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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신앙은 작은이들을 향한 팔 벌림 / 복음의 기쁨 48
작성자박윤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28 조회수618 추천수1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교회는 저마다 갖가지 어려움을 안고서 찾아오는 이의

허전함을 달래주는 따뜻한 공간인 보금자리가 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쉼터가 어머님의 마음을 가진 아버지의 집인 게다.

그래서 주위의 쉬는 이들이 지금은 아니지만,

언제라도 찾도록 평소에도 그들과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리라.

이런 분명한 선교 역량을 추구하는 사목 방침아래,

모든 교회의 구성원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든 이에게 늘 가 닿아야만 한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까? 복음서를 보면 그 대상을 분명하게 알게다.

그들은 친구와 부유한 이웃이 아닌

그 누구보다도 가난한 이와 병든 이들,

자주 멸시당하고 무시당하는 이들, 우리에게 보답할 수 없는 이들(루카 14,14)’이 될 것이다.

이들에게 우리는 자신이 받으려는 그 이상으로 주는 마음을 가져야만 하리라.

 

예수님의 그 유명한 산상설교에서의 참 행복에 관한 첫 내용이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

물론 참 행복을 가진 이의 분류는 더 있다.

슬퍼하고 온유한 이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 자비롭고 마음이 깨끗한 이,

평화를 이루는 이와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다들 우리를 지금 당장은 안아줄 수 없는 박해받고 모욕당하는 이들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보답 받을 수 없는 그들을 향한 그 어떤 끈도 놓을 수가 없다.

예수님도 분명히 이르셨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

이 분명한 가나한 이만이 하늘의 보물을 얻는 메시지인 예수님 말씀을 약화시키는

그 어떠한 의심이나 변명이 있어서는 안 될 게다.

오늘도 그리고 언제나 가난한 이들은 복음의 가장 뛰어난 수용자들이고,

그들에게 그저 선포된 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져다주신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 될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신앙과 가난한 이들 사이에는

떼어 놓을 수 없는 유대가 있다는 것을 주저 없이 밝혀야만 한다.

재물과 하늘나라를 동시에 공유할 수는 없다. 복음은 언제나 그 둘 중의 하나만을 택하란다.

그 답은 명백하다. 완전한 이가 되려거든,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야만 하늘의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게다.

이런 연유에서 우리는 결코 자신의 가난함은 물론 가난한 이들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우리가 열정적인 선교를 하려면 모든 이에게 다가가야 한다.

가난하고 가슴 아픈 이들, 일상적으로 버림받고 무시당하는 이들을 만나야 한다.

그들은 우리를 보답할 수 없기에 우리가 그들을 따뜻이 수용해야 한다.

신앙은 약하고 가난한 이들을 향한 팔 벌림이며,

그들을 안을 때 진정한 복음의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될 게다.    http://blog.daum.net/big-ll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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