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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교회의 소명은 전인적(육체-영혼-영) 복음 선포를 통한 성전 건축
작성자김혜진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07 조회수1,117 추천수16 반대(0) 신고
(십자성호를 그으며)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2015년 나해 연중 제5주일


<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
주셨다. >


복음: 마르코 1,29-39






하느님의 아들이며 말씀이신 그리스도


(1540-1550), 모스크바 크레믈린 Cathedral of the Sleeper


     < 교회의 소명은 전인적(육체-영혼-영) 복음 선포를 통한 성전 건축 >

 

   개신교가 위기라고는 하지만 그래도 존경할 만한 목사님들이 적지 않게 존재하기에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1997년 전후로 기억하는데 북한에서 식량이 없어 200~300만의 동포들이 굶어죽었습니다. 그때 제가 다니던 신학교에서도 옥수수 1톤 가격이 17,000원이라며 돈을 모아 북한에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수백억짜리 성당들이 지어지고 있었습니다. 신학생의 눈으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과연 통일이 되었을 때 북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부모들이 굶어 죽어갈 때 도와주지도 않고 수백억짜리 성당을 지었다는 것을 알면 누가 성당에 나오려고 하겠습니까? 가톨릭교회에서 개신교가 나와 분열되게 된 계기도 이런 비슷한 영향이 전혀 없었다고는 장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제가 되어보니 저도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있는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 도와주기보다는 주차장 땅을 사고 수억 원을 들여 성당을 더 아름답게 꾸몄습니다. 그러면서도 과연 성당 짓는 일이 먼저인가, 아니면 그 돈으로 이웃을 도와주는 일이 먼저인가?’라는 고민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라면 건물 짓기보다는 굶는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고 배우지 못한 사람을 가르치고 일자리 없는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 주는 일을 먼저 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행동은 생각하는 대로 따라가지는 않았습니다. 아직 말씀이 행동을 바꿀 수 있을만큼 깊이 들어오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저의 고민에 모범적 해답을 준 분이 김동호 목사님입니다. 그가 3,000명 정도의 교인이 모이는 교회의 목회를 하고 있을 때 이웃사랑회를 만들어 먼저 하루 3천원으로 살아가는 쪽방촌의 가난한 사람들부터 돕기 시작했습니다. 예배는 대학 강당을 빌려서 드렸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전이 더 중요하고 예배당은 짓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초대 교회나 박해시대 때 교회 건물이 존재하지 않았을 때가 교회가 가장 뜨겁게 불타오를 때였습니다.

그러다 들게 된 생각이 수천 명에 달하는 탈북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사회주위에 물들어 한국에서 60만 원 정도의 월급을 받고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에겐 먹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에 적응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더 급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신도들에게 교회를 지을 테니 돈을 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짓겠다고 말했습니다. , 가난한 사람들의 마음에 그리스도께서 머물 수 있는 성전을 짓겠다는 말이었습니다. 신도들은 200억을 모금해서 주었습니다.

