 고약한 짓, 곧 사람을 죽이는 일을 꾀하려 하느냐 하는 반문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예수님께서는 ‘노기를 띠고 그들을 둘러보시며 그들 마음이 완고한 것을 몹시 슬퍼하셨다.’(3,5) 예수님께서는 적대자들의 완고함과 불신앙에 대해 분노하시고 슬퍼하신 것이다. 우리에게 있어서도 시기, 질투, 모함, 험담, 과장, 비난, 헛된 말은 선을 죽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목덜미가 뻣뻣한 백성’, ‘마음이 고약한 자들’ 등으로 표현되는 ‘마음의 완고’함은 신명기 계통의 심판 사상이다. 이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벗어나서 하느님께 불순종을 함으로써 선민 이스라엘이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 멸망하게 되었다는 사상을 계승한 것이고, 동시에 예언자들의 사상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어떤 의미로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완고한 백성 이스라엘의 손에 의해서 희생되는 예언자로 나타난다. 예수님의 태도는 바리사이들에 대한 일회적 반박이 아니라 안식일 자체를 하느님의 선과 생명이 드러나는 날로 바꾸시고자 하신 것이다.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손을 뻗어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손을 뻗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3,5). 예수님께서는 병으로 위축된 그의 삶을 회복시켜주셨다.
우리 자신의 삶을 돌아보자! 나는 육신의 병(질병)과 영혼의 병(죄)으로 인해 위축되어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또 진리 앞에 문을 걸어 잠근 바리사이들처럼 오만과 고집, 닫힌 마음을 지니고 살고 있지는 않은가?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음에 만족하면서 소극적으로 안주하지 말고, 선행을 하지 않음이 곧 남을 해치는 것임을 인식하여 좀 더 관대하고 열린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받아들이도록 하자. “문자는 사람을 죽이고 성령은 인간을 살린다.”(2코린 3,6)는 말을 가슴에 새겨 하느님께서 주신 자유를 규범 안에 가두는 완고함에서 벗어나자! 혹시라도 나만이 옳다는 생각, 편협, 편견, 고집, 자아도취, 강한 자기주장, 폐쇄적 사고 등 영혼의 석화(石化) 과정이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지 않은지 들여다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