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양치기신부님의 말씀산책] 한 마리 산새처럼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5 조회수842 추천수17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한 마리 산새처럼


 

성경을 봉독할 때 바오로 사도의 고백을 묵상할 때 마다 얼마나 표현의 강도가 센지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무래도 바오로 사도가 겪었던 하느님 체험이 그만큼 강렬했기 때문이겠지요.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립비 1장 21절)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코린토 1서 7장 29~31절)


 

바오로 사도의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릴 때부터 봐온 친척 큰 형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다들 없이 살던 시절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춥기는 또 얼마나 추웠습니까? 다들 두꺼운 외투 한 벌이 아쉽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한번은 형수님이 품을 팔고 또 팔아 두툼한 외투를 하나 장만해 큰 형님에게 입혔습니다. 그런데 마음 착한 큰 형님 한번은 술 한 잔 걸치시고 퇴근을 했는데 집안에 난리가 났습니다. 퇴근하고 집으로 들어오는 형은 얇은 셔츠 차림으로 오들오들 떨면서 들어온 것입니다.


 

다그치는 형수 앞에 형은 뭐라 제대로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 얼버무렸습니다. 자초지종을 알아보니 퇴근길에 한 노숙자가 공원 벤치에 앉아있는데 얼마나 추위에 떨고 있던지 그러다 그 밤을 못 넘기겠더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큰 형님은 형수 얼굴 때문에 몇 번을 망설이다가 마침내 외투를 그분 어깨에 걸쳐드리고 뛰어왔다는 것입니다.


 

수도원에 들어와서도 그런 모습을 많이 보게 되었습니다. 신부님 수사님들 중에 참으로 옷맵시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뭘 입어도 안어울립니다. 아예 외모에 신경을 쓰지 않다보니 마치 노숙자처럼, 개장수처럼 허름하게 옷을 입고 다닙니다. 그런 모습을 본 다른 형제들은 마음이 또 짠합니다. 그리고는 즉시 입고 있던 옷을 벗어 그에게 걸쳐줍니다. 참으로 훈훈한 모습입니다.


 

사실 우리가 걸치고 있는 것,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손에 꼭 쥐고 있는 현찰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누구 차지가 되겠습니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식구들, 그들도 사실 영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 마지막 순간에 머리맡에 앉아있을 수는 있지만 죽음까지 함께 하지는 않습니다.


 

이런 면에서 바오로 사도는 정말 대단한 분이셨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세상의 형체가 점차 사라져가고 있다는 사실, 이 지상의 도성이 영원한 도성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파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바오로 사도이기에 용감히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필립비 1장 21절)


 

“이제부터 아내가 있는 사람은 아내가 없는 사람처럼, 우는 사람은 울지 않는 사람처럼, 기뻐하는 사람은 기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물건을 산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세상을 이용하는 사람은 이용하지 않는 사람처럼 사십시오. 이 세상의 형체가 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코린토 1서 7장 29~31절)


 

지난 며칠 저희 수도회에서는 큰 경사가 있었습니다. 10명이나 되는 입회자, 4명의 사제서품 등등...


 

너무나 가슴 흐뭇한 일이 있었습니다. 막 서품을 받은 형제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어디로 가서 사목하면 좋겠냐는 제 질문에 입이라도 맞춘 듯 똑같이 대답했습니다.


 

“저는 이제 출발선에 선 새 사제입니다. 회사로 치면 신입사원에 해당되는 사람입니다. 제가 어찌 감히 신부님께 어디로 보내 달라 청하겠습니까? 저를 가장 힘든 곳에, 저를 가장 어려운 것이, 단 가장 가난한 청소년들 가운데로 보내주십시오.”


 

한 마리 산새처럼 아무런 미련 없이 소임지를 향해 간단한 짐을 싸는 우리 형제들이 너무 고마웠습니다. 이 지상에서 이미 ‘찐한’ 하느님을 체험했기에, 이 세상에서 이미 충만한 하느님 나라를 체험했기에 가능한 신앙고백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