김 목사는 그 돈으로 공장을 세워 탈북자들을 취직시켰습니다. 모두가 망할 것이라 했지만 공장들이 흑자를 내기 시작했고 그래서 UN에서까지 도움을 요청해 말라위라는 곳에 같은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규모는 현재 수백억에 달하고 있습니다. 탈북자들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에게 여기서 번 돈들을 보내어 그들 가족들은 북한의 유지로 생활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탈출하면 일단 교회를 찾아가라라는 말들을 한다고 합니다. 북한에 있는 사람들에게 점점 더 교회가 좋은 이미지로 각인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자 교회의 규모도 더욱 커졌고 비록 건물은 없을지라도 영적으로 강력한 공동체가 되었습니다. 그때 김 목사는 거대해진 교회의 목사로 남아있기를 거부하고 환갑도 안 되었는데 은퇴를 선언하였습니다. 교회는 주님의 것이지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뜻을 철저히 모범적으로 실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이런 사회적기업(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 아닌 일자리 창출이 목적인 기업)을 할 생각을 했던 것은 바로 성경의 한 대목 때문이었습니다. 포도밭 주인이 아침에 나가 일꾼을 데려오고, 또 아홉 시, 열두 시, 오후 세 시, 오후 다섯 시까지 밖으로 다니며 일꾼들을 데려온 이유는 당신 포도밭을 잘 가꾸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당신 포도밭을 이용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업가가 자금이 있으면 그것으로 먼저 자신의 집을 지을까요, 아니면 자신의 집은 나중에 짓더라도 투자를 먼저 할까요? 당연히 투자를 하여 회사를 살리고 나서 집을 짓습니다. 집을 지어놓고 돈이 없는데 무슨 사업을 하겠습니까? 본성이 사업가면 그것에 먼저 투자해야 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교회의 본성은 돈으로 먼저 건물을 짓는 것입니까, 아니면 그 돈으로 복음 선포라는 사업을 하는 것입니까? 만약 지금까지 우리가 성당 짓는데 쓴 돈을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데 쓰고 지금 우리들은 천막이나 가건물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면 가톨릭의 교세는 지금보다 몇 배 더 컸을 것입니다. 유럽에 엄청나게 큰 성당들이 많아서 신자들이 그 성당에 많이 몰립니까? 아닙니다. 텅텅 비어서 관광객들의 사진 찍는 곳으로 바뀌어버렸습니다. 우리는 보이는 성당이 아닌 보이지 않는 성전을 지어야합니다. 그 성전은 바로 건물이 아닌 각 사람 속에 지어집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당신을 찾는 사람들을 뒤로 하고 떠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시몬과 그 일행이 예수님을 찾아 나섰다가 그분을 만나자, ‘모두 스승님을 찾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 그곳에도 내가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려고 떠나온 것이다.’”

예수님은 그 동네에서의 복음 선포가 충분히 이루어졌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나셔도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제 당신을 찾을 줄 아는 신앙인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완성되었다면 봉헌하고 다시 다른 곳에 복음을 전해야합니다. 그 곳에 이미 당신께서 아버지의 성전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들에게 믿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복음 선포인데, 이 복음 선포 사업에 건물을 짓는 내용은 나오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복음 선포 모델은 사람의 영혼 안에 하느님의 성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일단 성전이 지어지면 그 안에 하느님이 거하시게 되고 그러면 더 이상 그 사람에게는 복음 선포가 필요 없어집니다. 그런데 인간은 육체-영혼-으로 되어있습니다. 성전을 짓기 위해서는 육체-영혼-영의 단 하나도 소홀히 대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 선포는 전인적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은 귀로 듣고(육체) 머리로 묵상하여(영혼) 믿음()이 생겨서 삶의 변화의 열매를 일구어 내야 온전히 전파된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께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계십니다라고 인사했을 때, 육체적으로는 들으며 영혼적으로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일까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에 대한 믿음이 생겼을 때 마음 차원에서 이렇게 응답을 드립니다.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이렇게 말씀 선포는 성모님 안에 말씀이 육화되게 하여 성모님이 주님의 성전이 되게 됩니다. 성모님은 가브리엘 천사의 복음 선포로 참 성전이 된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웃의 마음 안에 주님의 성전을 만들기 위해, 육체적으로도, 영혼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모두 영향을 미쳐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병든 이들을 치유하시고(육체적 차원), 무지한 이들을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영혼 차원), 그리고 마귀까지 쫓아내시고 새로운 믿음이 생기게 하시어(영적인 차원) 당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완수하셨습니다. 그런데 영적인 믿음이 생기게 하는 것은 육체적 차원과 영혼의 차원을 통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누가 도와주지도 않고 가르쳐주지도 않는데 그 사랑을 믿겠습니까? 이것을 위해 가진 모든 것을 투자해야 하는 것이 복음 선포 사명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건물을 짓는데 다 소진해버린다면 참다운 복음 선포의 모습은 아니란 것입니다.

   

예수님은 기적을 통해 병을 고쳐주셨지만 돈이 없어 병으로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가진 것으로 예수님과 같은 기적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의술을 지닌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학교가 없어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습니까? 학교를 지어주는 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생겨 영적으로도 치유되고 그 안에 주님을 모신 성전들이 될 것입니다. 사람에게 사랑을 주어 믿음을 가지게 하여 성전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복음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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