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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2015년 1월 23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영적독서
작성자신승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2 조회수611 추천수2 반대(0) 신고
 

2015년 1월 23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영적독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포티케의 디아도쿠스 주교의 「영적 완성」에서
(Cap. 12.13.14: PG 65,1171-1172)
 
 

하느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합니다. 한편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지니는 그 위대한 보화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구합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영광을 구하는 것이지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의 창조주의 영광을 구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감독하고 사랑하는 영혼이 지니고 있는 하나의 특징은 자기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항상 하느님의 영광을 구하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즐거워 하는 점입니다. 영광은 그분의 위엄 때문에 하느님의 것이고 순종은 하느님과 친숙해지도록 하기 때문에 사람의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는 일에 기쁜 마음을 지녀 하느님의 영광을 구할 때 요한 세례자를 본받아 다음과 같이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나는 자기가 원하는 만큼 하느님을 사랑하지 못했기 때문에 큰 고통을 느낀 한 사람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영혼이 하느님을 사랑하고 싶은 갈망으로 불타 오르고 있었으므로 물론 하느님을 사랑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보잘것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그 사람 안에서 하느님께서는 영광을 받고 계셨습니다. 그런 사람은 말로써 자화 자찬하지 않고 자신을 있는 그대로 알고 있습니다. 그는 겸손에 대한 열망 때문에 자기 자신의 품위를 생각지 않습니다. 율법이 사제들에게 시키는 것처럼 자신을 하느님을 섬기는 자로 여깁니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에 집착하기 때문에 자신의 품위를 잊어버리고, 하느님께 대해 지니는 그 깊은 사랑 안에 자신의 품위를 감추어 두며, 더이상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고 겸손해지려는 열망으로 자기를 무익한 종으로 여기게됩니다. 우리들도 이 사람처럼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를 참으로 사랑해 주시는 그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 지니고 있는 위대한 보화 때문에 온갖 영예와 영광
을 피해야 하겠습니다.

마음속 깊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도 그를 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채비가 갖추어져 있는 만큼 그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 이와 같은 완성에 이른 사람은 하느님의 조명을 열망하여 뼛속까지 그 사랑을 느끼고 자기 자신을 잊어버리며 사랑 안에서 완전히 변모됩니다. 그런 사람은 이제 세상에 있으면서도 세상에서 살지 않는 사람입니다. 아직 육체 안에 머무르면서도 그 사랑 때문에 끊임없이 정진하면서 나그네처럼 하느님께 나아갑니다. 이렇게 마음이 사랑의 불로 완전히 불타 올라 그 갈망의 횃불로 하느님과 결합되고 하느님께 대한 그 사랑 때문에 자기 자신을 완전히 잊어버려 사도와 함께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미쳤다면 그것은 하느님을 위해서 미친 것이고 우리가 온전하다면 그것은 여러분을 위해서 온전한 것입니다."
 

2015년 1월 22일 연중 제2주간 금요일
독서기도 제2독서 발췌(대성무일도 제3권 P 91-93)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최후의 심판>, 1536~1541년, 높이 약 13미터, 바티칸 시스티나 소성당


작품 부분 : <심판자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 <성 바르톨로메오와 미켈란젤로 자화상> <죽음에서 깨어나는 영혼>

12월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복된 달이다. 탄생은 죽음과 따로 생각할 수 없다.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은 죽음과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해 그린 인류 최고 걸작이다.

이 작품이 그려진 곳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소성당이다. 미켈란젤로는 이곳에서 1536년에 시작하여 1541년에 완성하였다. 작품을 주문 받았을 때 미켈란젤로의 나이 예순이 넘은 노인이었다.

<최후의 심판>은 종교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대단히 중요하다. 종교적으로는 기존의 가톨릭 신앙 외에 개신교의 신앙이 반영되었는데 이는 장소가 교황청의 심장부라는 점과 당시 구교와 신교가 첨예하게 대립하였고, 가톨릭에서는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항하는 반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라는 점에서 그러하다. 당시 교황 바오로 3세는 작품에 대해 참견하지 않고 미켈란젤로에게 창작의 자유를 허락하였는데 이로 인해 <최후의 심판>이 탄생할 수 있었다.

작가 개인 입장에서는 예순이 될 때까지 쉼 없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었고, 죽음의 고비도 수없이 넘겼으며, 절망 고통 고독은 그의 가장 깊숙한 곳에 차곡차곡 자리 잡고 있었다. 나이로나 작가로서나 이미 왕성한 시기를 넘어 초월적 상태에 접어든 나이 든 대가가 그리스도교의 가장 중요한 교리를 어떻게 토해냈는지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림의 주제는 마태오복음 25장 31-47절이다. 인류 종말의 날, 인간이 죽음에서 깨어나 예수의 심판을 받고, 선을 행한 이들은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고, 악을 행한 이들은 지옥으로 떨어져서 영원히 벌을 받게 된다는 성경 내용을 그린 것이다.

