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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서원 은경축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인영균끌레멘스신부님 연중 제3주일 (2015년 01월 25일)
작성자이진영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5 조회수1,332 추천수16 반대(2)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연중 제3주일
(2015년 01월 25일)
서원 은경축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저는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1월 25일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에 저는 오윤교 아브라함 신부님과 김두 본시아노 수사님과 함께 첫서원 증서를 제대에 봉헌하고는, 제대 앞에 서서 두 팔을 하늘로 올리고 ‘수쉬페’(Suscipe)를 한 목소리로 노래했습니다. 수쉬페는 우리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서원 때 부르는 봉헌 노래입니다. 이 노래는 시편 119(118),116의 말씀입니다. 이 노래 후 우리는 겸손되이 양손을 십자가 형태로 가슴에 묻고는 무릎을 꿇고 고개를 아래로 숙였습니다. 이를 지켜 본 수도 형제들은 한 마음으로 수쉬페를 되...
풀이 노래해주었습니다. 젊은 후배 수도 형제들의 서원식 때마다 이 봉헌노래를 듣고 따라 부릅니다. 이때마다 저는 25년 전 첫서원 때의 제 자신으로 돌아갑니다.

우리 수도원에는 서원 금경축을 훨씬 넘기신 대선배님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래서 은경축은, 어느 수도 형제의 말처럼, ‘아이들 재롱 잔치’에도 끼지 못할 정도입니다. 그래도 저 자신과 제 동기 형제들의 머리칼은 25년이란 세월을 지나면서 검은색에서 희끗희끗한 색으로 변했습니다. 물론 아직 대머리는 아니지만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있습니다. 소임지에 따라 가까이 있기도 하고 멀리 떨어져 있기도 했지만 아웅다웅 함께 살아온 시간의 흔적들을 생각하면 제 입가에는 그윽한 미소가 번집니다. 이 순간 정말 감사한 마음만이 앞섭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합니다. 저희 셋은 나름대로 이 핑게 저 핑게 대지않고 공동체에서 맡은 바 책임을 열심히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우선 나이가 제일 많지만(58년 개띠) 동기 중에서 서열이 가장 마지막인 김두 본시아노 수사님은 1987년 3월 8일, 해양수산부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당시로서는 늦은 나이인 29살에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우리 수도원에서는 성당 다음으로 가장 중요한 자리가 식당입니다. 수사님은 주방 책임자로 우리 형제들의 육신과 정신 건강을 책임지고 있습니다. 몸을 안사리고 불철주야 안보이는 데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습니다. 잠시 화순 분원과 뉴톤 수도원에서 생활한 기간을 빼면 주방에서만 봉사했습니다. 우리 수사님의 머리속에는 식수 인원과 식단표만이 들어있습니다. 물론 마음 속에는 주님밖에 없지요.

그리고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오윤교 아브라함 신부님은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그 다음날인 1987년 1월 26일 수도원에 들어왔습니다. 현재 왜관 피정집 책임자로 깊은 영성을 신자들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저와 함께 로마 유학가서 그레고리안 대학에서 교회사를 전공했습니다. 우리 수도원에서 역사 부분을 책임도 맡고 있습니다. 유기서원장과 대구가톨릭신학원 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제일 먼저 입회했다는 탓 때문에 강론을 맡아 하고 있는 저는 고등학교도 채 졸업하기도 전인 1985년 1월 28일 입회했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수련 동기가 되어 서원을 함께 했습니다. 저는 아브라함 신부님과 함께 로마 유학을 가서 전례학을 전공하고, 귀국해서는 성소담당자, 청지원장, 왜관 피정집 책임, 본원장과 봉헌회 책임, 서울분원장, 그리고 석전 본당신부를 거쳐 현재 젊은 형제들을 동반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과거에 했던 일도 지금 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잘 살지는 못했지만 저희 셋이 지금까지 수도자로 살고 있다는 이 사실 자체가 기적 중에 기적인 것 같습니다. 이는 전적으로 주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그리고 수도형제들과 많은 분들의 관심과 기도 덕분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리 수도자들은 기도를 먹고 사는 존재인 것 같습니다. 베네딕도 성인도 입회절차에 관한 장에서 수쉬페를 노래한 후 수련자 형제는 이렇게 하라고 말합니다. “각 사람들의 발 아래 엎드려 자기를 위해 기도해 주기를 청할 것이다”(규칙서 58,23). 이 자리에서 겸손되이 다시 한번 청합니다.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서로를 위한 기도 안에서 기도로 연대하여야지만 한 몸으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시오” 하고 선포하셨습니다. 하느님 나라를 미리 앞당겨 사는 사람들이 바로 수도자들입니다. 우리 수도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가치를 지금 여기서 살고 있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더욱 다가가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진정 믿고 또한 늘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회개와 복음을 믿는 삶은 하느님이 아닌 것에서 하느님의 것을 향해 끊임없이 삶의 방향을 전환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둠에서 빛을 향하여, 죄에서 은총을 향해서, 소유에서 베품을 향해서, 그리고 작은 나 자신에게서 더 큰 우리를 향하여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것입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모두 하느님의 것으로 되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살겠다고 다짐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당신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내 뒤를 따르시오.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겠습니다”고 말씀하시면서 당신 첫 제자들을 부르셨습니다. 이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뒤를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이 선언만 믿고 앞뒤 가리지 않고 따랐습니다. 무모하기 짝이 없습니다. 너무나 단순합니다. 계산 좀 하고 뒤를 따라야지 장차 손해보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손해를 봐도 너무나도 많이 봤습니다. 아니, 완전히 망했습니다. 믿었던 그분은 십자가에서 처참히 비명 중에 죽었기 때문입니다. 이 십자가에 걸려 넘어졌지만, 부활하신 주님 덕분에 실망과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나 기쁜 소식을 전파하는 일꾼이 되었고 이 복음을 위해 주님을 위해 목숨까지 온전히 봉헌했습니다. 이 부르심의 길은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바보스런 길, 멍청한 길, 우둔한 길, 손해보는 길입니다. 그러나 죽고 부활하신 주님이 우리를 부르셨기에 이 부르심에 의탁하며 살아갈 뿐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주님을 의심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믿으십니다. 우리는 신실하지 못하지만 주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신실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고 인도하십니다.

조금 있으면 25주년 서원증서를 읽고 제대에 봉헌하고 수쉬페를 노래할 것입니다. “주님, 주님의 말씀대로 저를 받으소서. 그러면 제가 살겠나이다. 주님은 저의 희망을 어긋나게 하지 마소서.” 이 예식을 통해서 저희 셋은 서원 생활을 다시 시작합니다. 새로운 출발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삶을 되돌아 보면 후회와 함께 주님께 죄스럽고 형제들께 미안하지만, 오늘 다시 힘을 얻고 살겠습니다. 앞으로 25년 후에 있을 금경축 때까지 저희 셋은 주님만 믿고 사랑하고 희망하며 수도형제들 안에서 열심히 살겠습니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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