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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5 조회수988 추천수12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15년 1월 25일 연중 제3주일
 
 As Jesus was walking along the shore of Lake Galilee,
he saw Simon and his brother Andrew
casting a net in the lake, for they were fishermen.
And Jesus said to them,
"Follow me, and I will make you fish for people."
At once, they left their nets and followed him.
(Mk.1,17-18)
 
 
제1독서 요나 3,1-5.10
제2독서 1코린 7,29-31
복음 마르 1,14-20
 

고대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어 영혼이 하늘에 가면 신이 두 가지 질문을 하는데, 대답에 따라 천국에 갈지 말지가 정해진다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 두 가지 질문이란 이렇습니다.

‘인생의 기쁨을 찾았는가?’, ‘자네 인생이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했는가?’

인생의 어떤 목표도 또 의미도 아닙니다. 단지 ‘기쁨’에 모든 것이 달려있다는 이야기지요. 그런데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기쁨의 삶 안에서 진정으로 주님께서 원하시는 사랑 역시 같이 묻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속적인 기쁨이 과연 진정한 기쁨을 가져다줄까요? 아닙니다. 진정한 기쁨은 나의 기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기쁨을 전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기쁨은 바로 사랑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학창시절에는 일등만 하면 가장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특히 공부에서의 일등을 행복과 연결시켰습니다. 그런데 우연히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 참석했다가 항상 일등만 하던 친구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선생님을 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교권이 무너졌다는 이야기를 시작으로 요즘 선생님 자리가 얼마나 힘든지 만을 이야기합니다. 먹고 살아야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생질을 계속한다는 말에 씁쓸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한 친구도 생각납니다. 이 친구는 항상 꼴찌였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공부를 못할까 했던 친구였지요. 하지만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기술을 배워서 열심히 일했고, 지금 현재 사장님 소리를 들으면서 잘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의 일에 대한 자부심이 강했고, 기쁘게 지금을 살고 있었습니다.

학창시절의 일등은 순간의 기쁨일 뿐입니다. 이런 순간의 기쁨이 전부인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서는 안 됩니다. 순간의 기쁨이 아닌 영원한 기쁨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자기 모습이 많이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순간의 기쁨들이 모여서 큰 기쁨이 되기도 하겠지요. 그러나 그 순간만의 기쁨으로 끝나버리는 것이라면 대단한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공생활을 시작하시며 이렇게 외치십니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당시 사람들이 하느님처럼 믿었던 율법을 믿으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그보다는 복음, 즉 기쁜 소식을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기쁜 소식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신의 욕심과 이기심을 채우는 순간의 기쁨을 따르는 것이 아닌, 주님께서 직접 주시는 영원한 기쁨을 따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들은 이 기쁨을 따랐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소유물을 모두 버리고 예수님을 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따르고 있는 기쁨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무례하거나 퉁명스럽고, 자기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공경한다면, 당신은 평생동안 스스로를 이등시민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조지 와인버그).

 

꿀같은 사랑을 하세요.

사랑하는 애인을 ‘허니(Honey, 꿀)’라고 말하지요. 왜 그럴까요? 저는 꿀이 달기 때문에 달콤한 사랑을 생각하면서 애인을 ‘허니’라고 말하는 줄 알았습니다. 아마 대부분 그렇게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꿀에는 또 다른 뜻이 있다는 것을 며칠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왕 바로의 무덤에서 5천 년 전의 꿀이 발견되었는데, 글쎄 이 꿀이 먹을 수 있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진짜 꿀은 썩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즉, 사랑은 달콤함이 변하지 않는 것, 그래서 애인을 허니라고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항상 강조하셨던 것은 사랑이었지요. 이 사랑은 상황에 따라서 변하고 퇴색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도 변함없이 달콤함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그 사랑을 위해 주님께서는 이 땅에 오셨고 그 사랑을 직접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것이 사랑이라고 하지요. 그런데 정말로 꿀과 같이 변하지 않고 달콤한 사랑을 내 몸으로 실천하고 있나요? 그 사랑이 바로 지금 이 순간 이루어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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