작품의 높이는 약 13미터이니 10층 이상의 건물 높이라 볼 수 있고, 여기에 400명 이상의 인물들을 그렸다. 그림의 주요 부분을 보면 다음과 같다.

예수

그 동안의 전통적 도상과 달리 건장한 젊은이로 그려졌으며, 특히 수염이 없이 묘사되었다. 수염 없는 예수는 초기 그리스도교 이후 거의 찾아볼 수 없었으나 여기서 다시 등장했다. 그는 나체로 구름 위에 떠있으며 심판하기 위한 자세인 듯 오른 손을 치켜들고 있다.

전통적으로 최후의 심판에 등장하는 예수는 권좌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으나 여기서는 서 있는 모습이어서 동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그때에 사람들은 사람의 아들이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권능을 떨치며 영광에 싸여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라는 구절을 그린 듯하다.

마리아

예수의 오른편에 마리아가 있다.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아래쪽을 바라보고 있다. 가톨릭에서는 431년 에페소 공의회 결정에 따라 마리아를 천주의 어머니로 모신 반면 당시 확산되기 시작한 개신교에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성인들

예수의 양 옆에는 12사도와 이미 천국에 오른 성인들이 그룹을 이룬다. 가톨릭은 성인 공경 사상이 매우 깊은데 이 점은 미켈란젤로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성인들의 얼굴은 표정이 격정적이고 강렬하며, 완전 나체로 그림으로써 지상에서의 권위를 없앴다. 또한 각자의 상징물을 들고 있어서 그 존재를 알 수 있게 하였다. 사상 최초로 벌거벗은 성인들의 집단 초상화로서 천국에서는 성인들도 옷을 입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듯하다.

이들 성인 중에 그리스도의 왼발 아래서 성 바르톨로메오가 들고 있는 인피에 미켈란젤로는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 놓았다. 스스로를 얼마나 혹독하게 다루고 있는지를 보여 주는 장면이다.

나팔부는 천사들

천사들이 나팔을 불어 최후의 심판을 알리고 있다. 이들 중 두 명이 영혼들의 운명이 적힌 책을 들고 있는데 천국행 명단은 작고 얇은 반면, 지옥행 명단은 크고 두껍다. 미켈란젤로는 지옥행 사람이 훨씬 많다고 생각한 듯하다.

죽은 이들의 부활

그림 맨 아래의 왼쪽 부분은 천사들의 나팔소리를 듣고 죽음에서 막 깨어나는 영혼들이다. 해골상태인가 하면 이제 막 살이 붙어가는 인물도 있다. 이들 영혼은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 행업에 따라 심판을 받고 바로 이들 위쪽 영혼처럼 천국행이나 지옥행을 하게 된다.

천국행과 지옥행 영혼들

그리스도의 오른쪽 아래에는 선택된 영혼들이 천국으로 올라가고 있다. 일부는 자력으로, 일부는 천사들의 도움을 받고 있다. 조금만 올라가면 성인들과 천사들이 있는 천국이다.

이들 반대편에는 지옥으로 떨어지는 죄 많은 영혼들이다. 질투, 방탕, 교만, 인색 등의 죄를 지은 영혼들이다. 이들 영혼을 천사들은 하늘로 올라오지 못하도록 주먹을 휘두르고 있다.

지옥

아랫부분 우측에는 지옥에 떨어진 영혼들이 카론테가 이끄는 배를 타고 지옥의 강을 건너서 지옥의 입구에 떨궈 놓고 있다. 단테는 신곡에서 지옥의 입구를 시로 표현하였는데 미켈란젤로는 단테의 시를 참조했을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최후의 심판>을 통해 죽음 이후의 세계가 존재하고 있으며 인간은 그곳으로 가야 할 운명임을 보여 주고 있다. <최후의 심판>은 신앙인이자 위대한 예술혼의 소유자였으며, 고독한 인간이었던 미켈란젤로가 죽음 이후의 인간의 운명을 그린 것이다. 그는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를, 성경과 문학 사이를, 전통과 개혁 사이를 자유자재로 넘나들었던 진정한 자유인이었다. <최후의 심판>은 자유, 진보, 용기로 대신 될 수 있는 한 천재 화가의 고백이자 구원에 대한 갈망이었다.

[평신도, 2014년 겨울호(VOL.46), 고종희 마리아(한양여자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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