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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2.8 주일/ 기 프란치스코 신부님 - 예수님께서 주시는 치유와 해방
작성자이영숙 쪽지 캡슐 작성일2015-02-07 조회수824 추천수4 반대(0) 신고
  
연중 5주일 마르 1,29-39(15.2.8)

예수님께서는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을 고쳐주셨다.”(마르 1,34)

 


  

Jesus Other Healings

 

  

                      

 

예수님께서 주시는 치유와 해방  

 

욥은 재산과 자녀들을 다 잃고 나병에 걸려 잿더미 위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그는 ‘인생은 땅 위에서 고역이요, 나도 허망한 달들을 물려받고, 고통의 밤들을 나누어 받았네.’(7,3)라고 하며 자신의 고통스럽고 허망한 현실에 대해 한탄하고 있다. 우리는 고통이 인간 삶의 피할 수 없는 부분임을 알면서도 행복하고 기쁜 삶을 바란다. 그런데 왜 행복하지 못한 것일까? 문제는 고통 자체가 아니라 고통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있다. 바오로 사도는 “나는 복음을 위하여 이 모든 일을 합니다. 나도 복음에 동참하려는 것입니다.”(1코린 9,23)라고 말한다. 그렇다! 복음을 위하여 하느님을 위하여 일상의 고통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행복의 관건은 우리를 구속하고 압박하는 아픔과 고통을 치유해주시는 예수님께 대한 믿음과 의탁, 그리고 그것을 직시하고 받아들이며 해결하는 모든 과정 속에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뒤따르는 고통을 두려워하므로 어떤 식으로든 문제를 회피하려고 한다. 우리는 문제가 저절로 사라져버리기를 희망하면서 머뭇거린다. 문제를 무시하고 잊어버리려 하며 문제가 없는 듯 생각하려 한다. 고통을 잊으려고 심지어 신경 안정제나 마약과 같은 약물에 의존하기도 한다. 이렇게 보통은 문제에 직면하고 고통을 감수하기보다는 거기에서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나 고통을 회피한 대가는 회피하고자 했던 정당한 고통보다 결국에는 더 고통스러운 것이 되고 만다. 곧 많은 사람들이 고통과 문제를 회피하려고 하므로 더욱 신경증을 부추긴다. 문제를 대면하는데 따르는 정당한 고통을 회피할 때, 우리는 그 문제를 통해 우리가 이룰 수 있는 성장도 회피하는 것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장모를 고쳐주시고, “갖가지 질병을 앓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셨다.”(1,34). 고통을 겪을 때, 먼저 치유자이신 예수님께 의탁하기보다는 자기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거나 회피하는 태도는 스스로 자신을 우상화 하는 것이리라!


행복을 바라거든 하느님의 능력을 믿고 고통을 직면하고 그것을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느님 안에 살아가는 이들에겐 삶의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 고통과 실패도 마찬가지다. 역경 중에서도 의미이신 하느님을 만나면 고통은 걸림돌이 아니라 성장과 변화를 위한 디딤돌이 된다. 예수님 친히 고통을 받아들이셨다는 것은 고통의 의미가 그토록 크다는 것이며, 죽음을 선택하시고 부활하신 것은 죽음 그 자체도 새 세상을 여는 관문이 됨을 가르쳐 주신 것이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어떤 고통 속에 있다 하여도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한다. 그 의미는 구원을 위한 사랑이요 생명과 해방을 위한 희생이다.


치유자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고통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고통 안에서 쉬게 된다. 고통을 받아들일 때 고통의 상황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거기에 평화의 자리가 마련되며 희망을 갖게 된다. 고통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한 우리에게 절망감을 가져다주며 끊임없이 우리를 괴롭힐 것이다. 우리가 견뎌내며 받아들이는 사랑에 적극 참여할수록 고통 속에서 참된 자신을 재발견하게 된다. 고통 중에서도 행복하려면 모두의 행복을 위하여 자신을 사랑의 제물로 내놓으신 예수님의 그 사랑으로 ‘자신’과 ‘이웃’을 더욱 많이 사랑하는 수밖에 없다.


오늘 복음에서 가파르나움 사람들은 저녁이 되고 해가 지자 병든 이들과 마귀 들린 이들을 ‘모두’ 예수님께 데려왔다(1,32). 여기서 어디서나, 누구의 요청이나 다 들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이 두드러진다. 이처럼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의 삶의 자리는 차별 없이 모두를 품어 사랑 안에 하나로 어우러지는 축제와 해방의 자리이다. 바로 그 자리에서 치유가 일어난다. 우리도 아픔과 고통 중에서도 치유자이신 예수님처럼 열린 마음과 영혼으로 모두를 사랑했으면 한다. 우리가 하느님을 믿는 까닭은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과 함께 있기 위해서다. 그러지 못함이 우리의 근원적인 질병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숨 걸고 그분을 만나야 하고 그분과 더불어 고통과 시련을 받아들이고 모든 것에 감사드려야 한다. 우리 모두 ‘하느님의 사랑 때문에’ 불편과 고통조차도 디딤돌로 삼도록 하자! 오늘도 “다른 이웃 고을들을 찾아가자.”(1,39)고 하시는 예수님의 치유와 해방의 초대에 사랑으로 응답하도록 하자!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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